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박은선 “나는 피눈물 흘렸는데 사과문자 하나 없었다”

입력 2014-02-05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여자축구 박은선이 작년 말 성 정체성 논란 이후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통해 처음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이번 파문을 일으킨 해당 지도자들의 진솔한 사과가 선행돼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은선이 4일 합천의 한 커피숍에서 심정을 밝히고 있다. 합천 | 남장현 기자

■ 성 정체성 논란 석달후…여자축구 박은선의 절규

엄청난 충격에 스트레스·불면증까지
가족들도 괴로운 나날이었다
전훈지서 만나도 사과 없던 감독님들
앞으로 어떻게 얼굴 봐야 할까요…


지난해 여자축구선수 박은선(28·서울시청)은 논란의 중심이었다. 서울시청을 제외한 6명의 여자실업축구 WK리그 감독들이 지난해 10월 말 비공식 간담회를 갖고 “박은선 문제(성 정체성)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2014시즌 리그를 보이콧 하겠다”고 결의하면서 촉발된 성 정체성 논란은 벌집 쑤셔놓은 듯 일파만파였다. 해외 언론도 비상을 관심을 가졌다.

이후 석 달이 흘렀다. 박은선의 근황이 궁금했다. 어른들(감독들)에게 큰 상처를 받은 이후 한동안 닫았던 자신의 SNS 계정을 최근 다시 열고 간혹 소식을 전했지만 이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그동안 박은선은 언론 인터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직접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전화통화가 아닌 얼굴을 마주보며 속내를 듣고자 했다. 때마침 서울시청선수단이 경남 합천에서 동계전지훈련을 시작했다. 어렵게 약속을 잡고 4일 경남 합천으로 향했다.

합천 읍내 한 커피숍에서 박은선과 마주했다. 다행히 박은선의 얼굴은 밝았다. 지방의 흔한 다방이 아닌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더 익숙했고, 영하의 날씨에 쓴 커피 대신 시원하고 달달한 모카 음료를 주문하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20대 아가씨의 모습도 엿보였다.

하지만 깊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 듯 했다. 웃음도 미소도 보여줬지만 간혹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불거진 눈시울에서는 마음 속 생채기를 느끼게 했다. 설날을 앞두고 제주에서 진행된 전지훈련 내내 심각한 불면증으로 하루 3시간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스트레스도 심해 정신과 진료도 생각했지만 의료 기록이 남을까봐 심리 상담만 받았다고 했다.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번 사태를 만든 축구인들로부터 사과나 미안함의 뜻을 전달받은 적이 있느냐고. 돌아온 답은 실망스러웠다. “아니요. 아직까지 그런 이야기(사과)를 접한 적이 없어요.” 서울시청 서정호 감독도 같은 대답을 전했다.

박은선이 지도자들과 만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서울시청이 제주에서 훈련할 때 WK리그 2개 팀과 우연히 동선이 겹친 적이 있었는데, 해당 팀 감독들은 박은선에게 아무런 메시지도 전하지 않았다.

“솔직히 사과 문자라도 남겨주실 줄 알았는데. (제주에서) 마주쳤을 때조차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제 가족들은 엄청난 충격에 피눈물을 흘렸는데. 이제 뭘 해야 할지. 앞으로 그 분들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이 시간이 빨리 흘렀으면 좋겠어요.”

현재 박은선 사태는 국가인권위원회 차원에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소위원회가 1월 중순 끝났고, 최종 결론은 이달 말이나 3월 초에 나온다. 서울시청은 이를 확인한 뒤 추후 대책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그러나 이보다 선행돼야 할 것이 있다. 해당 지도자들의 진솔한 사과와 어른다운 책임 있는 자세다.

합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