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기획] 2014 프로야구를 장식한 10대 해프닝

입력 2014-12-30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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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도 그라운드 안팎에서 야구팬들을 웃고 울리는 희대의 해프닝이 펼쳐졌다. 1. 한화의 중견수 피에(왼쪽 2번째)는 4월16일 광주 KIA전에서 4회말 갑자기 마운드까지 달려오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급격하게 흔들린 선발투수 클레이를 달래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변명했다. 2. 4월30일 광주 KIA-SK전에서는 만취한 40대 KIA팬(맨 아래)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박근영 1루심에게 달려들었다가 SK 백재호 1루 코치에게 제지를 당했다. 3. 삼성의 박석민(오른쪽)은 5월17일 광주 KIA전에서 이흥련의 타구 때 홈으로 쇄도하다가 백용환을 속여 홈 플레이트를 밟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했다. 4. 8월5일 NC-롯데의 사직경기에서 5회 경기 도중 3루쪽 조명탑이 꺼지면서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는 촌극이 발생했다. 5. 두산의 외국인투수 마야(왼쪽)는 LG의 연이은 번트 작전에 화를 참지 못하고 LG 덕아웃을 향해 스페인어로 욕설을 하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양상문 감독은 덕아웃을 박차고 나오며 흥분한 모습을 보였지만 다음날 마야의 사과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롯데 자이언츠

■ 포수도 팬도 속인 주루플레이 ‘몸개그의 달인’ 박석민

흔히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한다. 우리네 인생처럼, 프로야구 그라운드에서도 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 때로는 팬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일도 일어나지만, 때로는 팬들을 눈물짓게 만드는 슬픈 일도 발생한다. 팬들의 배꼽을 빠지게 만드는 각본 없는 코미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황당한 사건사고들…. 올 시즌도 그라운드 안팎에서 희대의 해프닝들이 연이어 펼쳐졌다. 저물어 가는 갑오년(甲午年)을 정리하면서 2014프로야구를 장식한 잊지 못할 10대 해프닝을 시간 순으로 추려봤다.


중견수 피에 경기중 마운드 방문 돌발행동
기록원이 착각해 전광판 아웃카운트 오기
그라운드로 난입한 KIA팬의 1루심 헤드락
이만수 감독, 선수 말리러 갔다가 황당 퇴장
사직구장 조명탑 꺼져 서스펜디드게임 진행


1. 21세기에 출현한 ‘부정위 타자’

시범경기부터 프로야구 역사에 길이 기록될 만한 해프닝이 터졌다. 3월11일 김해 상동구장에서 열린 두산-롯데의 시범경기가 끝난 직후 김태선 기록원이 헐레벌떡 기자석으로 뛰어올라왔다. 두산의 ‘부정위 타자’를 뒤늦게 적발하고 알리기 위해서였다. 부정위 타자란 자기 타순이 아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것을 일컫는다. 두산의 8회초 공격 때 일이 벌어졌는데 롯데도 상황을 눈치 채지 못한 탓에 게임은 그대로 흘러갔다. 두산이 6회말 수비 때 대거 선수를 교체하다가 송일수 감독이 상황을 혼동해 일이 벌어졌다. 두산은 “송 감독은 착각하지 않았다. 심판원이 지시를 잘못 내렸다”고 해명했지만 심판원과 기록원은 나란히 “우리가 부정위 타자를 지시했다는 말인가?”라고 반박해 두산은 다음날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마추어에서도 보기 힘든 이날의 부정위 타자 사건. 사직구장 전광판 공사로 인해 전광판 시설이 없는 롯데의 2군 연습장인 상동구장에서 시범경기가 열리면서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었다.


2. 한화 중견수 피에의 ‘마운드 방문’

한화 외국인타자 펠릭스 피에는 4월16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전 4회말 무사 1·2루 수비 도중에 동네야구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기행을 저질렀다. 중견수 수비를 보다 갑자기 내야로 튀어오더니 마운드 근처까지 걸어간 것이다. 10초간 혼자 떠들다가 다시 자기 수비위치로 돌아갔다. 최수원 주심은 경기진행을 방해했다며 곧장 주의를 줬는데 피에는 “마운드의 투수 클레이에게 ‘부담 갖지 말고 편안하게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황당한 이유를 댔다. 외야수가 포수 또는 투수코치 몫까지 하려고 했던 것이다. 피에는 나중에 “규정을 몰라서 그랬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팀에 대한 충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감싸기에는 메이저리그 425경기,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489경기를 뛴 선수라는 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었다. 한화 김응룡 감독도 “혼자 야구 다 하려고 한다. 피에가 왕이다”며 웃고 말았다. 피에는 시범경기부터 심판과 상대 포수 무릎을 배트로 툭툭 건드리는 인사법으로 눈길을 모으더니 이후에도 수많은 돌발행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3. 전광판이 부른 희대의 아웃카운트 착각

