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LG 선수들, 감독 사퇴 소식에 울었다

입력 2014-04-25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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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선수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LG 선수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LG 김기태 감독 자진사퇴 막전막후

‘개인사정’서 ‘자진사퇴’로…선수들 눈물
고참 이병규, 감독님 붙잡아 달라 요청도


삭발을 한 채 엉엉 운 선수들, 경기 도중 밖으로 나와 빌린 휴대전화로 ‘우리 감독님 붙잡아 달라’고 말한 고참들…. LG 김기태 감독(45)이 자진사퇴한 23일 밤과 24일 새벽, LG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프런트는 잠 못 드는 밤을 보냈다. 김기태 감독 자진사태의 숨 가빴던 ‘1박2일’을 재구성해 본다.


● 감독 자진사퇴를 만류했건만…

김 감독은 22일 대구 삼성전에서 1-8로 패한 뒤 LG 백순길 단장과 면담을 요청한 뒤 자진사퇴의 뜻을 밝혔다. 김 감독은 “더 이상 팀이 추락해서는 안 된다. 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큰 동기부여를 위해서 감독이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백 단장은 이때부터 다음날까지 계속 만류를 했지만 김 감독의 뜻을 되돌리지 못했다.


● 코치들에게 남긴 마지막 말

김 감독은 23일 삼성전을 치르기 위해 선수단이 대구구장으로 떠나기 전 숙소에서 코치들을 만났다. 그리고 “선수들과 함께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부탁했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선택이라는 말을 강조했고 “내가 그만뒀다고 해서 코치 중에 단 한명도 팀을 떠나지 않기를 부탁드린다”는 말도 했다.


● 오후 6시 홀로 KTX에 오른 김 감독

김 감독은 계속 만류하는 백 단장에게 “팀을 위한 선택이니 제발 사퇴를 받아들여 달라. 나 좀 도와 달라”고 다시 한번 간곡히 말했다. 그리고 동대구역으로 이동,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 서울행 KTX를 탔다. 아직 세상은 그의 사퇴를 모르고 있을 때였다. 구단이 이때까지 자진사퇴 사실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만에 하나 김 감독이 마음을 돌릴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었다.


● 감독 없이 시작된 경기…휴대전화 빌린 이병규

감독이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자 LG 선수들도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직감했다. 베테랑 이병규는 경기 도중 잠시 덕아웃 뒤로 나와 급히 구단 직원의 휴대전화를 빌려 백순길 단장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단장님, 우리 감독님 붙잡아 주세요. 꼭 모셔오세요’라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 경기 종료, 삭발한 머리로 엉엉 운 선수들

이날도 LG는 3-7로 삼성에게 패했다. 경기가 종료 된 직후, 김 감독의 부재 이유는 대외적으로 ‘개인적인 사정’에서 ‘자진 사퇴’로 바뀌었다. 일부 선수들은 경기 후 소식을 듣고 경기장을 떠나는 버스에서 눈물을 흘렸다. 삭발한 선수들은 죄인처럼 숙소에 도착해서도 펑펑 울었다.


● 아직 김 감독을 포기하지 않은 LG

24일 백 단장은 김 감독에게 연락해 “서울에서 만나 소주 한잔 하면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김 감독은 밝은 목소리로 “못 만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좋습니다”라고 답했다. 백 단장은 가능성이 매우 낮아도 다시 한번 김 감독에게 복귀를 설득할 생각이다. 평소 김 감독의 성격을 생각하면 번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김 감독은 백 단장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제 감독은 아니지만 야구장에도 가겠습니다. 제가 관중석에서 보고 있으면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뛰지 않을까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
대구|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sangjun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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