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박은선 “운동하다 하늘보고 울고…마음이 힘드니 몸도 아파”

입력 2014-02-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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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논란의 중심에 섰던 여자 축구선수 박은선이 사태 이후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소속 팀 서울시청이 동계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경남 합천의 한 커피숍에서 4일 박은선을 만났다. 합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 성정체성 논란 그후…박은선 일문일답

자꾸 결론 미뤄지자 우울증까지 찾아와
인권위에서 신경 많이 써줘 그나마 위안
월드컵 기회 또 오면 한 건 보여줄텐데


여자실업축구 WK리그 감독들의 ‘성 정체성’ 제기로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박은선(28·서울시청·사진)과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사태의 파장을 우려한 서울시청 여자축구단은 박은선과 만남을 줄곧 고사해왔다. 수차례 시도 끝에 어렵사리 기회가 닿았다. 4일 서울시청이 동계 전훈을 하고 있는 경남 합천에서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박은선과의 일문일답.


-어떻게 지냈나.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예전처럼 방황하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마음이 안 좋다보니 몸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 100% 컨디션을 못 찾고 있다. 다만 날 도와주시고 생각해주시는 많은 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훈련도 꽤 일찍 시작했다고 들었는데.

“입단 1년차였던 2012년은 많이 부족했다. 작년부터 몸이 살아났다. (서정호)감독님도 80% 정도 몸이 됐다고 격려해 주셨다. 그냥 골 넣을 것 같은 느낌, 이길 것 같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지난해 리그에서 19골을 넣었고, 전국체전도 우승했으니 만족한 시간이었다. 올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훈련도 일찍 시작했다. 작년 11월부터 몸만들기를 시작했는데. 이번 일이 터져서….”


-사태가 많이 길어진다.

“자꾸 결론이 나오지 않다보니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도 들더라. 정말 내게 문제가 있어서 결론 도출이 미뤄지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접했다. 여자로 태어나 여자선수로 지냈는데. 날 아시는 분들이 ‘정말 날 죽이려한다’ 싶었다. 우울증도 심했다. 운동하다 하늘보고 갑자기 울고.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다.”


-최근 제주에서 다른 감독들을 만났다던데.

“솔직히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연습경기도 잡혀있다는 소식에 그 분들을 볼 자신이 없었다. 감독님께 개인훈련만 하겠다고 했더니 연습경기를 취소해 주셨다. 그런데도 우연히 몇몇 분들을 만났다. 동료들에 묻혀 인사를 드렸다. 계속 신경 쓰였다. 운동선수가 기분에 좌지우지되면 안 되는데 많이 서글프다.”


-몸은 괜찮은가.

“사실 어제(3일) 합천에 내려오자마자 병원을 찾아가 MRI를 찍어봤다. 예전 두 차례 수술을 받은 오른쪽 무릎이 별로 좋지 않다. 다행히 인대나 연골에 문제는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가족은 요즘 어떤지.

“가족은 훨씬 고통스러웠다. 나 없을 때 많이 우셨다고 한다. 내 앞에서는 일부러 밝게 해주신다. 교회에서 기도도 많이 해주신다. 엄마와 언니는 잘 참고 있는데, 오빠의 마음은 잘 안 풀린다. 계속 법적 조치를 취하자고 한다. 일단 (인권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인권위 분위기는 들어봤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신경을 많이 써주신다는 느낌이 들어 많이 위안이 된다. 혹여 내 마음이 더 다칠까봐 배려도 많이 해준다. 조사관께서 전화를 종종 걸어와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느냐’고 격려도 해준다.”


-여자 대표팀에 대한 갈망도 클 텐데.

“전혀 이룬 것도 없이 벌써 20대 후반이다. 이제 길어야 5년 정도 현역 생활을 더 할 것 같은데, 한 번 더 월드컵에 서고 싶다. 2003년 미국여자월드컵은 너무 어렸고 경험도 없어 떨기만 했다. 후회가 컸다. 5월 베트남아시아선수권에서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고, 내년 캐나다여자월드컵에서 미련 없이 뛰고 싶다. 꿈이 이뤄졌으면 좋겠다. 기회만 닿으면 한 건 보여줄 것 같다.”

합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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