경남 공격수 김형범(가운데)은 가족의 힘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대구와 정규리그 11라운드 홈경기에서 전매특허인 프리킥으로 시즌 첫 골을 터뜨린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모습. 사진제공|경남FC
이적 후 부담감 이긴 대구전 시즌 1호골
“보여준 게 없어서…득남 소식 이제 전해요
교체도 OK…덜 뛰어도 팀 이기는 게 우선”
경남FC 윙 포워드 김형범(29)에게 12일 열린 대구FC와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11라운드(3-1 경남 승)는 여러 모로 뜻 깊었다. 자신은 올 시즌 1호 골을, 경남은 역대 도·시민구단 가운데 최단시간 팀 통산 100승째를 기록했다. 경기 종료 후 공식 인터뷰에 참석한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좋은 이야기 하나 해 드릴게요.” 다름 아닌 3월4일 득남(민준) 소식이었다. “좀 더 빨리 말하고 싶었는데 그간 보여드린 것도 없고 그래서….” 모처럼 실력 발휘했던 이제야 가족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었다고 했다. 2004년 울산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그는 전북-대전을 거쳐 올 시즌 경남에 둥지를 틀었다.
○내 시즌은 지금부터
동계훈련 기간 김형범의 킥 감각은 절정이었다. 종종 프리킥 골과 어시스트를 하며 기대를 안겼다. 하지만 실전은 달랐다. 부담감에 발목 잡혔다. 침묵이 길어졌다. 주변에서는 ‘경남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도 내렸다. 그러나 최진한 감독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헌신을 주문하되, 장점(킥)은 최대한 살리자고 했다.
“오기가 생겼죠. 벤치가 절 신뢰하는데, 왜 못하겠어요. 감독님도, 코치님들도 모두 반전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게 대구전이었어요.”
최 감독은 대구전 직전, 김형범과 면담을 했다. “선발로 나설 수 있느냐”는 말에 “상대가 좀 더 지쳤을 때 실력 발휘하고 싶다”고 답했다. 전략이 통했다. 후반 7분 투입된 그는 27분 뒤 날카로운 프리킥골로 승리에 쐐기를 박았다. 통산 99승에서 승수 시계가 멈췄던 경남이 8경기 만에 ‘아홉수’ 탈출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날 살릴 희생
한 때 김형범도 선발에 연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혹여 대기 명단에 있으면 서운함이 앞섰다. 그 욕심을 버렸다. 부상이 잦은 몸에 대한 배려로 보게 됐다.
“(교체 투입되면) 마음이 아팠죠. 생각을 바꿔보니 덜 뛰어도 팀이 이기면 기분이 좋아요. 저도 적지 않은 나이잖아요. 팀이 우선이죠.”
계기는 힘겨운 강등 다툼을 했던 작년 대전 시절. 거기서 희생을 배웠다. 고참의 참 역할도 느꼈다.
“전북에서는 제 일만 했다면 대전에선 모든 힘을 모아야 했죠. (최진한) 감독님도 늘 언급하세요. 헌신하자고. 코치님들도 ‘언제든 기죽지 말라. 덜 뛰어도 분위기를 잡으라’고 하셨죠. 문득, ‘내가 어리지 않구나. 좋은 영향을 주는 고참이 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책임감이다. 출전만이 능사는 아니다. 긍정 바이러스를 팀 전체에 퍼뜨릴 수 있는 게 진짜 베테랑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 삶의 원천을 위해
김형범의 날갯짓 뒤에는 가족들이 있다. 작년 말 혼인신고만 하고 결혼식은 올리지 못한 동갑내기 신부(서규린 씨)와 백일도 채 안 된 갓난 아들, 그리고 식당일을 하며 아들을 위해 희생해온 어머니(허경순·46)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들을 떠올렸어요. 어머니 소원이 일 그만두고, 아들이 뛰는 경기를 보러 전국을 다니는 건데, 제가 2009년부터 3년 가까이 (부상으로) 쉬었으니 꿈을 이루지 못하셨어요. 못난 아들이죠. 빨리 소원성취 시켜드리고 싶은데.”
아내 서 씨와는 본래 작년 시즌 후 혼인하려 했지만 ‘좀 더 예쁜 모습으로’ 면사포를 씌워주고 싶은 마음에 올해 말로 미뤘다.
“와이프가 고맙죠. 축구 선수 가족이 얼마나 힘든 건데. 함께 시즌을 보내잖아요. 휴가다운 휴가도 못 즐기고. 보답하려면 제가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죠.”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