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은 2000년대 초반까지 바둑에서도 ‘공한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공동연구와 지속적인 영재 배출을 통해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바둑을 추월했다. 위기의식을 느낀 한국바둑은 심기일전, 올해 세계대회에서 삼성화재배 등 3차례 우승하며 자존심을 회복했다. 한국의 김지석(오른쪽)과 중국의 탕웨이싱이 10일 중국 산시성 시안에서 열린 삼성화재배의 결승3번기 제2국을 앞두고 있다. 사진제공|한국기원
10일 오전 9시30분, 중국 산시성 시안 성메이리야 호텔 특별대국실. 한국의 김지석과 중국의 탕웨이싱이 바둑판을 마주하고 앉았다. 201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2국이 시작되는 긴장된 순간. 두 사람 앞에는 빈 바둑판이 놓여 있었다. 흑을 쥔 김지석이 착수를 하면 ‘지상 최고의 두뇌게임’이라 불리는 바둑의 포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세계 바둑계의 영원한 라이벌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두 기사의 손끝에 3억원의 우승상금과 양국 바둑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 텅 빈 바둑판은 마치 한·중 바둑계의 오늘을 투영한 일종의 상징물처럼 빛나 보였다. 앞서가는 중국, 쫓아가는 한국. 과연 한·중 바둑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 시안의 바둑현장에서 그 해답을 찾아봤다.
중국바둑 급성장…한 수 아래서 동등한 위치로
국가대표팀·바둑리그 소속팀서 공동연구 활발
어린이 바둑 열풍…‘원생만 2만명’ 바둑교실도
한국바둑, 지난해 세계대회 무관 수모 심기일전
국가대표팀 출범 ‘타도 중국’…잇단 우승 성과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 바둑최강국으로 군림했다. 1989년 제1회 잉창치배에서 조훈현이 혈혈단신으로 ‘영웅적인 우승’을 차지한 이래 한국은 유창혁, 이창호, 이세돌로 이어지는 천재 ‘스트라이커’의 연이은 등장에 힘입어 세계무대를 휩쓸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한국의 벽을 넘을 수 없었던 중국은 축구와 더불어 ‘바둑 공한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영원한 제국으로 믿었던 한국바둑이 중국에 후루룩 밀려버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2006년 한국이 개최한 삼성화재배와 LG배 우승컵을 중국이 가져가면서 한국바둑계에 비상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후 수년 간 한국과 중국은 어느 한 쪽도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피 터지는 용쟁호투를 벌였다. ‘이창호만 나갔다 하면’, ‘이세돌만 나갔다 하면’ 떼 논 당상으로 보였던 세계대회 우승이 이제는 ‘가시(만만치 않다는 의미의 프로기사들 속어)’가 되어 버린 것이다.
2013년은 한국바둑의 악몽의 해였다. 한 해 동안 열린 세계대회(개인전)에서 한국기사들은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 한국기원 기록에 의하면, 1995년 이후 18년 만의 굴욕이었다.
이제 한국은 중국바둑이 강해졌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며 이창호와 함께 한국바둑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창혁 바둑국가대표팀 감독은 “중국에는 한국의 정상급과 실력차가 거의 없는 기사가 30여 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중국바둑이 이렇게 급작스럽게 강해진 원인은 무엇일까. 압도적인 바둑인구와 열기, 입단제도, 중국바둑리그, 프로기사의 수입차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지만 중국 현지에서 만난 한·중 프로기사와 바둑 관계자들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됐다.

한국과 중국은 세계 바둑계의 라이벌이다. 중국 바둑대표팀(위)은 1962년 창설돼 공동연구를 통해 기력을 다졌다. 한국대표팀은 “타도 중국”의 기치를 내걸고 올해 5월 출범, 10월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사진제공|위기천지·한국기원
● 50년 넘은 중국대표팀·중국바둑리그, ‘공동연구’의 힘
우선 공동연구의 힘이다. 중국의 바둑국가대표팀 역사는 50년(1962년 창설)이나 된다. 중국바둑계의 총본산인 중국기원은 1991년에야 공식 출범했다. 한국기원은 1945년에 설립되었지만, 바둑국가대표팀이 정식으로 꾸려진 것은 올해부터다.
