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 전 세대를 아우르는 생활 문화로 확산될 것"

입력 2013-11-22 17:3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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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정의했다. 호모 루덴스란 ‘놀이하는 인간’,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가 놀이를 하는 것이고, 놀이는 문화와 사회를 창조하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개념은 21세기 문화콘텐츠 시대에도 고스란히 일치한다. 오늘날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문화콘텐츠(방송, 영화, 만화, 게임, 음악, 스포츠, 테마파크, 축제 등) 산업은 모두 놀이를 근간으로 한다.


인간의 삶 속에 깃든 놀이의 종류와 형태는 매우 다양한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전해온 놀이 문화로는 ‘보드게임’을 들 수 있다. 보드게임이란, 놀이판 위에 말이나 카드를 놓고 일정한 규칙에 따라 진행하는 놀이를 일컫는다. 전통적인 보드게임은 바둑이나 장기, 체스, 윷놀이 등이 있으며, 현대적인 보드게임은 젠가, 모노폴리 등이 있다. 보드게임은 재미뿐만 아니라 건전한 생활 문화라는 의미와 교육적 가치를 지녔다. 이에 미국이나 독일 등 선진국에는 보드게임을 즐기는 문화가 널리 확산됐다.

반면 국내에는 아직 보드게임 문화가 일상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보드게임이라 하면 부루마블이나 할리갈리 등 몇 가지 게임만을 떠올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만약 국내에 보드게임 문화가 대중화된다면 어떨까. 놀이를 통해 문화적 창조력을 발산하는 21세기형 인재, 호모 루덴스로 거듭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모바일 게임 ‘모두의 마블’의 성공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보드게임은 IT, 게임, 교육 업계에서도 가장 집중하는 분야다.

무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아직은 잘 알지 못하는 보드게임. 이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고자 국내 1위 보드게임 전문기업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정영훈 대표를 만났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2004년 설립된 보드게임 전문기업으로 보드게임 개발, 유통, 판매를 아우르고 있다.


보드게임의 잠재력? 재미와 소통, 교육 효과, 문화적 가치까지

흔히 ‘보드게임’ 하면 몇 가지 유명 게임만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전 세계에 유통되는 보드게임은 4만여 종이라고 한다. 예상 외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국내에는 약 2,700종의 보드게임이 유통되고 있으며, 그 중 코리아보드게임즈가 약 2,000종을 유통하고 있습니다. 신작 게임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요. 작년에는 국내에 60여 종의 신작 게임이 등장했습니다”

수많은 보드게임 종류만큼 보드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치도 다양하다. 일단 재미있다. 또한 각종 보드게임을 통해 전략적 사고력, 집중력, 문제해결능력, 협동심, 자기조절능력 등을 기를 수 있다고. IQ 테스트에서 상위 2%에 드는 이들로 구성된 ‘멘사’에서도 매년 추천 보드게임을 선정해 발표한다.

“보드게임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 때문입니다. 또한, 보드게임은 여러 사람이 함께 즐기는 게임인 만큼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즐거움을 매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것은 보드게임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보드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와 유익함이 크지만, 현재 국내에는 보드게임이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잡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보드게임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보드게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보드게임은 직접 설명을 듣고 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드게임 정보를 접하는 경로가 협소하다 보니, 기존에 잘 알려진 게임만 가끔 즐기고 다른 게임은 알지 못하는 거죠. 또한 보드게임을 하려면 함께 즐길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마다 각자 취향이 다르니 같이 게임을 할 지인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장벽을 허물고자 코리아보드게임즈가 나섰다. 현재 코리아보드게임즈는 보드게임 체험 행사 및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보드게임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보드게임을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체험입니다. 코엑스 유아교육전, 지스타 등에서 체험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아무리 보드게임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보여준다 한들, 직접 게임을 해 보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죠. 또한, 보드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다이브다이스 및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을 연결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발적인 행사를 통해 보드게임 문화를 확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에 정 대표는 최근 보드게임의 교육적 효과를 활용한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찾아가는 게임 문화 교실 사업’을 정부와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방과 후 학교 돌봄 교실’ 사업의 일환으로 보드게임을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금년 연말까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내년부터 실제 사업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또한, 현재 이마트 문화센터에서 보드게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다음 달에는 홈플러스에도 강의를 시작합니다”

이 외에도 보드게임 문화를 알리고자 다각도로 고심하고 있다고. 문화 확산과 관련해 바라는 점이 있는지 묻자, 그는 ‘도서관 캠페인’을 꼽았다.

