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감독-김인식 감독(오른쪽). 스포츠동아DB
전력 관리·시즌 구상 등 1년 내내 고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신경안정제 복용도
백인천·김인식 등 신경계통 질환 앓아
열성팬 많은 구단 감독일수록 더 심해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질병에 대한 의사들의 권고사항에는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여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거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직업이 있다. 프로야구 감독이다.
LG 김기태 감독은 23일 개막 18경기 만에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주변인들은 “LG의 성적이 좋았던 지난해에도 이미 사퇴를 고민한 적이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야구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프로야구 감독이라는 자리. 그만큼 정신적인 부담과 압박도 상상을 초월한다. 감독들이 받는 억대 연봉의 절반이 ‘스트레스 값’이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다.
● 화려한 억대 연봉의 절반은 스트레스 값?
몇 년 전 팀을 4강으로 이끈 한 감독은 “팀 성적이 좋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 그렇지 않으면 가장 불행한 직업이 바로 프로야구 감독이다. 지금은 난 행복한 감독이지만, 당장 몇 달 후에 얼마나 불행해질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이 자리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감독의 스트레스는 1년 내내 끊임없이 이어진다. 승패에 따라 1주일에 6일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할 수밖에 없고, 매일 자신의 선택에 공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성공했을 때 얻는 찬사보다 실패했을 때 받는 비난이 훨씬 더 큰 건 당연지사. 야구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감독이 감당해야 하는 구단의 압력과 팬들의 원성도 커졌다. 겨우 한 시즌이 끝나면, 이번엔 선수단 전력관리는 물론 스프링캠프와 다음 시즌 구상까지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해야 한다. 대부분의 감독이 “위장병과 불면증은 기본으로 달고 산다”고 털어 놓는 이유다. 일부 감독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도 한다.
●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감독들
과거에도 수많은 감독들이 스트레스와 싸우다 쓰러져 충격을 안겼다. 롯데 사령탑이던 고(故) 김명성 감독은 순위싸움이 한창이던 2001년 7월 24일에 세상을 떠났다.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연일 폭음과 줄담배가 이어졌고, 결국 급성 심근경색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뿐만 아니다. 1997년 6월에는 백인천 당시 삼성 감독이 고혈압과 뇌출혈로 잠시 덕아웃을 비워야만 했다. 한 달 만에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해 9월 3일 LG와의 더블헤더 제1경기를 마친 뒤 제2경기 지휘를 포기하고 자진사퇴했다. 1999년 한화를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이희수 감독은 그해 중반부터 귀 뒷부분에 종양이 자라기 시작해 결국 이듬해 수술을 받고 건강상의 이유로 재계약하지 못했다. 2004년에는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이 뇌경색으로 투병하는 일도 벌어졌다. 쓰러진 감독들의 공통점은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연관된 신경계통의 질병이었다.
● 열성팬 많은 구단 감독일수록 스트레스는 두 배
요즘 감독들 역시 스트레스를 호소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LG, 롯데, KIA 등 열성팬들이 많은 구단의 감독들은 더하다. 성적 앞에선 장사가 없다. 팀 성적이 안 좋으면,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도 ‘영웅’에서 ‘역적’이 되기 일쑤다.
많은 감독들은 공통적으로 “요즘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발달해서 어딜 가나 팬들의 시선에 신경 써야 한다. 밖에서 마음 편히 술 한 잔 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어렵다”는 고충을 털어 놓는다. 이미 감독 자리에서 물러난 한 야구인은 “내 딸의 이름, 학교, 반을 써서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은 적도 있다”고 호소했을 정도다. 수도권 팀의 한 감독 역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고 입맛도 없이 집에 갔는데,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식사를 자꾸 권하는 아내에게 괜히 화를 낸 적도 있다”며 미안해하기도 했다.
빛이 화려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 한국에 단 열 명뿐인 프로야구 감독들은 매일 상대팀뿐만 아니라 극심한 스트레스와도 싸우고 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goodgo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