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토픽] 이영표 “제2의 이영표? 재목이 너무 많아서…”

입력 2013-11-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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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가 14일 은퇴 기자회견에 앞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밝게 웃고 있다. 이 자리에서 이영표는 “감사했고, 행복했다”고 했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트위터 @bluemarine007

■ 이영표 은퇴 기자회견

대표팀 왼쪽풀백 고민 역으로 생각했으면
6년 전부터 은퇴 고민…체력문제 늘 느껴
응원해 준 팬들에게 늘 감사하고 미안하다


14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는 정적이 흘렀다.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들어선 이는 이영표(36)였다. 눈물 대신 환한 미소를 지은 그의 첫 마디는 “감사하다. 또 미안했다”였다. 휴대폰에 적어온 인사말을 읽는 도중 짧은 한숨을 내쉬거나 헛기침을 하는 등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질의응답 때는 질문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다. 땀 젖은 유니폼을 입고 필드를 누빌 때는 누구보다 큰 전사였지만 이날만큼 30대 중반 평범한 사내였다.


● 행복한 축구


-정말 떠났다.

“은퇴는 6년 전부터 생각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힘들었다. 고민하며 여기까지 왔다. 은퇴한다니 주변이 더 아쉬워하더라. 난 괜찮은데. 가족들은 이해해줬다. 밴쿠버에서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아내와 서로 축하해줬다.”


-6년 전부터 한 고민이 왜 지금인지.

“시기를 늘 생각했다. 축구는 가장 좋고 가장 하고픈 일이었다. 체력에 문제를 느꼈다. 동료들은 몰랐다. 주변이 내 체력 문제를 모를 때 떠나는 게 옳다고 봤다.”


-스스로 점수를 매긴다면? 눈물은 안 흘렸는지?

“혼자 많이 울었다. 아쉬움은 아니고 감사였다. 선수 27년을 돌아보며 받은 사랑을 되돌려드리지 못한 게 미안했고 고마웠다. 난 훌륭한 선수가 아니다. 80점? 축구를 즐겼다는 점은 100점이다.”


-은퇴하고 좋은 점은?

“육체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 하기 싫어도 해야 해서 고통이 엄청났다. 선택할 수 없는 고통을 이제 인내하지 않게 됐다.”

이영표가 말한 6년 전은 그가 서른 살이 된 시점이다. 많은 일이 있었다. 토트넘 훗스퍼(잉글랜드)에서 뛰면서 AS로마(이탈리아) 이적 거부 파동을 겪었고, 그를 아낀 마틴 욜 감독이 떠나면서 팀 내 입지가 불안정해졌다. 아마 그 때부터 은퇴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 영원한 태극전사


-본인 성장을 느낀 계기는?

“2002한일월드컵을 준비할 때와 PSV아인트호벤(네덜란드)에서 뛴 시절이다. 잘 모르던 새로운 축구와 선진 기술들을 접하며 성장했음을 알게 됐다.”


-후배들에게 조언은?

“모두 잘하고 있다. 단, 먼저 좋은 사람이 되라는 거다. 좋은 사람이면 좋은 선수가 쉽게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당신 같은 선수를 또 만날까.

“은퇴를 준비하며 많이 생각해왔다. 궁금하다. 날 계속 기억해줄지. 다만 축구를 즐긴, 혼자 아닌 여럿과 즐거움을 나눈 선수로 기억됐으면 한다.”


-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캐나다에 머물 때도 A매치는 다 챙겨봤다. 홍명보 감독님(‘선배’ ‘형’ 대신 ‘감독님’이라고 호칭)을 인간적으로 존경한다. 대표팀에서 함께 뛰며 홍 감독님이 생각해왔던 분명한 축구 철학을 보며 올바른 대표팀의 방향과 성장을 알 수 있었다.(현재 대표팀의 아쉬움은?) 내가 알고 있다면 홍 감독님은 더욱 잘 안다.”

이영표는 2011카타르 아시안컵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A매치 127회 출전(5골). 애국가를 들을 때 느껴지는 뭉클함은 잊지 못할 감동이라고 했다. 그가 떠난 뒤 한국축구는 ‘포스트 이영표’ 발굴에 초점을 뒀다. 몇몇 후보가 나왔지만 아직은 만족할만한 후계자는 없는 상태다.


● 끝이 아닌 시작

-제2의 이영표가 있나.


“오랜 시간 왼쪽 풀백 이야기가 나왔다는 걸 안다. 대개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아 특정 선수를 꼽을 수 없다는 것처럼. 만족스러운 선수가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 지목할 수 없다고 본다.”


-향후 계획은 세웠나?

“미래를 당장 언급할 수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고, 확실치도 않다. 분명한 건 하고 싶은 일과 책임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 축구 관련 일이다. 축구를 통해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 또 즐길 수 있다면 하고 싶다. 2∼3년 정도는 부족함을 채우고, 모르는 걸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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