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호, 31시간 고된 여정 끝 마침내 ‘약속의 땅’

입력 2014-01-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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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장현 기자, 홍명보호 브라질 동행기

중간급유·환승·지연…지루함과 사투
영화·음악·독서도 지치면 곯아 떨어져

15명 스태프 150여개 짐 챙기랴 헉헉
환승 수속 땀뺐더니 2시간 연착 허탈

이구아수 도착하자 대규모 환영 인파
선수들 “월드컵 체제 이제야 실감난다”


축구대표팀 홍명보호는 15일 오전 5시(한국시간) 동계 강화훈련지인 브라질 포스 도 이구아수에 도착했다. 이구아수에서 미국까지 앞으로 3주 간 이어질 전지훈련의 첫 걸음이었다. 이구아수 공항에는 마중 나온 현지 교민들이 태극기가 그려진 대형 플래카드를 들고 대표팀 선수단을 환영했다. 브라질 취재진도 대거 몰려들어 열기를 더했다. 공항 출국장을 나온 선수들은 모두 “월드컵 체제라는 게 이제야 실감이 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대표팀을 돕는 스태프는 굉장히 바빴다. 인천국제공항 출국부터 브라질 입국까지 신경 쓰며 챙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선수들처럼 여권과 비행기 티켓만 들고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장비 담당 등 지원팀을 포함한 15명의 스태프는 넓고 편안한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하는 선수들과는 처지가 달랐다. 산적한 짐들을 일일이 부치고 확인하느라 가장 먼저 움직였고, 또 가장 늦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물자 수송도 엄청났다. 챙긴 짐들만도 무려 150여 개에 달했다.

브라질 경유지 상파울루에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상파울루 과룰류스 공항은 승객이 맡긴 짐이 원체 늦게 나오기로 유명한 곳이라 대표팀 스태프는 공항 측의 협조를 구해 선수단 짐을 가장 먼저 찾도록 했고, 전용 창구를 마련해 일반 승객들과는 따로 입국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상파울루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국내선 환승까지 여유 시간이 2시간10분에 불과해 서둘러야 했다. 하지만 정작 국내선인 이구아수행 비행기는 별 이유도 없이 2시간가량 연착됐다. 애초에 서둘 필요도 없었던 셈이다. 물론 6월 월드컵 때는 대표팀은 전용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대기실에서 기약 없는 호출을 기다리던 홍명보 감독은 “브라질은 항공편 연착이 비일비재하다. 작년 12월 초 월드컵 조 추첨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현지인들은 연착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기나긴 비행시간과 3차례에 걸친 복잡한 경유 스케줄이었다. 선수단 모두 괴로움을 호소했다. 중간 급유지 미국 LA를 거쳐 상파울루까지 이동하는데 25시간이 소요됐다. 여기에 4시간을 더 기다려 이구아수까지 1시간30분을 날아갔다.

입국하고 수속 밟고 짐을 옮길 때면 곳곳에서 “버티는 게 가장 큰 일”이라는 푸념이 들려왔다. 한국에서 미주 대륙까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며 하루를 벌었지만 피로라는 달갑지 않은 친구(?)도 얻었다. 일행이 이구아수에 도착한 현지시간 14일 오후는 한국시간 15일 새벽이었다. 인천에서 이구아수까지 오는데 정확히 31시간이 소요됐다.

저마다 지루한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나름의 준비를 하긴 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역시 영화 시청이나 음악 감상 등이었다. 자신의 태블릿 PC에 드라마, 외화 시리즈물을 담아와 공유하기도 했다. 무난한 시차 적응을 위해 가급적 비행기에선 잠을 자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었으나 대개는 기내식을 먹고 곯아 떨어졌다.

일부 독서파도 보였다.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은 선수단에 경영 컨설턴트 에릭 시노웨이와 프리랜서 작가 메릴 미도우의 공동 저서 <하워드의 선물>을 선물했다. 40년 넘게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로 재직해온 세계적인 석학 하워드 교수와 그의 제자인 에릭의 대화록을 정리한 책이다. 평범한 어느 날 교정을 거닐던 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하워드 교수의 인생론과 삶의 지혜가 담겼다. 기적과 같이 깨어나 자신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난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았다”는 하워드 교수의 말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선수들도 ‘후회 없는 인생’이란 문구에서 또 다른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무리해서 잘하기보다는 일말의 후회가 남지 않도록 내가 가진 걸 보이고 싶다”고 골키퍼 정성룡(수원 삼성)은 말했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위기론’조차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긍정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렇게 한국 축구의 2014년이 열리고 있었다.

이구아수(브라질)|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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