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ML 타임슬립] 기적을 쏘아올린 오티스 그리고 두 번의 PS MVP

입력 2013-11-2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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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월드시리즈 MVP인 데이비드 오티스. ‘빅파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86년간 이어져 온 ‘밤비노의 저주’를 푸는 단초 역할을 했다. 사진제공|메이저리그 사무국

■ 2004년 레드삭스 ‘밤비노의 저주’ 탈출

양키스와의 ALCS서 3연패 후 4연승
4·5차전 연장서 기적의 끝내기 작열
31타수·3홈런·11타점…첫 PS MVP
WS 카디널스에 전승 86년 만에 우승

올 시즌 WS서도 타율 0.688 우승 공신

‘빅파피’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오티스(37)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2013 월드시리즈에서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1·2차전에서 각각 홈런포를 때린 것을 포함해 타율 0.688, 6타점을 올리며 보스턴 레드삭스가 4승2패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 1등 공신이 됐다. 카디널스 투수진에게 오티스는 공포 그 자체였다. 메이저리그 17년 경력의 오티스가 포스트시즌에서 MVP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의 첫 번째 MVP는 86년간 이어져 온 ‘밤비노의 저주’를 푼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이었다.

라이벌 뉴욕 양키스가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팀의 영예를 안으며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구단으로 명성을 떨치는 사이 레드삭스 구단은 ‘밤비노의 저주’에 시달리며 86년이나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03년에도 그랬다.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7차전에서 레드삭스는 아웃카운트 5개를 남기고 5-2로 양키스에 앞섰으나 에이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지나치게 신뢰한 그래디 리틀 감독의 판단 미스로 동점을 허용하더니 결국 연장 11회 애런 분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역전패를 당했다.

2004년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레드삭스는 애너하임 에인절스를 제압하고 리그 챔피언십 결승에 진출했다. 이번에도 상대는 역시 양키스였다. 커트 실링을 내세운 1차전에서 7-10으로 무릎을 꿇은 레드삭스는 2차전에서도 마르티네스를 출격시켰지만 1-3으로 분패했다. 홈으로 옮겨와 치른 3차전에서는 난타전 끝에 8-19로 대패를 당해 시리즈 전적 3패로 궁지에 몰렸다.

운명의 4차전, 레드삭스는 0-2로 뒤진 5회말 오티스의 2타점 적시타 등을 앞세워 3점을 뽑아내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어진 6회초 바로 2점을 빼앗겨 3-4로 다시 리드를 당했다. 양키스의 조 토리 감독은 ‘수호신’ 마리아노 리베라를 8회부터 등판시켜 일찌감치 시리즈를 끝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펜웨이파크에 모인 팬들의 뇌리 속에 꿈에서도 생각하기 싫은 ‘밤비노의 저주’라는 단어가 맴도는 순간, 기적이 시작됐다. 9회말 선두로 나선 케빈 밀라가 안타를 치고 출루하자 테리 프랑코나 감독은 발이 빠른 데이브 로버츠를 대주자로 기용했다. 로버츠는 리베라가 빌 밀러를 맞아 초구를 던질 때 바로 2루로 스타트를 끊어 도루에 성공했다. 흔들린 리베라를 상대로 밀러가 극적인 적시타를 뽑아내 로버츠가 홈을 밟자 펜웨이 파크는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연장 12회말 선두 매니 라미레스가 양키스의 바뀐 투수 폴 콴트릴을 상대로 안타를 치고 출루한 뒤 오티스가 우측 담장을 넘기는 통렬한 끝내기 투런 홈런을 터뜨려 팀의 4-2로 승리를 이끌었다. 여전히 시리즈 전적 1승3패로 열세를 보였지만 레드삭스 팬들은 마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도 차지한 듯 오티스의 이름을 열광적으로 연호했다.

5차전도 오티스의 독무대였다. 1회말부터 적시타로 선제 타점을 올리며 기세를 올렸다. 2-4로 리드를 당해 패색이 짙어진 8회말에는 톰 고든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터뜨려 추격의 불을 당겼다. 밀라가 이번에는 볼넷으로 출루하자 또 다시 대주자로 나선 로버츠는 트로트 닉슨의 안타로 3루까지 진루한 후 제이슨 베리텍의 희생 플라이 때 홈을 밟아 경기는 다시 4-4 동점이 됐다. 연장 14회말 2사 1·2루에서 타석에 들어 선 오티스는 양키스의 에스테반 로아이자와 10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짜릿한 끝내기 중전 적시타를 때려 로버츠를 홈으로 불러 들였다. 무려 5시간 49분의 혈투 끝에 승리의 여신은 레드삭스에게 미소를 지었다.

다시 양키스타디움으로 옮겨 져 치른 6차전에서는 오른쪽 발목 부상을 입은 실링의 ‘핏빛 투혼’에 힘입은 레드삭스가 4-2로 승리를 차지했다. 4회초 베리텍의 적시타와 올랜도 카브레라의 3점 홈런이 터져 승기를 잡은 레드삭스는 양키스의 반격을 2점으로 틀어 막고 시리즈 전적 3승3패를 기록했다.

7차전을 앞두고 레드삭스 선수들을 락커룸에 모여 영화 ‘미러클’을 함께 감상했다. 1980년 동계 올림픽에서 절대 열세라는 예상을 뒤엎고 소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미국 아이스하키 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를 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오티스는 1-0으로 앞선 1회초 양키스 선발 케빈 브라운을 상대로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작렬시켰다. 챔피언십 시리즈 3번째 홈런이었다. 2회에는 만루 기회에서 조니 데이몬이 바뀐 투수 하비에르 바스케스로부터 만루 홈런을 때려 점수는 순식간에 6-0으로 벌어졌다. 미 동부시간으로 밤 12시1분, 루벤 시에라가 친 타구를 잡은 2루수 포키 리스가 1루수 더크 민트케이비치에게 공을 던졌다. 레드삭스가 10-3으로 완승을 거두고 1986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감격을 맛봤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연패 뒤 4경기를 모두 승리로 장식하는 ‘미러클’을 완성한 것이어서 그 기쁨은 배가 됐다. 31타수 12안타(타율 0.387), 3홈런, 11타점을 기록한 오티스는 지명타자로는 사상 처음으로 포스트시즌 MVP를 차지했다. 양키스의 벽을 뛰어 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레드삭스는 4전 전승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제압하고 86년이나 이어진 ‘밤비노의 저주’를 마침내 풀며 우승의 한을 풀었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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