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이동현. 스포츠동아DB
“너무 많은 경기에 나간다고 불평할 때마다, 이상훈 선배는 이런 얘길 들려줬어요. ‘야! 팀이 널 원하니까 더 많이 마운드에 오르는 거야. 그건 투덜거릴 일이 아니라, 감사해하고 자부심을 느낄 일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이후 ‘항시 대기’라는 불펜투수의 숙명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였다. “LG를 위해 내 팔꿈치를 바치겠다”는 말도 그래서 나왔다.
그 해 한국시리즈 6차전. LG는 9회초까지 삼성에 9-6으로 앞섰다. 연일 혼신의 힘을 다한 이동현은 탈진 상태로 덕아웃 밖에 앉아있었다. 마운드에는 ‘철벽 마무리’ 이상훈이 버텼다. 그러나 잠시 뒤 대구구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뒤덮였다. ‘아….’ 나가보지도 않았다. 이상훈은 이승엽(삼성)에게 3점홈런을 맞고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왔다. 결국 LG는 삼성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을 내줬다.
그렇게 11년이 흘렀다. 이동현은 그동안 3번의 수술과 5년의 재활을 거치며 ‘인동초’처럼 다시 피었다. LG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원더스와 연습경기를 펼쳤다. 경기가 끝나자 이상훈 코치는 이동현을 숙소까지 바래다주겠다며 악수를 청했다. “준비 열심히 하고, 잘 해라.”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성격이 아닌데…. 본인이 못했던 것을 풀어주길 바라신 것 같아요.” 이동현은 그 뭉클함을 가슴에 새기고 마운드에 선다. 과연 그는 11년 전 ‘우상’ 이상훈의 한을 씻을 수 있을까.
잠실|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