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재영 “범인 죽여야 했던 父, 역대 가장 힘든 연기”

입력 2014-04-14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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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정재영은 “어떤 아빠냐고? 아들들과 요즘 TV 주도권 전쟁을 벌이는 개구쟁이 아빠다”고 말했다.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배우 정재영(44)은 언제나 유쾌한 배우다. 그는 촬영현장과 시사회 등에서 늘 분위기 메이커다. 인터뷰 때면 작품 설명보다 취재진을 웃기기에 바쁘다. 그런 그가 이번 만큼은 한없이 진지해졌다. 눈빛과 말투가 달라졌다. 낯선 모습에 쉽게 말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그는 왜 이렇게 진지해졌을까.

“원래 진지한 걸 못 견디는데 ‘방황하는 칼날’은 좀 달랐어요. 딸을 죽인 가해자를 죽인 아버지 역할이잖아요.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다 보니 남을 웃길 여력도, 제가 웃을 여유도 없더군요.”

‘방황하는 칼날’에서 정재영이 연기한 상현은 성폭행과 동시에 죽임을 당한 딸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낀다. 하지만 한 소식통으로 범인을 찾아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딸을 죽인 또 다른 가해자들을 찾기에 나선다.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영하 날씨의 허허벌판 설원에서 지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춥고 외로웠죠. 그런데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컸어요. 여태까지 한 작품 중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죠. 딸은 죽었지, 경찰의 수사는 늦지….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조급했을까요? 그래도 사람을 죽인 아버지를 헤아리기 어렵더라고요.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겉도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그냥 머리보다는 마음이 가는 대로, 진실하게 연기하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정재영은 촬영 중 낯선 느낌을 겪기도 했다. 그것도 여러 번. 대본을 읽고 연습하며 생각했던 감정이 촬영장에서 나오지 않아 당혹스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딸의 사망소식을 듣고 주검을 봤을 때 전혀 슬프지 않았어요. 망연자실한 느낌이었죠. 딸의 죽음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예상치 못한 감정이라 스스로도 놀랐어요. 배우 생활을 하며 드문 경험이었죠.”

이어 설원에서 한참을 울었던 경험도 털어놨다.

“자작나무 숲에서 딸의 환영이 ‘아빠, 이제 그만해’라며 위로하는 장면을 찍을 때 복받치더라고요. 모든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갖고 있는 미안함을 느꼈어요. 사랑한 만큼 표현하지 않은 마음이 끝에 눈물로 터져 버린 거죠. 끝나고도 눈밭에서 한참 울었어요.”

배우 정재영.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정재영은 관객들이 이 무겁고 어려운 영화를 회피하거나 쉽게 분노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견디기 힘든 영화도 분명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화내고 끝내기보다 이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으며, 누구의 책임이고 또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인지 생각해보자는 영화예요. 형사 억관(이성민)이 그걸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피해자와 피의자 사이에서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이죠. 다양한 입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네요.”

정재영은 올해도 쉬지 않고 달린다. 1월에 ‘플랜맨’에 이어 10일 개봉한 ‘방황하는 칼날’ 그리고 30일 개봉을 앞둔 ‘역린’까지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작품. 사실 전작 ‘열한시’(2013), ‘플랜맨’이 연달아 흥행을 하지 못했다. 그 역시 못내 아쉬워했다.

“스태프들이나 후배들에게 미안하죠. 어느덧 선배의 위치에 와 있는데 나 때문에 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흥행스코어는 정말 하늘의 뜻인 거 같아요. 야구선수 류현진도 계속 잘 하다가 갑자기 죽 쑤잖아요. 그런 거 보면 무슨 기운이 있나봐요.(웃음)”

하지만 정재영은 긍정의 기운을 잃지 않았다. 그는 “배우는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는 인생이다”며 “마음을 다잡고 반성하고 새롭게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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