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배구협회 임태희 회장과 현대캐피탈 정태영 사장, 한국배구연맹 구자준 총재(왼쪽 3번째부터)가 훈련장 개관식에서 태이프를 자르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캐피탈
전용 훈련장 개관식이었다. 그저 그런 행사가 아니었다. 대한배구협회 임태희 회장과 한국배구연맹 구자준 총재를 비롯해 많은 배구인이 천안시 서북구 석양길에 있는 복합베이스캠프를 방문했다. 화려했다. 구단주 정태영 현대캐피탈 사장을 비롯한 VIP들이 참가한 가운데 기억에 남을 개관식을 하고 280 억원을 들여 만든 최신식 시설을 공개했다.
KOVO는 아예 정기이사회를 그곳에서 열었다. 각 구단의 단장과 사무국장, 코보컵을 대비한 훈련 도중 짬을 내서 현장을 찾은 여러 감독들의 입이 딱 벌어졌다. 시설의 규모도 그렇거니와 훈련장이 보여주고자 하는 상징성이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 스포츠에 기업문화를 담은 훈련장
선수가 숙소 방문을 나가자마자 코트로 가서 훈련을 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동료들과 함께 먹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하나로 모았다. 올인원 트레이닝 시스템으로 지어졌다고 현대캐피탈은 자랑했다, 그 보다는 어느 기자가 표현한 배구천국이 훨씬 느낌에 와 닿았다.
세세한 곳 하나하나에 기업의 문화가 담겨 있었다. CI를 통한 색상의 통일과 사소한 공간과 소품에서도 최대한 선수들의 편의를 배려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중세의 성을 연상시키는 건물의 외관도 그렇고 캡슐형태로 만든 엘리베이터는 세련된 디자인이 어떤 효과를 주는지를 실감하게 했다. 건물 옥상에 설치한 피크닉용품은 다른 구단에게는 꿈같은 시설이었다.
특급호텔에 버금가는 숙소와 산소텐트, 아쿠아 치료기 등 다양한 장비를 갖춘 물리치료실 은 선수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힘든 재활훈련을 받는 선수들을 배려해 조명까지 신경을 쓴 그 디테일에서 스포츠와 선수를 향한 건축가과 구단의 애정이 느껴졌다.
배구단만으로는 1년에 몇 억원의 수익도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3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이 시설을 유지하기 위해서 10명 이상의 직원이 거주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인건비까지 계산해보면 앞으로 현대캐피탈 배구단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돈의 규모는 100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닌 투자였지만 현대캐피탈은 실행했다. 단순한 프로스포츠로만 보지 않고 이 시설을 통해 기업문화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당장 프로야구 SK와이번스가 19일 시설방문을 요청했고 LG 프로농구단도 둘러보고 싶다고 연락했다. 앞으로 전 세계의 모든 실내 스포츠팀들이 전용훈련장을 만들 때 모델로 삼을 수 있는 현대캐피탈의 ‘CASTLE OF SKYWALKERS(캐슬 어브 스카이워커스)’다.
● 연고지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 소프트웨어를 담아야
현대캐피탈은 이 복합훈련장을 그들만의 공간으로 구분하지 않았다. 훈련장의 벽을 움직여 일반인들이 잔디에 누워 경기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때에 따라서는 천안 시민들을 위한 공연장으로 쓸 수도 있게 설계 단계에서부터 배려한 열린 벽이다.
프로팀의 훈련장이지만 지역 유소년 배구 꿈나무에게 개방해 첨단시설에서 훈련을 하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안남수 단장은 “이 곳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집어넣는가는 우리의 몫”이라고 했다. 옳은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피 같은 국민의 세금을 들여서 지어만 놓은 채 방치해둔 엄청난 크기의 스포츠시설이 수두룩하다. 하드웨어 구축에만 신경을 썼지 어느 누구도 소프트웨어를 그 속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소프트웨어는 생색이 나지 않지만 그 시설에 사람의 숨결과 역사, 스토리를 덧입혀주는 중요한 요소다. 유소년 배구대회를 이곳에 개최하는 것도 좋다.
더 나아가 천안 지역의 모든 초등학생이 이 곳에서 단 한 시간이라도 체육수업을 받았으면 좋겠다. 김호철 감독과 선수들이 직접 참가해 같이 활동하며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려주면서 이들을 미래의 팬으로 삼는 것 이것이 바로 지역밀착이고 사회공헌 활동이다.
현대배구단의 역사가 담겨 있는 역사관. 사진제공|현대캐피탈
● 현대배구단의 역사, 유일한 아쉬움은
훈련장 정문을 들어서면 자랑스런 현대 배구단의 역사가 눈에 들어왔다. 왼편으로 현대 유니폼을 입고 배구팬을 열광시켰던 역대 스타들의 핸드프린팅이 걸려 있었다. 오른 편에는 우승의 순간들이 기록으로 담겨 있었다. 바닥에는 동영상이 쉬지 않고 돌아갔다.
이날 개관식에는 우리카드 강만수 감독도 참석했다. 현대배구단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그는 자신의 핸드 프린팅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과거가 없는 현재, 미래는 없다. 그런 면에서 역대 스타들을 기억하고 배려한 공간은 높게 평가한다. 단지 아쉬운 것은 이날 나머지 역사의 주인공도 함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종화 마낙길 노진수 후인정 등 핸드프린팅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현재 그 시설을 이용하는 선수와 과거 빛나는 전설을 만든 주인공이 함께 공을 주고받는 순간이 있었으면 더욱 개관식이 빛나지 않았을까.
18일 행사에서 남는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pm 트위터@kimjongke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