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AG 향해 뛰는 KSPO 선수들] 박성백 “4년 전 광저우서 빼앗긴 금메달 되찾아오겠다”

입력 2014-05-14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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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백에게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은 4년 전 억울하게 뺏긴 금메달을 되찾는 무대다. 그의 마음은 벌써 9월 인천에 가 있다. 사진제공|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KSPO)은 대한민국 스포츠의 최대 젖줄이다. 경륜, 경정, 스포츠토토 등을 운영해 번 수익금으로 2013년에만 역대 최대 규모인 8799억원의 국민체육진흥기금을 지원했다. 이러한 재정적 도움뿐만 아니라 비인기 종목인 마라톤, 카누, 펜싱, 사이클, 여자축구 등을 운영하면서 한국 스포츠의 균형발전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특히 올해는 9월에 인천아시안게임이 개막하기 때문에 공단의 역할이 어느 해보다 중요하다. 이에 스포츠동아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표로 구슬땀을 쏟고 있는 KSPO 스포츠단 선수를 소개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1. 사이클 박성백

석연찮은 판정으로 1위 하고도 금메달 뺏겨
런던올림픽 때도 선두권 달리다 체인 끊어져
불운 연속에 좌절…자전거 쳐다보지도 않아
투르 드 코리아 승부욕 자극…다시 힘찬 페달


“이를 악물고 4년을 기다렸다. 두 번 실패는 없다.”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박성백(29·국민체육진흥공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4년 전 중국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억울하게 금메달을 뺏겼던 기억만 떠올리면 지금도 호흡이 거칠어진다. 한국 도로 사이클의 간판 박성백에게 9월 인천아시안게임은 한풀이 무대다. 이미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두 개(트랙)와 동메달 한 개(도로)를 땄지만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각오가 남다르다. 묵은 빚을 털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 억울하게 뺏긴 금…인천AG는 한풀이 무대

2010년 11월22일. 박성백은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광저우 대회 남자 180km 개인 도로 경기에서 4시간14분54초의 기록으로 1위를 했지만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결승선 통과 직전 뒤따르던 홍콩 선수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실격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판정과 함께 24년만의 아시안게임 한국 도로 사이클 금메달도 날아갔다.

박성백은 “파고들려는 2위 선수를 정상적으로 견제했는데, 그 선수가 항의 표시로 손을 들어 보였다. 일종의 ‘할리우드 액션’이었는데, 대회가 중국에서 열린 만큼 심판들이 홍콩 선수에게 유리한 판정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불운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이어졌다. 사이클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250km 개인도로에 출전했던 그는 결선에서 선두권을 형성하며 ‘넘사벽’으로 불리던 15위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내리막 구간에서 ‘툭’ 소리와 함께 꿈은 사라졌다. 체인이 끊어졌다. 그렇게 올림픽 2회 연속 완주 목표도 날아갔다.


● 투르 드 코리아 두 번 제패…옐로저지 덕분에 절망 탈출

박성백은 런던올림픽 이후 한 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중1때 시작해 17년간 사이클을 타며 체인이 끊어져 레이스를 기권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한 마디로 ‘멘붕’ 상태였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장비 고장으로 올림픽을 망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주위에서 많은 위로의 말을 건넸는데, 그럴수록 더 우울해졌다. 귀국 후 한 동안 자전거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절망에 빠진 박성백을 일으킨 건 ‘노란 셔츠’였다. 훈련을 중단하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어느 날, 그의 눈에 ‘옐로저지’가 들어왔다. 투르 드 코리아의 챔피언만이 입는 영광의 유니폼이었다. 투르 드 코리아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주최하는 동아시아 최고의 국제 도로 사이클 대회다. 8∼10일간 전국을 돌며 1000km 이상의 은빛 레이스를 펼친다. 박성백은 2007년과 2012년 두 차례 이 대회 정상에 올랐다. 옐로저지를 두 장 소유한 선수는 그가 유일하다.

“두 번의 우승 모두 어렵게 이룬 성과였다. 포인트 종합선두가 옐로저지를 입고 달리는데, 매일 옷의 주인공이 바뀔 만큼 순위가 치열했다. 특히 2012년에는 마지막 구간에서 미국 선수를 3초차로 제치고 극적으로 1위에 올랐다. 방에 걸어 두었던 그 노란 상의를 보는 순간 그때의 감동이 살아났고, 다시 시작하자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이후 박성백은 훈련을 재개했고, 잊고 있던 목표의식도 다시 가슴에 되새겼다. 광저우에서 뺏겼던 아시안게임 금메달 탈환이 그것이다.


●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함께 골드 프로젝트 출발!

박성백은 2009년 해외무대에 진출했다. 일본 식품기업이 창단해 프랑스에 캠프를 두고 있던 사이클팀 ‘메이탄홈포’에 입단했다.

“사이클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뛰고 싶어 갔지만 외국생활이 쉽지 않았다. 한국, 일본, 프랑스, 슬로베니아 선수가 모인 다국적 팀이라 말이 안 통해 사전을 펴고 대화를 해야 했다. 합숙이 끝나면 다른 선수들은 모두 외출을 하는데, 갈 데가 없어 혼자 숙소에서 지냈다.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향수병과 우울증이 생겼다.”

2009년 투르 드 코리아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메이탄홈포 소속으로 단체 우승과 한국 선수로는 가장 좋은 개인종합 5위를 했지만, 고민은 더 커졌다. 대회 후 다시 머나 먼 이국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 결국 그해 12월, 국내 컴백을 결정했다. 이때 그를 품은 곳이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입단 의사를 밝히자 1주일 만에 승인이 났다. 2010년 1월 박성백은 공단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게 됐다.

“공단은 모든 사이클 선수들이 입단을 꿈꾸는 팀이다. 전문 시설, 숙소와 체계적인 훈련 등 지원이 뛰어나다. 특히 국제 대회 참가와 해외 전훈은 다른 팀과 비교할 수 없다.”

박성백은 올해 초 공단과 함께 아시안게임 금메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경북 영주의 공단 훈련원에서 1주일에 1100km 이상의 도로훈련을 소화한다. 이런 노력 덕분에 4월 필리핀에서 열린 투르 드 필리피나스에서 스프린트 부문 종합우승을 했다. 착실하게 포인트를 쌓아 국가대표 발탁도 확실하다.

이병일 공단 사이클팀 감독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박성백의 금메달을 확신한다. 도로 사이클 코스가 대부분 평지를 달리는 순환경주라서 한번에 힘을 몰아 쓰는 능력이 탁월한 박성백에게 절대 유리하기 때문이다”고 전망했다.


박성백은? 1985년 2월 27일생(서울) / 176cm·70kg / 대조초(서울)-덕산중-서울체고 / 서울시청(2003∼2008) / 일본 메이탄홈포(2009) / 국민체육진흥공단(2010∼) / 2006도하아시안게임 단체추발 4km 금·50km 메디슨 금·개인도로 동 / 2007·2012 투르 드 코리아 우승 / 2011 아시아선수권 단체추발 금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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