“도서관에 보드게임이 납품된다면 문화 산업 측면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이득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국 도서관에는 보드게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독일 출판사 중에는 보드게임을 제작하는 곳도 많습니다. 즉, 보드게임을 책으로 취급하는 거죠. 사용자들도 보드게임을 해보고 싶지만 일일이 구입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드게임이 책과 같이 유익한 문화라는 것이 널리 확산됐으면 합니다”


토종 보드게임의 저력, 전 세계 시장을 넘보다

현재 전세계에서 보드게임이 가장 활성화된 시장은 미국과 유럽이다. 코리아보드게임즈에 따르면 미국 시장은 18억 달러(한화 1조 9,000억) 규모, 유럽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13억 유로(한화 1조 8,500억)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그 외에 중국이나 일본 등은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

“유럽 사람들은 보드게임을 책처럼 생각합니다. 장서가들이 소유한 책을 자랑하듯이, 유럽인들은 보드게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자랑하지요. 독일에는 매년 10월 세계 최대 보드게임 박람회 'Spiel(슈필)'가 개최됩니다. 또한, 일본에서 열리는 토이 페어에 방문하면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보드게임을 선보이는데요, 기업에서 만드는 것보다 기발하고 재미있는 게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현재 국내 보드게임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보드게임이 자리잡은 미국이나 유럽 시장보다는 국내 시장의 성장률이 눈에 띄게 큰 것.

“국내 도매 시장 규모는 500억 규모이며, 소매 시장은 약 2,000억 원 규모로 추정됩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매년 2~3% 정도의 성장률을 보이지만, 국내 보드게임 시장의 성장률은 20% 정도로 10배 가량 큽니다”

물론, 이와 같은 성장에는 다양한 노력이 깃들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게임 개발이다. 현재 보드게임 개발 분야는 주로 해외 업체들이 강세다. 이에 맞서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작년부터 게임 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게임 개발에 투자한지는 약 1년 남짓이지만, 벌써 해외에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작년에 ‘코코너츠’라는 게임을 개발했습니다. 코코너츠는 원숭이 모양 발사대를 이용해 코코넛을 튕겨 바구니에 넣는 게임입니다. 지난 달 ‘슈필 2013’에 참가해 코코너츠를 선보였는데 현지 반응이 좋았어요.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보드게임 긱(Boardgame Geek)’이라는 사이트에서 전문 평론을 담당하는 에릭 마틴이 ‘슈필 2013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게임 3가지’를 거론했는데, 그 중 하나로 코코너츠가 선정됐습니다. 현재 유럽에 수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가 개발한 ‘파라오코드’는 독일 초등학교 수업에 활용하는 보드게임으로 공식 등록됐다. 전 세계 보드게임 시장을 미국과 유럽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파라오코드는 8, 10, 12면체의 주사위 3개를 굴려 나온 숫자를 조합해 정답을 찾는 게임입니다. 사칙 연산을 암산으로 하는 게임으로, 긴장감과 박진감이 높은 것이 특징입니다. 북유럽과 러시아 등 수학 분야에서 강세를 보이는 국가들이 이 게임에 주목해, 유럽 전역에 출시됐습니다. 독일의 초등학교에서는 파라오코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성공사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향후 5년 내 아시아 시장에서 보드게임 전문기업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해외 시장을 공략하려면 좋은 게임을 개발해 수출해야 한다. 정 대표는 “현재는 내수 비중이 대다수를 차지하지만, 향후에는 수출 비중이 20~30% 이상을 차지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드게임, 누구나 함께 즐기는 생활 문화로 거듭날 것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계획과 목표는 보드게임 문화 확산 및 해외 시장 진출 외에도 다양하다. 우선, 모바일 게임 산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모두의 마블’이 성공을 거둔 사례를 보면, 모바일 게임 분야에서 보드게임은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물론 ‘보드게임은 오프라인으로 즐기는 게임이기 때문에 두 영역이 충돌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코리아보드게임즈의 견해는 다르다.

“온라인 PC 게임이나 모바일 게임들을 살펴보면 보드게임이 융합된 사례가 꽤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온라인 TCG 카드게임 ‘소드걸스’의 제작에 코리아보드게임즈가 참여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오프라인과 온라인 요소가 융합하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모바일이란 일상을 바꾸는 중요한 플랫폼입니다. 모바일이 지닌 ‘언제 어디서나 접속한다’는 장점과 보드게임이 지닌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느린 시각’ 등을 균형 있게 접목한다면, 양질의 모바일 게임이 탄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현재 회사 역량이 주로 보드게임 퍼블리싱을 바탕으로 하고, 모바일 컨버전스 역량은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서 모바일 업계에서 좋은 파트너를 만나 상호 호흡하고 싶습니다”


보드게임을 접할 수 있는 유통 채널도 개척하고 있다. 코리아보드게임즈는 현재 온라인과 대형마트에 보드게임을 유통하고 있다. 국내 3대 유통 채널은 크게 온라인, 대형마트, 홈쇼핑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에 앞으로는 홈쇼핑 채널을 선점할 계획이다.

“보드게임 문화를 확산하려면 신제품을 홍보할 수 있는 채널을 찾아야 하는데요, 신제품을 알리는 데 홈쇼핑이 강력한 채널이 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홈쇼핑도 ‘스팀 교육(STEAM, 융합 교육)’에 적절한 상품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에 12월부터는 GS홈쇼핑에 진출합니다. 앞으로는 보드게임을 접하는 경로가 보다 다양해질 것입니다”

현재는 보드게임 시장이 어린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앞으로는 보드게임 시장에 실버 세대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현재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으로 접어들고 있으며, 노년에 즐길 여가생활을 필요로 합니다. 이들 세대에게 보드게임이 적합한 취미 활동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보드게임이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생활 문화로 거듭나기까지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글 /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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