4월18일 잠실 롯데-두산 전에서는 전광판에 잘못 표기된 아웃카운트 때문에 그라운드에 서 있던 모두가 덕아웃으로 철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롯데가 1사 만루 기회를 잡았던 2회초. 정훈의 3루수 땅볼을 두산 허경민이 잡아 홈에 송구했다. 3루주자 문규현이 홈으로 쇄도했고, 두산 포수 양의지의 발이 홈플레이트에서 떨어지면서 세이프. 그런데 이때 기록원이 문규현이 아웃됐다고 착각하면서 전광판의 아웃카운트 숫자가 하나 올라갔다. 모두 2사 만루로 인식하게 된 상황. 롯데 다음 타자 손아섭의 타구는 투수 앞 땅볼이 됐고, 두산 투수 볼스테드는 더블플레이를 엮어내는 대신 1루에 가볍게 던져 손아섭을 아웃시켰다. 그러나 선수들이 서서히 공수교대를 시작한 순간, 화장실에 다녀왔던 문규현이 이상한 상황을 눈치 채고 벤치에 알렸다. 심판들도 롯데의 항의를 받은 뒤 뒤늦게 전광판 오류를 깨달았다. 이닝을 가볍게 종료시킬 수 있었던 두산의 거센 항의가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22분간 중단됐던 경기는 결국 롯데가 4-1로 앞선 2사 2·3루 상황에서 속개됐고, 롯데 최준석은 김이 빠진 볼스테드를 상대로 우월 3점홈런을 작렬하며 승부를 갈랐다.


4. 오심 후유증, 심판 수난시대

프로야구의 오심 논란은 올해 그 어느 때보다 거셌다. TV 중계 기술의 발달과 사각 지대가 없는 리플레이 화면의 재생으로 오심은 시시각각으로 발견됐다. 경기의 ‘일부’를 넘어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오심이 계속되자 팬들은 화났고, 심판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나광남 심판위원은 4월27일 마산 두산-NC전에서 세이프 타이밍으로 1루에 들어온 타자 주자 오재원(두산)을 아웃으로 선언한 데 이어 29일 광주 SK-KIA전에서 SK 조동화의 2루 도루를 세이프로 잘못 판정했다. 스스로도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나 심판은 결국 경기 도중 자진해서 대기심으로 교체된 뒤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다음 날인 30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만취한 40대 남성 KIA팬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박근영 1루심에게 달려들어 헤드락을 한 뒤 쓰러트리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주변에서 무력으로 저지하지 않았다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결국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오심논란을 줄이기 위해 후반기부터 한국형 비디오판독인 심판합의판정 제도를 도입했다.


5. 광주 챔피언스필드 오징어 방화사건

5월1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SK-KIA전. 6회말 공수교대 순간에 1루 쪽 관중석이 소란스러워졌다. 응원단상 앞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관중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20대 후반 남성이 반입이 금지된 휴대용 버너를 들고 오면서였다. 이 남성은 오징어를 굽기 위해 버너에 부탄가스를 끼는 와중에 부주의로 가스가 새어나갔고, 그 과정에서 응원단상에 불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요원이 달려가고, SK 조웅천 투수코치는 소화기를 들고 뛰어가는 보기 드문 장면이 나왔다. 다행히 불이 번지지 않아 다친 사람이나 피해는 없었고 곧바로 화재도 진압됐지만, 올 시즌 새로 개장한 챔피언스필드에서 성숙하지 못한 한 팬의 관람매너로 인해 벌어진 웃지못할 해프닝이었다.


6. 박석민 완벽한 연기 주루플레이

‘몸개그의 달인’ 삼성 박석민의 재치가 돋보였다. 5월1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KIA전 3회초 1사 2·3루 상황. 삼성 3루주자 박석민은 이흥련의 3루수 앞 강습타구 때 홈으로 전력 질주했다. 그러나 KIA 3루수 김주형이 이흥련의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냈고 포수에게 곧바로 송구했다. KIA 포수 백용환이 공을 잡았을 때 박석민은 홈플레이트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완벽한 아웃타이밍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박석민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더니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백용환의 태그를 피했다. 박석민이 그 자리에 멈춰서더니 덕아웃으로 들어가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자 백용환은 아웃됐다고 착각해 다른 주자들을 견제하기 위해 내야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박석민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몸을 틀어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심판의 세이프 판정을 확인한 뒤 비로소 덕아웃으로 들어가는 장면도 코믹했다. ‘역대급 진기명기’였다.


