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의 첫 관문인 소나무숲길은 솔향과 계곡 물소리를 즐기며 걷는 산책용 길이다. 이어진 순례길은 12기의 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어 아이들 역사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소나무가 울창한 소나무숲길을 걷고 있는 양형모 기자.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안내판과 국립4.19민주묘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쉼터(왼쪽부터 시계방향).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우이계곡 물소리 따라 걷는 소나무숲길
1·2구간 사이에 솔밭근린공원도 장관
독립 유공자들 묘역이 조성된 순례길
국립 4.19민주묘지 전망 포인트 강추
양 구간 5.4km…두시간 반 가량 소요
가볍게 걷는 ‘난이도 하’ 가장 쉬운 길
북한산 둘레길 트레킹 2탄이다.
1탄(4월29일자)에서는 산 속의 공원같은 솔샘길(4구간)과 저절로 깊은 사색에 빠지게 만드는 명상길(5구간)을 소개했다. 이번에는 둘레길의 원류로 발걸음을 향했다. 북한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1구간은 ‘소나무숲길’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녔다. 북한산을 오르는 우이동에서 출발한다. 도선사를 향해 오르다 보면 왼쪽 편에 ‘여기서부터 둘레길이 시작 됩니다’라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다.
가벼운 트레킹이지만 옷과 신발은 제대로 갖추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착용감이 산뜻한 아이더 셔츠와 걸을 때 하체의 움직임이 편한 블랙야크의 등산바지를 골랐다. 정식 등산이 아닌 트레킹이지만 바지는 편하고 봐야 한다. 두꺼운 청바지를 입고 앞주머니에 휴대폰을 꽂은 채 걸어보면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다. 트레킹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장비는 역시 신발이다. 머렐의 그래스보우 라인제품인 ‘그래스보우 스포츠고어텍스’를 신었다. 충격흡수가 뛰어난 에어쿠션을 적용한 신발이다. 거친 국내 산악지형에 강한 신발로 알려져 있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여기에 얇아서 하늘거리는 노스페이스 바람막이 재킷을 걸치고 스틱 두 개를 양 손에 쥐었다. 이 정도면 서너 시간의 트레킹을 소화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 들어서자마자 솔향이 ‘훅’…폐가 좋아하는 소나무숲길
153번 버스를 타고 우이동 종점에 내려 도선사로 가는 오르막길을 5분 정도 올랐다. 양 옆으로 음식점 못지않게 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이 가득하다. 국내에서 만날 수 있는 거의 모든 브랜드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독특한 길이다. 이윽고 ‘여기는 1구간 소나무 숲길 구간입니다’라는 아치형태의 문이 나타났다. 호흡을 잠시 고른다. 세상 시름 한 보따리를 문 앞에 내려놓고 입장한다. 이제 시작이다.
들어서자마자 코끝에 송진냄새가 훅하고 와 닿는다. 과연 소나무숲길답다. 소나무숲길의 일부 구간은 북한산 둘레길 중 유일하게 우이계곡을 따라 시원한 물소리를 지척에서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몸의 땀은 바람이 식혀주지만, 마음의 땀을 날려 보내는 데에는 계곡 물소리만한 게 없다.
숲길을 걸으면 우리 몸 중에서 폐가 가장 좋아한다. 매캐한 매연만 마시다가 피톤치드가 몸으로 쑥 들어오니 폐가 좋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든다. 폐 다음은 발이다. 딱딱한 인공 아스팔트가 아닌 살아있는 진짜 길을 밟으면 처음에는 발이 화들짝 놀란다. 그래서 걷기 시작하면 “이건 뭡니까”하고 반항을 할 때도 있다.
초반 20분 정도가 고비다. 발이 아프고 장딴지가 당기기도 한다. 그래봤자 잠시다. 몸이 숲길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움츠려 있던 세포들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난다.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내 몸의 생명을 깨우는 행위다.
한 가지 아쉬움. 진입하자마자 솔향으로 누렸던 코의 호사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소나무군이 사라지면서 평범한 숲길로 변모한 것이다. 너무 아쉬워할 것까지는 없다. 1구간에서 2구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우이동의 명소 솔밭근린공원을 가로질러야 한다. 100년생 소나무가 무려 1000여 그루나 서 있다는 곳이다. 소나무를 지긋지긋할 정도로 볼 수 있다.
지난 번 솔샘길과 명상길을 걸을 때는 노란 애기똥풀이 사방 가득하더니 이번에는 하얀 국수나무가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국수나무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수국’이라고 하면 대번에 아는 흔한 꽃이다. 물론 국수의 재료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가지가 국수가락같다고 해서 국수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모양이 말끔하지 못하다고 하여 거렁방이나무라고도 불린다.
1시간 가까이 걸으니 몸이 후끈해졌다. 등이 땀으로 축축하다. 바람막이 재킷을 벗어 허리에 둘렀다. 바람막이 재킷은 입었다 벗었다하는 재미(?)로 갖고 다니는 옷이다.