사실 공동연구는 한국바둑이 원조다. 충암고등학교 출신 프로기사들이 뭉친 충암연구회가 있었다. 선배와 후배가 머리를 맞대 기보를 분석하고 신수를 연구했다. 대회에 나가면 경쟁자지만 연구회에서는 ‘모두가 동지’라는 한 마음으로 주저 없이 자신이 가진 비장의 카드들을 꺼내 놓았다. 이렇듯 한국바둑의 ‘보급부대’ 역할을 맡았던 충암연구회는 2006년을 기점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반면 중국은 공동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그 원천은 국가대표팀과 1999년에 시작된 중국바둑리그다. 중국바둑리그는 뒤늦게 출범한 한국바둑리그와 마찬가지로 기업과 지자체의 후원을 받는 팀들이 참가하는 팀 리그전이지만 매년 선수선발을 새로 하는 한국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프로야구, 프로축구 구단처럼 확고한 구단제로 운영돼 선수들의 팀에 대한 소속감이 강하다. 중국바둑리그에서 뛴 경험이 있는 박승철 7단은 “요즘 날리는 천야오예는 같은 팀 선배 콩지에 덕분에 컸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뜨거운 어린이 바둑열기다. 꿈나무는 미래의 대들보 재료다. 한국의 어린이바둑교실이 급격한 하락세인데 비해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바둑교실이 생기고 있다. 원생 100명이면 성공이라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바둑교실에 수천 명씩 몰린다. 시안에서 만난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은 “기업형 바둑교실도 많다. 원생이 2만명이나 되는 바둑교실 원장도 봤다”고 말했다.
프로기사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프로기사가 전역에서 영재들을 키우고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중국 인터넷바둑사이트 혁성의 이철용 사장은 “2001년부터 중국은 인터넷으로 예선전을 치렀다. 본선에 못 올라가면 대국료가 없으니 지방기사들이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 보급에 열중했다. 중국 영재바둑의 씨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뿌려졌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뿌려진 씨앗들이 10여년 만에 한국바둑의 ‘가시’들로 자라났다.

스웨·퉈자시(오른쪽). 사진출처|사이버오로 홈페이지
● 한국바둑의 반격… “이제부터가 진짜다”
하지만 중국바둑계로서는 한국바둑이 누렸던 왕좌를 차지했다고 해서 마냥 샴페인만 터뜨릴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지난해 치욕을 당했던 한국바둑이 심기일전해 맹렬한 추격에 나섰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대회에서는 후반기에 힘을 낸 한국이 오히려 중국에 앞서고 있다. 중국이 LG배와 하세배에서 우승했지만 한국은 궁륭산병성배와 TV아시아선수권전에 이어 9∼10일 열린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궁륭산성배와 TV아시아 선수권전이 여자대회와 속기전임을 감안해야하지만 그래도 3-2의 수치다.
게다가 한국도 ‘타도 중국’의 기치를 높이며 5월에 국가대표팀을 정식 출범시켰다. 시안에서 만난 한·중 프로기사 및 바둑 전문가들은 “향후 몇 년간은 중국의 우세 속에 지금까지보다 더욱 치열한 한·중 대결이 펼쳐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국내 팬들은 다시 한국바둑이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언제쯤 ‘제2의 이창호·이세돌’이 출현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바둑은 강해졌다. 하지만 한국도 이대로 무너지지는 않는다. 바둑판의 돌은 치워졌고, 다시 빈 바둑판이 놓였다. 한·중 라이벌전, 진짜는 이제부터다.
시안(중국) |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