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6주년 특집] V리그 감독들에게 길을 묻다

입력 2014-03-2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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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감독들은 좋은 세터의 조건으로 배짱, 리더십, 기술 등 다양한 덕목을 들었다. 신생 팀 러시앤캐시가 올 시즌 선전한 것도 세터 이민규의 힘이 컸다. 스포츠동아DB

■ 세터가 가져야 할 최고 덕목은?

배구는 세터놀음이다. 세터가 어떤 활약을 하느냐에 따라 대부분 승패가 갈린다. 세터는 감독을 대신해 코트에서 팀의 전술을 결정하고 실행한다. 이때 공격수들에게 공을 잘 배분해야 득점이 된다.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이 배구(排球)를 배척할 배(排)자가 아닌 분배할 배(配)자 배구(配球)라고 하는 이유다. V리그 감독들에게 ‘세터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은 무엇인지’를 물었다. 대답은 다양했다. 감독의 배구관과 세터를 평가하는 기준이 잘 드러났다.


“급하면 외국인선수에 높은 토스
단순한 요즘 배구…재미가 없어”

정신력·리더십·성실성·테크닉
감독들 ‘세터의 최고 덕목’ 꼽아


황현주 감독(현대건설) 누가 뭐라 해도 배짱 있어야


이성희 감독(KGC인삼공사)
세터가 흥분하면 경기 망쳐


류화석 감독(흥국생명)
공격수와 잘 지내는 사교성


이선구 감독(GS칼텍스)
토스에 경기 외적 요소 NO!


김호철 감독(현대캐피탈)
믿고 따르게 만드는 리더십


김종민 감독(대한항공)
모든 선수를 배려하는 마음


신치용 감독(삼성화재)
상대 선수들의 생각 읽어야


이정철 감독(IBK기업은행)
흐름 끊지 않는 안정적 토스


신영철 감독(한국전력)
손끝 감각이 모든 것을 결정


서남원 감독(도로공사)
원하는 곳에 올리는 정확성


문용관 감독(LIG손해보험)
세터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김세진 감독(러시앤캐시)
이민규 영입에 감독직 수락


강만수 감독 (우리카드)
“높게만 띄워주는 토스가 전부는 아니다”

● 멘탈로 본 세터의 필요조건


세터는 배짱이 있고 냉정해야 하며 침착하고 사교성도 좋아야 한다고 했다. 성실하면 더 좋고 리더십도 필요하다. 이런 모든 것을 갖춘 세터는 존재할까? 아니면 타고나는 것일까?

세터출신 현대건설 황현주 감독은 배짱을 세터의 첫 번째 덕목으로 들었다. “토스기술은 하면서 는다. 경험이 쌓이면 상대가 눈에 보이고 원하는 토스를 할 수 있다. 선후배 관계없이 코트에서 과감하게 자기 배짱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선배가 뭐라고 해도 감독이 뭐라고 해도 자기 주관으로 해야 좋은 세터다.”

현역시절 침착한 플레이로 고려증권 전성기를 이끌었던 KGC인삼공사 이성희 감독은 냉정함과 침착함을 원했다. “세터가 덜렁거리거나 흥분하면 경기를 망친다. 김사니가 간혹 그런 모습을 보였다. 세터만의 성격이 있다. 흥분해서 자기 수비수와 부딪치거나 만져서는 안 될 볼을 만진다든지 하는 행동 모두가 흥분한 탓이다. 지금 선수 가운데서는 IBK기업은행 이효희가 가장 침착하다. 지난해 우승 뒤 많이 바뀐 것 같다. 세터는 과도한 세리머니도 필요 없다. 그런 선수를 싫어한다. 현역 때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오랫동안 여자배구 지도자 생활을 한 흥국생명 류화석 감독은 사교성을 언급했다.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공격수와 잘 지내는 사교성이 필요하다.”

GS칼텍스 이선구 감독은 “세터는 얼음처럼 냉정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던 이 감독은 중동에서 겪었던 사례를 들었다. “여러 부족들이 얽힌 경우가 많다. 한 팀에 형제가 4명인 팀도 있었다. 그 팀은 망했다. 세터가 형제들에게만 공을 올려주니 팀이 될 리 없었다. 중동 선수들은 같은 부족에게만 쉬운 공을 줬다. 친구나 인연 선호도 등으로 공을 올려주면 팀은 망가진다. 사이가 나쁜 선수에게는 어려운 2단볼을 주고 친한 선수에게는 노마크로 빼주는 식이다. 우리 여자선수들도 아직 선배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다. 친구도 선배도 없이 그날 경기에서 컨디션이 좋은 선수에게 많이 올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 왜 리더십, 성실성인가

현역시절 ‘컴퓨터 세터’라는 찬사를 들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현대캐피탈 김호철 감독과 대한항공 김종민 감독은 리더십을 세터의 최고덕목으로 들었다.

