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의 한 수’ 이범수 “정우성과의 호흡, 홈런 친 기분”

입력 2014-07-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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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수(44)는 옷을 참 잘 입는 배우다. 물론 패션 감각도 훌륭하지만 맡은 배역마다 맞춤옷을 입은 듯한 ‘똑’ 떨어지는 연기를 펼친다. 능글능글한 코믹연기부터 감정이 폭발하는 카리스마 있는 연기까지 언제나 생생함이 감돌아 몰입감을 준다. 그런 그가 이번엔 절대악에 도전했다. 영화 ‘신의 한 수’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유린하고 즐기는 살수 역이다. ‘짝패’ 이후 9년 만에 악역으로 돌아온 그는 절제감 있는 액션, 냉철한 판단력에 잔인함까지 있는 악역 연기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사기도박에 액션에 악역이라니…. 살수 캐릭터가 참 매력적이더군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인상적이었어요. 소재도 신선했고 액션도 흥미로워서 끌렸어요. 과거에는 마음에 끌리는 작품이 있다면 무조건 선택했지만 지금은 달라요. ‘밀도’ 있게 선택하려고 했어요.”

순간, 그의 입 밖으로 나온 ‘밀도’라는 단어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뭔가 배우로서 작품을 고르는 자세가 달라진 듯 했다. 이에 대해 더 묻자 그는 연기 생활을 하며 조금은 달라진 가치관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에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 저에 대한 실험이자 도전이 많았어요. 그래서 독특한 시나리오나 캐릭터를 선택했고 그런 면을 저 스스로 높이 샀죠. 그런데 주변 동료들 중 몇 분이 ‘이젠 더 많은 사랑들과 소통해야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이런 행보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과 호흡하는 것도 제가 할 일이라는 거죠. 그래서 주관적인 잣대보단 객관적인 잣대에서 작품을 바라봤고 ‘신의 한 수’가 딱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어요.”

이범수가 ‘신의 한 수’에서 표현한 살수는 뱀처럼 비열하고 사람 하나 죽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잔혹한 인물. 하지만 기존에 등장하는 악역을 답습하진 않았다. 센 척을 하려 사투리를 쓰거나 욕설을 내뱉고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원래 사람을 죽이려고 태어난 사람인 듯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압도적인 악역을 소화했다.

“끝까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이 인물의 끝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하고 싶었어요. 또 저는 유독 바스트나 클로즈업이 많았는데 표정을 순식간에 지어도 잔인함과 비열함을 모두 담아야 했어요. 그래서 연기를 하며 내 주변 공간을 지배하고자 노력했어요. 연기는 대사로 국한 된 게 아니니까요. 스스로 이 공간을 지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촬영에 임했죠. 이 만큼 연기를 집중력 있게 해 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얼굴의 표정을 감춘 채 냉혹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야 했던 이범수는 몸으로는 완벽히 잔인함을 표현했다. 그는 스스로 전신 문신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무려 20시간의 분장 시간을 견디며 전신 문신을 소화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 문신을 실제로 유일하게 본 이시영은 “(이)범수 오빠가 너무 무서워서 말도 못 걸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옷을 입을 땐 티가 안 나고 벗을 때 온전히 나타나는 문신이었죠. 겉은 친절해보일지 몰라도 이면에 숨겨진 잔인함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문신 뿐 아니라 살수의 잔인함은 바둑판에서도 적용돼요. 바둑알을 놓는 것부터 고민했죠. 바둑을 두는 모습은 우아해 보여도 바둑판 안에서의 움직임은 살생이죠. 마치 누군가를 쓰다듬는 듯하다 한 번에 죽여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영화 속에서 그런 것을 드러내려 애썼어요.”

과거 영화 ‘러브’, ‘태양은 없다’에서 함께 작업했던 정우성과의 재회에 대해서는 “소름이 돋는 호흡”이라고 말했다. 특히 극의 절정에 치닫는 태석(정우성)과 살수의 피와 땀내 나는 몸을 부딪치는 동안 마치 타석에서 홈런을 친 야구 선수와 같은 희열을 느꼈다고.

“액션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태석과 살수의 부딪힘은 이질적이거든요. 태석이 힘이 세다면 살수는 정말 빨라요. 세기와 속도의 대결이죠.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2주간 열심히 촬영했죠. (정)우성 씨와 촬영하며 기분이 좋았어요. 액션 연기 같은 경우는 곧장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데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 늘 긴장을 하고 완벽하게 액션을 몸에 익혀야 하죠. 우성 씨는 워낙 프로라 그냥 척척 잘 맞았어요. 안타만 때리다 홈런 친 기분이랄까? 오랜만에 느낀 기분 좋은 부딪힘이었어요.”

올해 배우로서 24년째 살고 있는 이범수. 연극무대로 시작해 색깔 있는 조연배우로 주목 받았고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주역으로 우뚝 선 그는 아직도 좋은 배우란 무엇일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좋은 배우란 뭘까 늘 생각하죠. 배우는 보는 사람이 있다는 전제하에 존재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가끔은 딜레마에 빠져요.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좋은 건가, 굵지만 짧게 가는 게 좋은 건가. 물론 좋은 연기로 사랑 받으며 오래가는 게 가장 좋지만. 하하. 그건 너무 이상적이잖아요. 현실적인 답을 못 내리겠어요. 더 고민하며 배우로서 좋은 길을 가야죠.”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쇼박스㈜미디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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