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이긴 독한 남자 최태웅 “마흔 살 현역 내가 보여준다”

입력 2014-01-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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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최태웅. 스포츠동아DB

■ 38세 베테랑세터가 사는 법

좋은조건 불구 V리그 최초 트레이드 거부
권영민 흔들리면 분위기 살리는 보조세터
림프암 치료·발목 통증 참고 빛나는 투혼


프로배구 V리그 현대캐피탈의 베테랑 세터 최태웅(38)은 최근 다른 팀 유니폼으로 갈아입을 뻔했다. 세터가 필요한 A팀에서 솔깃한 제안을 했다. 이번 시즌 동안 필요한 선수를 주고받는 임대형식의 트레이드였다. 만일 A팀이 우승할 경우 최태웅의 임대는 1년 더 연장하는 조건이었는데, 결과는 ‘없던 일’이 됐다. 최태웅이 그 트레이드를 거부했다. V리그 역사상 최초로 선수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다.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은 “본인에게 의사를 물어봤더니 가지 않겠다고 했다. 새로운 팀에 옮겨서 풀타임으로 뛰는 것에 부담도 컸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현대캐피탈에 남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성우 사무국장은 “임대로 가서 선수가 열심히 할 의지가 생기겠는가. 앞으로 우리 팀에 필요한 좋은 지도자 감인데다 그동안 해온 공도 있고 본인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며 트레이드 무산을 확인했다.


● 주전보다는 보조세터로 내 역할 하겠다

최태웅은 V리그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선수다. 지난 시즌인 2013년 1월23일 대한항공전에서 V리그 최초로 1만 세트를 달성했다. 통산 2000개부터 시작해 1만개 까지 계속 앞서갔다. 그 뒤를 따르는 선수는 팀 후배 권영민이다. 이번 시즌인 2013년 12월12일 대한항공전에서 역대 2번째의 1만 세트를 달성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최태웅은 선발보다는 경기 도중에 등장해 분위기를 바꾸는 보조세터 역할을 하고 있다. 권영민과 함께 다른 6개 구단이 가장 부러워하는 세터진을 이루는 데는 최태웅의 역할이 크다. 지난해 12월29일 러시앤캐시전에서도 먼저 세트를 빼앗기고 권영민이 흔들리자 김호철 감독은 즉시 최태웅을 불렀다. 결국 베테랑은 경기의 흐름을 바꿨고, 팀에 3-1 역전승을 안겼다. 그날 경기를 TV로 지켜봤던 트레이드를 원한 A팀은 “최태웅을 주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털어놓았다. 새해 첫 경기인 대한항공전과 5일 라이벌 삼성화재전 때도 권영민이 흔들릴 때마다 들어가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1일 대한항공전에서는 운명의 5세트를 책임졌다. 프로출범 이후 세트당 평균 11∼12개의 세트를 성공시켰지만 지난 시즌부터 세트당 7개로 줄었다. 이번 시즌에도 7.036으로 간신히 세트당 7개를 넘어서고 있지만 팀이 필요한 순간에 해결해주기 때문에 가치는 숫자 이상이다.


● 전설의 세터는 온몸이 아프다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다. 최태웅도 나이라는 괴물 앞에서 약해지고 있지만 그보다는 부상과 병이 더 괴롭힌다. 현재 오른 발목은 최악의 상황이다. 뼈가 웃자라 발속으로 파고드는 상황이다. 매일 발목을 잡아당겨 뼈가 파고들지 않도록 해야 제대로 걸을 수 있다. 만일 이 뼈가 굳어버리면 정상생활도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오른 발목의 통증 때문에 좌우로 체중이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경기에 뛰고 있다. 기적 같은 일이다. 림프 암도 최태웅을 괴롭히고 있다. 2010년 말 발견됐던 왼팔의 림프암 치료를 위해 요즘도 병원을 찾는다. 발병 초기에는 닷새 동안 치료받고 이틀을 쉬는 방사능 치료를 받았지만 요즘은 상황이 좋아져 일주일에 한 번씩 독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물론 이 치료 때문에 훈련을 거르는 일도 없다. 새벽 일찍 병원으로 출발해 치료를 마치면 천안 숙소로 돌아와 오후 훈련에 참가한다. 감독과 구단 직원 몇몇만이 병원에 가는 사실을 알 정도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대기시간 동안 쉬지 않는다. 오후훈련을 위해 근육을 강화시킨다며 홀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을 본 구단 직원은 그 열정에 감탄했다.


● 독한 남자 최태웅

김호철 감독은 최태웅을 가리켜 “독한 친구“라고 했다. 부상과 병으로 어지간하면 운동을 포기할만도 하지만 매일 배구만 생각하는 모습에 ”독하지 않으면 저렇게 못 한다“고 했다. 경기가 끝나면 전력분석원에게 많은 자료를 요청한다. 매일 자신의 경기를 분석하고 반성하고 또 다음 경기를 위해 준비한다.

이런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하루 24시간을 오직 배구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열정이 있기에 암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현대캐피탈과 FA 3년 재계약을 맺은 최태웅의 목표는 마흔살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이다. 구단이나 주위의 배려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실력으로 팀에 필요한 역할을 해서 마흔 살까지 배구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할 만큼 했는데 쉬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최태웅의 대답은 이랬다. “그동안 누구도 마흔 살까지 현역생활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

최태웅은 항상 코트에서 웃는다. 배구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기에 오랜 친구가 마냥 고마운 모양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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