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경 쇼호스트 “생방송 20년…쇼호스트는 내 운명”

입력 2015-01-29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95년 TV홈쇼핑 원년에 데뷔해 깊이있는 설명과 조리있는 말솜씨로 쇼호스트의 간판스타가 된 장혜경. 그는 쇼호스트로 ‘롱런’을 하기 위해서는 사명감과 함께 엄격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 서울대·간호사 출신 장혜경 쇼호스트

4개월간의 병동 일 접고 아나운서 전향
1995년 ‘쇼호스트 2기’로 새로운 변신

“전공지식·간호사 경험 등 20년 장수비결
자기관리는 기본…사명감 뒷바침 돼야”

야간근무를 끝내고 병원을 나왔다. 물에 젖은 솜뭉치처럼 처지는 몸. 샤워를 하고 사복으로 갈아입었지만 몸에서 소독약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올려다 본 외과병동. 어둠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있는 건물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4개월간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었는데. 천직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왔다. 대학입학 후 5년간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믿음이었다. 무엇보다 이 힘든 일을 견뎌낼 체력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돌아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는 장 간호사. 그녀는 그 후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 TV홈쇼핑 원년 쇼호스트 데뷔…20년간 생방송 인생

CJ오쇼핑의 쇼호스트 장혜경(45). 그는 국내 6개 TV홈쇼핑에서 활동하는 240여명의 쇼호스트 중 ‘유일한 이력’을 두개 갖고 있다. 서울대와 간호사 출신이 그것이다.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 일반외과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병원을 나온 후엔 대학시절 동아리 라디오방송 경험을 살려 케이블TV 아나운서로 변신했다. 메인뉴스 앵커로 승승장구하던 장혜경을 낯선 직업에 도전하게 만든 건 1995년 국내에 첫선을 보인 TV홈쇼핑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쇼호스트가 생방송에서 매번 다른 상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하는 게 신기했어요. 무엇보다 아나운서는 대본대로 읽기만 하는 수동적인 역할인데 반해, 자신이 직접 방송을 리드하는 진취적인 방식이 마음에 들었죠.”

그해 11월 장혜경은 HSTV(CJ오쇼핑의 전신) 쇼호스트 공채 2기로 인생 2막을 시작했다. ‘입봉’은 쓰라렸다. 처음 맡은 상품은 감식초. 달달 외웠던 내용을 덜덜 떨면서 소개했는데, 효능에 대한 소개 멘트가 심의에 걸린 것. 아직 규정이 제대로 전파되지 않은 탓이었다. 첫 방송으로 정직을 받고 3개월을 쉬어야 했다. 20년동안 처음이자 마지막 징계였다.

생방송으로 진행하다 보니 해프닝이 많았다. 초창기에 남자 스태프가 끈 모양 여자 팬티를 모자로 착각하는 바람에 마네킹 머리에 씌워 세팅을 했다. 그걸 보자 웃음보가 터졌고, 몇 분간 진행을 못했다. 단단한 재질이 장점인 접시를 소개할 때는 “절대 깨지지 않습니다. 보세요”라며 접시를 바닥에 내던졌는데 와장창 박살이 나 당황하기도 했다. 준비된 멘트 대신 “깨지기도 하네요. 하지만 이렇게 세게 던질 일은 부부싸움할 때 외에는 없겠죠. 여러분, 부부싸움 하지 마세요”라며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겼다.

● 쇼호스트는 고된 직업, 사명감 없으면 못버텨

실적에 따라 평가받는 쇼호스트에게 TV홈쇼핑 현장은 정글같은 곳이다. 원년멤버는 그녀를 포함해 6명만 남았다. 수십 명의 선배·동기들이 자의반 타의반 떠났다. 장혜경이 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안정적인 진행이다.

“건강식품을 판매할 때 자극적인 멘트를 앞세운 충동구매 유도를 자제합니다. 대신 정확한 건강 정보를 전달하려 노력하죠. 대학 때 배운 전공지식과 간호사 현장경험이 큰 도움이 됩니다.”

장혜경의 진행은 가족에게 소개하듯 편안하고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깊이있는 설명과 조리있는 말솜씨 덕분이다. CJ오쇼핑 자체개발 ‘온리원 상품’인 백수오를 2010년 10월 론칭 이후 3년 연속 건강식품 부문 매출과 재구매 부문 1위로 이끌기도 했다. 국내에 프리미엄 유산균 열풍을 몰고 온 것도 그였다.

쇼호스트는 성취감만큼 고충도 많은 직업이다. 불규칙적인 생활이 가장 힘들다. 새벽에 출근하거나 심야방송 때는 하루에 2∼3시간밖에 못잘 때도 많다. 방송을 안 할 때도 회의, 업체 미팅, 현장 방문 등으로 일정이 빡빡하다. 체력관리는 기본. 꾸준한 자기 계발도 필요하다. 장혜경은 일하는 틈틈이 준비해 보험설계사 자격증을 땄다. 주말을 가족과 보내는 날이 적어 남편과 아이에게 늘 미안하다.

쇼호스트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장혜경은 “조명을 받으며 일하지만 결코 화려한 직업이 아니다. 수억대 연봉 역시 일부의 이야기다. 사명감과 함께 엄격한 자기관리가 뒷받침 안 되면 결코 롱런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 장혜경 프로필

1970년 경북 영주 출생 / 서울 광장초-광장중-명성여고-서울대(간호학과) / 서울대병원 일반외과 간호사(1993) / 구로 케이블TV 아나운서(1994∼1995) / CJ오쇼핑 쇼호스트(1995∼)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