7. 울프 말리러 나갔다가 퇴장 당한 이만수 감독

6월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삼성전. SK 선발투수 울프는 3회초 1사 2루에서 박한이에게 던진 공이 볼로 판정되며 볼넷을 내주자 불만을 드러냈다. 최수원 주심과 설전이 오갔고, 둘 다 서로를 향하면서 일촉즉발 상황이 펼쳐졌다. SK 이만수 감독은 즉각 최 주심을 막아섰고, 성준 수석코치는 마운드에 올라 울프를 제지했다. 조웅천 투수코치까지 합세했다. 10여 분간 경기중단. ‘마운드행 제한’ 관련 야구규칙 8.06 (c)항은 ‘감독이나 코치는 동일 타자가 타석에 있을 때 또 다시 그 투수에게 갈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원주]에는 ‘감독이 두 번째로 갔다면 그 감독은 퇴장되며, 투수는 그 타자가 아웃되거나 주자가 될 때까지 투구한 후 물러나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박석민 타석에서 두 코치가 마운드에 올랐다는 해석을 적용해 이 감독은 퇴장을, 울프는 박석민을 상대한 뒤 규정에 따라 교체됐다. 선수를 말리러 나갔다가 감독이 퇴장을 당하는 황당한 해프닝이었다.


8. 불 꺼진 사직구장, 서스펜디드 게임

8월5일 NC-롯데전이 열린 사직구장. NC 공격이 진행 중이던 5회초 2사 1루 김종호의 타석 때 3루 쪽 조명탑이 갑자기 꺼지면서 경기가 중단됐다. 저녁 7시55분 중단됐던 경기는 49분이 지날 때까지 재개되지 못했고, 경기를 일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야구 역대 7번째이자 2011년 4월16일 대구 두산-삼성전 이후 3년 만에 발생한 서스펜디드게임(일시정지경기). 조명 문제로 중단된 것은 이번이 역대 3번째였다. 조명탑이 꺼진 원인은 무더운 날씨로 인해 전력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일부 선로가 단락됐기 때문이다. 선로를 제거한 뒤 시설을 재가동했지만 문제의 조명탑 전등 52개 가운데 10여개가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경기는 다음날 오후 4시 같은 장소, 같은 상황에서 재개되며 사실상 더블헤더가 열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시설관리 미흡으로 선수들은 한 여름에 하루 2경기를 치르며 녹초가 됐다.


9. 찰리, 마야…고개 숙인 외국인투수들

올 시즌에는 외국인선수들의 품행이 유난히 자주 뉴스에 오르내렸다. NC 찰리 쉬렉은 8월 3일 문학 SK전 1회말 1사 1·2루서 이재원 타석 때 주심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격한 반응을 보이다 심판의 퇴장 명령에 이성을 잃고 한국말로 욕설을 퍼부었다. 평소 신사로 알려졌던 찰리였기에 충격은 컸다. 찰리는 다음날 심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지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상벌위원회를 열고 제재금 200만원과 봉사활동 40시간을 부과했다. 두산 유니에스키 마야는 10월 11일 잠실 LG전에서 4회초 상대의 연이은 번트 작전에 화가 난 나머지 LG 덕아웃을 향해 스페인어로 욕설을 하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LG 양상문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오면서 감독과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대치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발생했다. 곧바로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졌다. 마야는 다음날 LG 덕아웃을 찾아가 양 감독에게 사과를 하면서 사건은 봉합됐다.


10. 선동열 감독 재계약 6일 만에 자진사퇴

‘무등산 폭격기’가 ‘여론의 폭격’을 맞고 재계약 6일 만에 자진사퇴해 야구계에 충격을 전해줬다. 선 감독은 올 시즌을 끝으로 3년 임기가 만료됐지만 KIA는 10월19일 2년 총액 10억6000만원의 조건으로 재계약했다. 그러나 KIA 감독 부임 후 3년간(5위-8위-8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선 감독에 대한 KIA 팬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구단 홈페이지 등에 ‘재계약 철회 릴레이’를 했고, 그룹 본사 앞에서는 선 감독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1인시위까지 펼쳐졌다. 선 감독은 구단 홈페이지에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리며 구단 리빌딩의 방향과 명예 회복의 각오까지 피력했지만 성난 팬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일부 과격한 팬들이 가족의 전화번호까지 알아내 협박성 전화와 문자 메시지를 보내자 선 감독은 결국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고 말았다. 한국의 국보급 투수이자 일본에서도 한때 특급 마무리투수로 활약한 선 감독이 재계약 6일 만에 자진사퇴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하자 일본 언론에서도 “너무 슬픈 사퇴”라고 대서특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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