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륜 르네상스, 여자 경륜 부활이 기폭제

입력 2013-06-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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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라 경륜장 입구에는 ‘경륜의 발상지’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기타큐슈(일본)|김재학 기자

■ 경륜 발상지 일본 고쿠라경륜장을 가다

1948년 11월 20일 10시 30분 일본 고쿠라시 야외 벨로드롬. 출발 총성과 함께 7대의 자전거가 맹렬한 기세로 트랙을 질주했다. 자전거 경주에 돈을 거는 ‘경륜’이 세계 최초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경륜의 탄생은 패전국가인 일본의 근대사와 관련이 있다. 1948년 봄 전일본자전거대회를 개최한 고쿠라시의 하마시 시장은 대회장인 자전거 경기장을 재활용하고 안정적인 세수를 마련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패전의 상처를 씻고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고민을 통해 탄생한 것이 경륜이다. 경륜은 출발 초기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첫 4일간 973만 엔의 경주권이 팔렸다. 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3억엔(약 35억원). 경륜은 이렇게 패전으로 상처받은 일본 국민의 마음을 달래주는 레저로 자리 잡으며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948년 세계 최초 경륜 경주 시작된 곳
91년도 매출 24조서 작년 7000억 추락
여자경륜 부활 돌파구…아이돌급 스타도
11월 한·일전, 양국이 머리맞댄 첫 성과



● 경륜발상지 고쿠라 경륜장의 심야 무관중 경주

지금은 행정구역상 기타큐슈시에 속한 고쿠라 경륜장을 찾았을 때 맨 먼저 눈에 띈 것은 이곳이 경륜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

그런데 돔경기장 안으로 들어서자, 경기장을 울릴 것으로 기대했던 경륜팬의 함성이 들리지 않았다.

함께 한 고쿠라 경륜장의 이데 카츠나가 운영사무국장은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기자에게 “오늘은 ‘미드나잇 레이스’(밤9∼12시)가 열린다”며 “일본에서는 법적으로 밤 9시 이후 베팅스포츠에 고객 입장을 금지한다”고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이어 “고쿠라 경륜장은 이미 5년 전부터 낮경주를 하지 않는데 야간 매출이 낮보다 3배 정도 높다”고 심야 무관중 경주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륜발상지임을 자부하는 경주장에서 관객 없는 경주를 하는 상황은 현재 일본경륜이 느끼는 위기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승세를 거듭하던 일본 경륜은 1991년 매출 2조엔(현재 환율 기준 약 24조원)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급기야 2012년 매출은 6000억엔(약 7000억원)까지 추락해 존립을 걱정할 상황에 직면했다. 전국 67개였던 경륜장도 44개로 줄었다.

이데 사무국장은 “오랜 경기침체가 매출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경륜 시행체의 안일한 대처도 문제였다”며 “현재 고객 대부분이 노년층으로 젊은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패착이다”고 침체의 이유를 자책했다.

경륜의 발상지인 일본 기타큐슈시의 고쿠라 경륜장. 1948년부터 경륜 경주가 펼쳐졌던 야외 벨로드롬은 1998년 돔경륜장이 완공되면서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변신했다. 돔 지붕은 자전거 헬멧을 형상화했다. 사진제공|고쿠라 경륜장 사무국



● 여자 경륜 부활…부진 극복 위한 日경륜의 노력

일본경륜의 매출 하락은 단지 ‘남의 나라 사정’은 아니다. 경기장부터 경주룰, 베팅방식, 유니폼까지 일본을 벤치마킹해 1994년 탄생한 한국 경륜도 최근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위기 탈출을 위해 몸부림치는 일본 경륜의 노력을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다.

일본은 1964년 중단했던 여자경주를 지난해부터 다시 시작했다. 특히 ‘경륜은 복잡해 싫다’는 젊은이들을 경륜장으로 부르기 위해 여자경륜은 룰과 베팅 방식을 단순화 했다.

또 미녀 경륜선수를 주요 대회 홍보모델로 등장시켜 관심을 끌었다. 실제로 일본 경륜 여자 선수 다나카 마이미는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요즘 경주 때마다 이름을 연호하는 팬클럽을 몰고 다니는 인기 스타다.

한국 경륜도 7월 광명스피돔에서 여자경륜 시범경주를 실시한다. 경륜경정사업본부는 고객의 반응이 좋을 경우 여자 경륜을 정식 경주로 채택할 계획이다.

아이돌스타급의 인기를 자랑하는 일본 여자 경륜 선수 다나카 마이미. 사진제공|고쿠라 경륜장 사무국



● “매출 증대와 건전성 확보, 한국도 인터넷 베팅 재개해야”

인터넷 베팅도 일본 경륜이 부진 탈출을 위해 ‘믿는 도끼’이다.

이데 사무국장은 “전체 매출 하락에서도 인터넷 베팅은 제자리를 지키거나 일부 상승세다”며 “앞으로 젊은 팬이 늘어나면 인터넷 베팅이 효자 노릇을 할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사행성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경륜의 인터넷 베팅을 못한다”고 한국 기자들이 소개하자 고개를 갸웃했다.

10년간 인터넷 베팅을 시행해 본 결과 오히려 고객의 인적사항과 베팅액이 그대로 노출돼관리와 규제가 더 용이하다는 것이다. 이데 사무국장은 “매출 증대와 건전성 확보를 위해 한국 경륜도 인터넷 베팅을 재개하는 것이 좋다”고 권유했다.

한일 경륜 관계자들은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다. 작년부터 양국을 오가며 열리고 있는 ‘경륜 한일전’은 양국 경륜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만들어낸 첫 성과물이다. 11월 광명 스피돔에서는 ‘2회 경륜 한일전’이 열릴 예정이다.

기타큐슈(일본)|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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