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태희. 사진 제공ㅣSBS
“촬영 중이니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30여 분의 촬영이 이어졌고, 이윽고 배우 김태희(33)는 뻘뻘 흐르는 땀을 닦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표정에서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환하게 웃으며 기자들에게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지난 24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지영동 촬영 세트장에서 만난 김태희의 첫 인상이다. 이날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하 ‘장옥정) 촬영 중간, 잠시 배우들과 기자들이 만나는 간담회가 열렸다. 당장 다음 주에 방영될 분량을 녹화해야했지만, 제작진과 배우들은 기자간담회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 최근 시청률이 오르고,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그간의 논란과 궁금증 등에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장옥정’은 역사적 인물 장희빈을 단순한 악녀가 아닌 이유있는 악녀 ‘장옥정’으로 그린다는 기획 의도로, 정치적인 부분보다 숙종 이순과의 사랑이야기를 위주로 담은 작품이다.
타이틀롤 장옥정 역을 맡은 김태희와 상대역 이순 역을 맡은 유아인은 기자간담회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껄껄’ 웃으며, 더위에 잠시 진을 뺀 기자들에게 “경직되셨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특히 이날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주제는 바로 드라마 초반 시청률 부진과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에 관한 것이었다.
김태희는 해당 논란에 대한 심적 어려움과 자신의 생각들을 진솔하게 풀어나갔다. 질문 하나에 대한 대답이 무려 5분씩 이어졌다. 명쾌하면서도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는 한마디, 한마디였다.
“4회까지 시청률이 급격한 하락곡선을 그려 모두 당황했어요. 그 정도로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거든요. 기사도 점점 좋지 않은 내용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상처 받고 좌절도 했어요. 과거의 저였으면 자존심이 상해서 죽고 싶었을 걸요? 하지만 현실은 이렇게 됐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장옥정처럼 독하게 끝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죠.”
옆에서 유아인은 “‘죽고 싶다’는 너무 표현이 과하지 않느냐”고 웃으며 핀잔을 주자 “아, 그런가요? 그러면 그 부분은 수정해주세요”라며 ‘하하’ 웃는다.
아쉬운 연기를 보여주기까지는 비단 배우들만의 문제만은 아니었을 터. 이에 김태희와 유아인은 모두 “어쩔 수 없는 드라마의 제작환경”이라고 인정하며 “감내해야하는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배우 유아인-김태희. 사진 제공ㅣSBS
특히 김태희는 “대본 전체가 당일에 나온다. 하루에 40신을 찍어야하는데 앞의 신들을 다 읽고 파악한 뒤에 연기에 들어갈 수가 없다”며 “한 가지 또 아쉬운 점이 있다면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중간 중간 부분이 잘려 감정선이 튀는 것이다”고 말했다.
“편집을 하면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장옥정이 유산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유산 후 이순에게 만나러 가던 중 인현왕후(홍수현 분)를 만나요. 인현과 기 싸움을 하고 감정을 조금 정리 한 뒤 이순을 만나거든요. 그런데 편집본에서는 인현과 만나는 부분이 모두 편집됐어요. 유산을 한 직후 이순과 만나 차분한 모습을 보이는 게 감정이 튀는 것 같더라고요. 아쉬웠죠.”
특히 김태희는 인터뷰를 하며 줄곧 장옥정이 악녀로 변신하게 되는 과정의 타당성을 논리정연하게 피력했다. 김태희가 아닌 장옥정으로서의 모습, 그의 연기에 대한 진정성이 묻어나는 답변들이기도 했다.
“장옥정도 태어나면서부터 악녀는 아니었을 테죠.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고,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 과정이 너무 힘겨워요. 주변의 방해와 그들이 주는 수모가 견디기 힘들 정도이다 보니 점점 변해가는 거죠.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 죄 밖에 없는데’ 라며 점점 이 남자를 쟁취하고 싶은 욕망도 생기고요.”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순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순이와 함께 있을 때는 참 행복하고, 순이가 내 잘못들을 알아채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함이 늘 있어요. 완전한 악녀는 아닌 거죠.”
이유 있는 악녀이기 때문에 장옥정에 연민도 생기고, 각각의 상황들에 몰입하다 보니 장옥정의 감정이 온전히 이해가 간다는 김태희.
극에 몰입하며 점점 그의 진심이 연기에 묻어나서일까. 어느 샌가 연기력 논란은 가라앉고 드라마 ‘장옥정’의 시청률은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라 전국기준 6.9%까지 하락했던 시청률은 최근 꾸준히 9%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정적인 시청자층까지 확보하고 있다.
김태희는 이 같은 결과가 너무 감사하다. 그의 표현처럼 “바닥을 쳐보고 올라온 것”이기 때문.
“사실 결과적으로는 높은 시청률이라거나, 큰 성과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바닥을 쳐봤기 때문에 지금의 작은 관심이, 조금 오른 시청률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져요. 저 이번에 정말 개인적으로는 바닥을 쳤어요. ‘장옥정’이라는 작품 자체는 정말 좋은데, 연기력 논란 등의 문제 때문에요.”(웃음)
어느 샌가 장옥정을 닮아 그의 말투도 독해(?)졌다. 바닥을 친 김태희,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표독한 장옥정, 하지만 모두가 수긍할 만한 인간적이고 이유 있는 장옥정을 보여줄 거예요. 기대해주세요.”
고양ㅣ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