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동아일보DB
구단, 태극기 걸개 한달간 준비 ‘서프라이즈’
주장완장·골 넣은 동료 무릎 꿇고 세리머니
대학원 진학 후 스포츠행정가로 ‘제2의 꿈’
3-0으로 승부가 갈린 후반 추가시간. 밴쿠버 화이트캡스는 선수 교체를 했다. 교체판을 통해 숫자 ‘12’가 밝게 빛났다. 현역 선수 마지막 순간. 이영표는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라운드를 빠져나가는 내내 동료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하며 피치에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2만여 팬들은 기립 박수로 레전드 이영표의 마지막 길을 전송했다.
● 이영표도 몰랐던 성대한 은퇴식
밴쿠버는 6월부터 줄곧 이영표의 현역 연장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작년 말 한국에서 은퇴 시점을 못 박은 터라 애당초 번복은 생각하지 않았다. 스포츠 행정가가 되기 위해 더 이상 학업을 미룰 수도 없었다.
밴쿠버는 이영표의 뜻을 존중하고 받아들였다. 구단 차원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갖기로 했다.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던 레전드에 대한 예우였다. 다만 원칙은 분명했다. 이영표 본인도 모르게 준비 작업을 해나가는 것. 구단은 한 달 전 이영표 에이전트와 연락을 취했다. 현역 당시의 사진과 영상물 등을 요청했다. 이 때부터 은퇴식에 대한 본격적인 구상이 진행됐다. 에이전시에도 철저히 함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서프라이즈 파티(깜짝 놀랄 만한 행사)’는 경기 며칠 전부터 베일을 벗었다. 구단은 경기 사흘 전 이영표의 얼굴이 그려진 콜로라도와 시즌 최종전 티켓을 공개했다. 하단에는 ‘우리의 모든 것, 우리의 명예’를 아로새겨 레전드를 헌정했다. 홈페이지에 기념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경기 당일은 더욱 의미 깊은 행사가 이어졌다. 전광판을 통해 활약 영상이 상영됐다. 에스코트 키즈들은 이영표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들어섰으며 대형 태극기와 이영표의 얼굴 및 소속팀을 모두 그려 넣은 걸개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만큼은 주장 완장도 이영표의 오른팔에 감겨 있었다.
압권은 동료 카밀로 산베조의 첫 골 세리머니였다. 그는 전반43분 PK골을 넣고 이영표에게 달려가 공을 건네며 무릎을 꿇었다. 동료들도 이영표를 에워싸며 그의 마지막 경기를 축하했다. 즉흥적인 세리머니에 이영표도 크게 웃었다. 그는 “훌륭한 팀, 멋진 동료들과 은퇴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기뻤다. 밴쿠버에서의 2년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 향후 계획
향후 거취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11월 중순 이후 귀국해 은퇴 기자회견을 갖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이영표는 A매치 하프타임 때 열리는 은퇴식보다 조금 더 값진 은퇴 행사를 갖고 싶어 한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은퇴식 관련) 논의가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 예우 차원에서 기념행사는 열릴 것이다”고 말했다. 이영표는 목표로 삼았던 스포츠 행정가의 꿈을 조금씩 키워 나갈 예정이다. 스포츠 마케팅과 경영학을 공부해 대학원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실무는 구단에서 익히기로 했다. 밴쿠버는 이영표 입단부터 이와 같은 편의를 제공하기로 의견을 나눴다. 2014브라질월드컵 때에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인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