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은 “제가 우리나라 B-Girl의 창시자였죠” [인터뷰]

입력 2015-02-19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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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은,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임성은의 컴백소식이 전해지고 인터넷상에서는 이른바 ‘난리’가 났다.

실시간 검색어와 핫토픽 키워드를 점령한 것은 물론 이후 임성은의 인터뷰는 나올 때마다 메인 페이지를 장식하곤 했다.

이는 그녀가 활동한 영턱스 클럽의 인기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녀의 컴백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같은 사람들의 관심과 환대에 임성은은 “감사하고 고맙다. 영턱스 클럽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이렇게 마주앉아서 근황을 이야기하고 컴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좋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임성은의 컴백과 관련해 먼저 확실히 해둘 것은 그녀의 컴백 결정은 최근 ‘토토가’로 인해 불어닥친 90년대 음악의 열풍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임성은은 ‘토토가’를 보고 남다른 감회와 감동을 느꼈다고는 했지만 그녀가 컴백을 결정한 계기는 20년지기 친구 도원경으로부터였다.

임성은은 “몇 년 전에 (도)원경이 콘서트에 갔다가 무대에서 하는 모습을 보고 음악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때는 생각만 하고 입 밖으론 꺼내지 않았다가 원경이의 부탁으로 직접 무대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때 무대에서 예전 열정이 살아나는 걸 느꼈고, 다시 음악을 하고 싶다고 주위에 생각을 밝혔다”라고 컴백을 결심한 계기를 밝혔다.

물론 지금은 아직 기획단계일뿐으로 어떤 음악을 어떤 형태로 들고 돌아올지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다시 무대 위에 선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확실시 되고 있다.

또한 그녀의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희소식이 있다. 바로 2월 21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백투더 나인티스 빅쑈’에 출연하는 것이 그것으로, 이를 통해 임성은은 최승민, 박성현 등과 18년 만에 영턱스 클럽에 다시 합류하게 됐다.

여기서 잠깐 옛날이야기를 하자면 영턱스 클럽이 너무나도 큰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임성은 역시 영턱스 클럽으로 데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1992년 ‘이렇게 슬픈 마음으로’라는 곡으로 솔로가수로서 데뷔를 했다.

이후 그녀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영턱스 클럽이 아닌 투투에 합류해 ‘바람난 여자’ 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당시에 대해 임성은은 “투투는 오디션을 통해 들어가게 됐다”며 “오디션이 비공개로 진행돼 경쟁률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1과 2분의1’이 큰 인기를 끈 직후라서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또 영턱스 클럽이 당시 내로라하는 춤꾼들을 모은 그룹이었는데 메인 보컬이 필요해서 물색을 하다가 나에게 스카웃이 들어와 합류하게 된 거다”라고 영턱스 클럽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사람들이 많은 오해하고 있는 것은 임성은의 영턱스 클럽 활동기간으로, 사실 임성은이 영턱스 클럽으로 활동한 시기는 1집 ‘정’ 뿐이다.

이후 임성은은 1997년 발매된 2집 ‘타인’의 녹음 참여와 단 한 번의 고별무대를 끝으로 영턱스 클럽을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불화설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임성은은 멤버들간의 불화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임성은,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임성은은 “(탈퇴하게 돼)너무 마음이 아팠다. 솔직히 당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룹이었는데 나라고 나가고 싶었겠느냐”라며 “그런데 그때는 하라면 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회사에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서 팀을 나가게 됐다”라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녀는 “마음 아픈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라며 “그러다보니 멤버들과도 자주 연락을 하지 못하고 지내왔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필리핀에서 차분하게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안정이 찾아지더라”라고 이제는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음을 밝혔다.

실제 최근에는 옛 멤버들과 종종 만나며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임성은은 “박성현은 신혼여행을 필리핀으로 와서, 항공권만 끊어오라고 하고 현지 관광을 다시켜줬다. 송진아도 필리핀으로 여행을 오고 싶다고 해서 (임성은이 운영하는)스파에서 머물고 그랬다”라고 최근 멤버들의 근황을 알렸다.

