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 전문기자의 스포츠로 읽는 세상] 전력분석관 하나 없는 배구협회

입력 2013-07-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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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내기 아닌 ‘진짜 투자’ 필요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가 한창 전설을 쌓아갈 때였다. 상대 팀들이 해태보다 앞서 전력분석을 시작했다. 정찰요원들이 분석한 해태 선수들의 장단점이 담긴 분석표를 더그아웃에 붙여놓고 경기를 했다. 그래도 경기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당시 해태의 한 코치는 “그런 것 없어도 우리는 이긴다”며 자신만만해 했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빼어났던 전성기의 해태는 상대의 전력분석을 능가할 정도로 실력이 좋았지만 그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요즘 프로야구는 상대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지고 이용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전력을 분석하는 사람의 통찰력과 경험, 이를 받아들이는 현장의 포용력과 신뢰에 따라 분석 자료의 이용은 천차만별이다.

예측이 가능한 사회가 선진사회라고 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측면에서 미래예측의 중요성은 드러난다. 정신없이 세상이 바뀌는 사회도 역동적이기는 하지만 발전된 사회는 안정적이다. 큰 변화는 없다. 구성원 대부분이 어느정도 앞날을 예상할 수 있고 그럴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스포츠로 대입해본다면 미래예측은 바로 정보 분석이다. 그동안의 자료를 바탕으로 상대 팀이 구상하는 다음 공격을 예상하고 사전에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다.

2002년 한국축구의 체질을 바꾼 거스 히딩크 감독은 전력분석관 압신 고트비를 영입했다. 우리 축구에서 전력분석의 시초는 그때라고 보면 된다. 요즘 미국 메이저리그는 동영상을 이용해 몸값 비싼 선수의 부상을 예방하는 차원까지 전력분석을 확대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남자배구 국가대표팀과 U-19 대표팀이 월드리그와 세계유스대회에 출전했다. 기대했던 성적은 올리지 못했지만 나름 성과는 냈다. 경기를 마친 두 대표팀 감독의 입에서 공통적인 단어가 나왔다. 바로 전력분석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우리는 두 국제대회에 단 한명의 전력분석관도 보내지 못했다. 협회에 전문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

프로배구 V리그에서 전설을 쌓아가고 있는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은 전력분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먼저 실천했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전부터 일본의 전력분석관을 불러 시스템을 배우고 연구했다. 신 감독은 “전력분석도 초보 분석과 전술적 분석 등의 단계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감독과 전력분석관의 신뢰와 의사소통을 강조했다.

이번 월드리그 때 배구대표팀 박기원 감독은 대한항공의 분석관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한 명이 모든 일을 다 하는 한국으로서는 3∼4명이 팀을 이뤄 움직이고 몇 년째 같은 일을 해온 상대 팀과 비교해 정보의 양과 질에서 차이가 났다. 아울러 기본적인 전력분석조차 하지 않으면서 선수의 희생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 박 감독은 “투지만 가지고는 국제대회에서 이길 수 없다”고 한탄했다. 지금 배구대표팀이 가장 갖춰야 할 것은 큰 대회를 앞두고 폼 내서 하는 출정식 같은 이벤트가 아니다. 생색은 나지 않아도 팀에 정말로 필요한 투자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때다.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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