※ 북한산 둘레길 탐방안내센터 : 운영단(정릉) 02-900-8085, 센터(수유) 02-900-8086, 홈페이지 ecotour.knps.or.kr/dulegil/index.asp
● 아빠들이 폼 잡기 좋은 길…역사 속을 걷는 순례길
1구간 소나무숲길은 ‘난이도 하’의 길이다. 3.1km로 살짝 길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평탄하다.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가볍게 산책하기에 좋다. 그럭저럭 1구간을 마치니 솔밭근린공원이 나타났다. 공원을 가로지른 뒤 보광사를 향해 조금 오르면 역시 왼쪽으로 2구간 순례길의 진입로가 나타난다.
순례길은 이름에서부터 숙연함이 느껴지는 길이다. 2.3km 코스로 둘레길 중에서는 비교적 짧다. 1시간 정도면 무난히 걸을 수 있다.
왜 순례길인가 하면 독립유공자들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헤이그밀사로 특파돼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만국에 알린 이준 열사와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조국을 위해 꽃다운 청춘을 바친 17위의 광복군 합동묘소 등 모두 12기의 독립유공자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순례길은 그런 점에서 아버지가 자녀들 앞에서 ‘폼’ 잡기 딱 좋은 길이다. 요즘 아이들은 아버지를 만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모처럼 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 한편 아버지의 ‘박식함’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대신 요즘 아이들은 질문이 날카로운 편이니 사전에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서 예습을 해 가길 추천한다.
순례길에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국립 4.19민주묘지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가 있다. 시야가 탁 트여 눈 맛이 시원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시원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와 땀을 순식간에 날려 보내주는 휴식명소이다.
큼직한 오이 반 토막을 우적우적 씹으며 딱딱해진 다리를 두드린다. 산에서 먹는 오이가 맛있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갈증을 해소시킬 뿐만 아니라 땀으로 빠져나간 무기질도 보충해 준다. 유사품(?)으로는 당근, 귤 등이 있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제법 큰 주말농장들을 볼 수 있다. 한 눈에도 농사일에 익숙해 보이지 않는 가족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부지런히 뭔가를 심고, 물을 주고, 거름을 나른다. “가서 물통 좀 가져 와요”, “남자가 이런 것도 못 해요?”하는 아내의 잔소리에 허둥지둥 하는 남편들도 보인다. 은근히 구경하는 재미가 난다. 적당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스머프 마을’을 엿보는 것 같다.
총평을 해보자면, 1구간 소나무숲길은 진입하자마자 콧구멍으로 밀려드는 솔향이 으뜸인 길이다. 이후 이름처럼 소나무가 줄지어 있는 길은 아니지만 길이 평탄하고 잘 닦여 있어 어르신이나 아이들도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2구간 순례길은 꽤 학구적인 길이다. 곳곳에 독립유공자에 대한 안내판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둘레길을 걸으며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역사를 가르쳐줄 수 있는 고마운 길이다.
국립 4.19민주묘지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쉴 수 있는 전망 포인트는 꼭 들러볼 것. 짧지만, 그 유익의 길이는 결코 짧지 않은 길이다. 1구간과 2구간 모두 난이도는 상·중·하 중에서 가장 쉬운 ‘하’다.
오리장작구이
겉은 바삭 속은 촉촉…기름 쪽 뺀 ‘오리구이’ 대령이오!
■ 주변맛집|산촌 장작구이
북한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1구간 초입에 위치한 산촌 장작구이의 간판 메뉴는 물론 장작구이다. 갈비, 냉면도 팔지만 이 집에 들르면 장작구이를 먹어보지 않을 수 없다. 오리장작구이(한마리 4만5000원)와 생삼겹장작구이(1인분 1만2000원)가 주 메뉴다. 오리장작구이를 주문했다.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가게 안으로 나무 타는 향기가 흘러들어온다.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도 들린다. 그 냄새와 소리맛이 고기맛을 북돋워준다. 화력이 좋은 참나무 장작을 쓴다고 한다.
장작불로는 초벌구이만 한다. 잠시 후 종업원이 큰 접시에 담긴 구운 오리를 들고 와 보여주더니 다시 가져갔다. 먹기 편하도록 고기를 잘게 썰기 위해서다. 테이블의 전기화로로 따뜻하게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다. 기름이 쏙 빠져 담백한 맛이다. 오리 특유의 냄새 대신 고기에 밴 나무향이 난다. ‘불맛’이 스민 고기는 소금에 찍어 먹어도 되지만 푸짐하게 내놓은 부추와 야채무침과 함께 먹어도 맛있다. 장작에 구운 덕에 겉은 바삭하지만 속은 촉촉하다.
고기를 다 먹고 나면 큼직한 도가니에 오리죽이 담겨 나온다. 녹두를 넉넉하게 넣고 끓여 고소하다. 이걸 먹기 위해 오리 한 마리를 다 먹었나 싶을 정도로 맛있다. 북한산 등산객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전국구 맛집이다. (02-997-5085)
■ 교통편
● 1구간 소나무숲길
①우이령길 입구 =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 → 버스 120·153번/우이동차고지종점 하차(도보3분)
②솔밭근린공원 상단 =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 → 버스 120·153번/덕성여대 입구 하차(길 건너 도보 5분)
● 2구간 순례길
①솔밭근린공원 상단 =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 → 버스 120·153번/덕성여대 입구 하차(길 건너 도보 5분)
②이준열사묘역 입구 = 지하철 4호선 수유역 1번출구 → 버스 강북01번 마을버스/통일교육원 하차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