더불어 이번 ‘빅쑈’에는 합류하지 못한 송진아에 대해 “스노우보드 국가대표까지했다가 방송사 PD, 그리고 지금은 보드관련업체에서 근무중이다”라며 “아무래도 회사원이다보니 이번 무대에는 스케줄을 내기 힘들어 합류하지 못했다. 다음번에는 꼭 다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옛 동료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임성은의 복귀 무대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화제는 단연 ‘나이키 춤’을 과거처럼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서 임성은은 “‘나이키 춤’의 성공여부는 무대에서 확인해 달라”라고 궁금증을 남겼다. 대신 다른 안무에 대해서는 “몸이 기억해 나도 깜짝 놀랐다. 몇몇 부분은 활동 당시와 안무가 좀 바뀌었는데, 최승민이 내가 옛날 춤을 추는 것을 보고 그 부분을 수정해 주기도 했다”라고 댄스 가수의 DNA는 여전히 남아있음을 알렸다.

사실 락발라드곡으로 데뷔한 임성은은 춤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지만 춤꾼들이 모인 영턱스 클럽에 들어가게 되면서 남들보다 갑절은 힘든 트레이닝을 버텨내야했다.

임성은은 “영턱스 클럽을 준비하면서 남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연습실 키를 복사해 몰래 한밤중에 혼자 연습하기도 하고 그랬다”라며 “나중에 다른 멤버들이 정말로 나이키를 할 줄 몰랐다라고 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나이키와 더불어 임성은은 솔로 활동당시 ‘토마스’를 성공한 최초의 여가수로도 유명세를 떨쳤다.

이에 대해 임성은은 “비-보이(B-Boy)는 그전에도 있었지만 비-걸(B-Girl)은 그때까지만 해도 없었다”라며 “여가수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여자 중에 토마스를 한 사람이 없었고, 남자 댄서들도 와서 보고 그랬다. 나중에 들으니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비보잉 문화가 더 발달한 일본에서도 여자 중에서는 토마스를 한 사람이 없었다더라”라고 밝혔다.

이어 “(내가 토마스를 성공시킨 이후)비-걸이 그래서 생겨났다. 내가 그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한국 댄스계에 족적을 남겼음을 알렸다.

마지막 솔로 활동이후 약 12년 만에 가요계로 돌아오는 임성은이지만 잠재된 끼와 재능으로 인해 어색함은 그리 크지 않은 상태다.

실제 도원경의 20주년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무대에 서기도한 임성은은 “‘정’을 풀 밴드의 반주에 맞춰 불렀는데 처음 경험해본 무대였고 그 무대가 잊혀 지지 않는다”며 “원경이가 내 안에 있던 열정과 희열을 끌어내준 셈이다. 그러면서 가수복귀의 꿈이 구체화됐다”라고 이미 가수로 복귀할 마음가짐은 갖춰진 상태임을 밝혔다.

그리고 복귀를 마음먹으니 그다음일도 자연스럽게 풀려가고 있는 중이다. 때마침 불어온 90년대 열풍도 그렇고 컴백 무대가 된 ‘빅쑈’ 역시 그렇다.

임성은은 “필리핀에서는 ‘토토가’를 보지 못했는데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토토가 왜 안 나왔냐’라고 말하길래 1월 7일 한국에 왔을 때 다시보기로 봤다”라며 “정말 그때 감동이 느껴지고 여운에 잠겨있는데 바로 다음날 최승민에게서 ‘빅쑈’에 함께 나가자고 전화가 왔다. 알고 보니 최승민은 내가 한국에 있는지도 모르고 전화를 한 거였더라. 그래서 하겠다고 하고 그 다음부터 쭉 한국에 머물면서 공연을 준비해 왔다”라고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음을 알렸다.

끝으로 임성은은 이후 가수 활동에 대해 “예전에는 너무 어려서 시키는 대로만 했다면 지금은 듣는 사람도 나도 즐길 수 있는 무대를 하고 싶다”라며 “(일회성이 아니라)기회가 된다면 계속 활동을 하고 싶다. 앞으로 필리핀의 스파 사업과 가수 활동 병행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가수로서 꾸준한 활동을 약속했다.

영턱스 클럽, 사진|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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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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