“공격수가 나를 믿고 따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먼저 나서 기량과 마음 씀씀이로 공격수들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강요한다고 되지 않는다. 선수 각자의 특성을 다 알아야 하고 평소에도 배려해야 한다. 경기 때 컨디션 좋은 선수는 살려야 하고 나쁜 선수는 이끌고 가야 한다. 그 선수를 버리면 공격수가 줄어든다. 상대 블로킹을 빼서 쉬운 공도 주면서 다독거려야 한다. 세터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감독이 지시한다고 그것을 다 따라서도 안 된다. 줏대가 있어야 좋다. 자신이 생각하는 배구를 하고 선수들을 밀고 당겨야 한다. 현역시절 그것 때문에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다. 그렇지만 때려죽여도 내가 원하는 대로 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한다.” (김호철 감독) 김종민 감독은 “코트 안에서 동료를 리드하고 코트 내외의 얘기를 귀담아 들을 수 있는 성격이 중요하다. 모든 선수를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디펜딩 챔피언 삼성화재 신치용 감독과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은 성실성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성실해야 한다. 헌신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훈련 때도 그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 공격수를 연구하고 배려해야 좋은 세터다. 해서는 안 될 것이 토스에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겠다는 생각을 담는 것이다. 평소 우리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지금 상대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라’는 것이다. 세터의 그 생각만 읽을 수 있으면 블로킹은 예상이 가능하다.”(신치용 감독) “노 블로킹을 만들어주는 것 보다는 공격수의 흐름을 끊지 않는 안정된 토스가 더 중요하다. 그런 것은 한 경기에 몇 차례 없다. 잘 될 때 까불지 말고, 자신을 내세우는 세터는 안 된다.”(이정철 감독).


● 세터에게 꼭 필요한 테크닉

현역시절 누구보다 빼어난 기량을 자랑했던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은 손끝의 감각을 언급했다. “세터는 두 손의 엄지 검지 중지 약지의 첫 마디 8개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 손끝의 감각이 중요하다. 공격수의 타점의 정점에서 공이 멈추는 느낌으로 토스해야 공격수가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 타고나기도 하지만 훈련으로 가능하다. 코트 바닥에서 1m 이상 떠 있는 공이라면 어떤 위치, 어떤 자세에서도 원하는 토스를 올려야 진짜 세터다.”

도로공사 서남원 감독은 정확성을 최고로 쳤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상대 블로커가 어디에 있고 어디가 낮은지 미리 보고 공을 보내는 판단력도 중요하지만 그 능력도 정확성이 있어야 유효하다. 상대를 보지 않고 혼자 자기 배구만 하는 세터가 의외로 많다.”

류화석 감독은 점프토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점프토스를 해야 상대를 속일 수 있다. 이효희가 가장 교과서적인 폼이다. 점프를 하는 이유는 공격수의 타점을 편안하게 만들어 쉽게 치기 위해서다. 손모양은 다이아몬드 형으로 해서 농구공 패스 하듯 아래로 스냅을 줘서 토스해야 백토스도 잘 된다.”

이정철 감독은 “선수가 원하는 타이밍에 올라가서 때리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이 상대 블로커를 살피고 예측해 올려주는 것이다. 세터는 전위 후위 대각선으로 큰 공격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야한다. 어려운 상황이면 그 방향으로 띄워주면 된다”고 했다.

신치용 감독은 힘을 뺄 것을 강조했다. 그는 “세터는 부드러워야 한다. 힘을 빼야 한다. 지금 황동일이 안 되는 것은 토스에 너무 힘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세터는 발도 머리도 중요하고 연애도 잘한다?

많은 배구인들은 “세터의 토스는 발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 밑으로 빨리 가서 자리를 잡고 올려야 좋은 토스, 볼 끝이 사는 토스가 나온다고 했다.

LIG손해보험 문용관 감독은 “감독은 단장, 세터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했다. “세터는 감독과 교감하고 함께 연구해야 한다. 가장 필요한 것은 블로커의 예측을 막는 것이다. 이전 경기와 다음 경기의 토스가 달라야 하는 이유다. 감독의 지시까지도 스스로 판단하는 배짱과 시야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머리 나쁜 세터는 성공하지 못 한다.”

어느 배구인은 “좋은 세터일수록 연애를 잘 한다”고 했다. 공격수와 평소 밀고 당기기를 잘 하다보니 연애 때 파트너와의 밀당에도 강하다는 것이다. “고스톱을 쳐도 세터 돈을 따지 말라”는 얘기도 있다. 신치용 감독의 말이다.

이번 시즌 기적의 성적(11승19패)을 올린 신생팀 러시앤캐시의 김세진 감독은 세터 이민규가 아니었으면 창단 팀 감독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김 감독은 “감독 제의가 왔을 때 대학 3학년 이민규를 움직일 수 있느냐고 먼저 물었다. 가능하다고 해서 감독직을 결정한 것이다”고 털어놓았다. 러시앤캐시는 세터 이민규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무서운 팀이 됐다. 현역시절 라이트로 뛴 것만 기억하지만 김세진 감독도 고등학교 때까지 7년간 세터생활을 했다.

예전 세터와 비교해 요즘 세터는 연구심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우리카드 강만수 감독은 “요즘 세터들은 쉽게 배구를 한다. 한마디로 게으르다. 급하면 외국인 선수에게 높이 띄워주는 단순한 배구를 한다. 현역 때 우리들은 레프트가 이동공격에 속공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요즘은 그런 기량을 볼 수 없다. 오직 높이 띄워주는 단순한 일만 요구한다. 그래서 요즘 배구가 재미없다”고 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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