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 감독 “여자팀 감독은 뜨거운 프라이팬이 돼야”

입력 2015-04-0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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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위)이 31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NH농협 V리그’ 도로공사와의 챔프전 3차전에서 승리해 2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의 헹가래에 두 손을 높이 들며 기뻐하고 있다. 화성|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IBK 이정철 감독의 ‘밀당 리더십’

“항상 콩 볶듯이 선수들에게 자극 줘야
너무 뜨거워도, 너무 미지근해도 안돼”
특정한 날 이벤트로 선수 마음 열기도
붉은 넥타이 고집…승리 열정 일깨워

여자프로배구 IBK기업은행 이정철(55) 감독이 새로운 역사를 썼다. 3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 우승 2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 V리그 여자부 최초다. 아울러 V리그 여자부 챔프전 최초로 3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 아쉽게 우승에 실패했지만, 좌절을 이겨내고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위업을 달성했다. “여자배구는 감독의 능력보다 선수들의 기량이 우승을 더 좌우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이 감독의 카리스마와 선수 장악력, 열정, 심리전에서의 노하우를 폄하해선 안 된다.


● 독사 그리고 뜨거운 프라이팬

오랜 기간 여자선수들을 지도해온 이정철 감독의 별명은 ‘독사’다. IBK기업은행 선수들이 하는 그 말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훈련에서 절대 양보란 없다. 다른 팀보다 힘들 때 한 시간 더 훈련해야 진정한 강팀이 된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을 항상 다그쳐왔다. 대충 훈련하거나 분위기가 느슨해질 때는 예외 없이 질책이 나온다. “너 나가.”

이 감독은 “여자팀 감독은 뜨거운 프라이팬이 되어야 한다. 항상 콩 볶듯이 선수들에게 자극을 줘야 한다. 단, 너무 뜨거워도, 너무 미지근해도 안 된다”고 밝혔다. 유난히 디테일에 강하다. 숙소에서 마주친 선수들의 인사자세부터 생활태도, 훈련 등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진다.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즉시 지적한다.

“배구는 득점이 아닌 실점의 경기”라며 잔 볼 처리와 헌신을 강조한 그는 “올바른 습관이 기술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래서 따분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기본 훈련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감독은 “평소 올바른 습관을 잘 갖춰야 경기에서 기술로 이어진다. 팀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평범한 플레이에서 나오는 좋은 버릇이다. 집중하고 반복해서 좋은 습관을 만들도록 항상 소리치고 지적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의 마음과 숨겨진 고민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운동선수 자식을 키우고 있기에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선수들을 대한다. 이 감독의 아들은 프로축구단에서 골키퍼로 활약하는 꿈나무다. 김희진을 비롯한 IBK기업은행의 많은 선수들이 축구선수 아들과 같은 나이다. 자식을 대하듯 미래를 생각하고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 보니 잔소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 ‘밀당’의 고수, 선수들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한다!

여자선수들의 미묘한 심리를 읽어야 하는 특성상 밀고 당기기에도 강하다. 선수의 마음을 여는 노하우가 풍부하다. 훈련을 강하게 하지만, 선수들의 컨디션이 떨어졌거나 훈련을 해봐야 효과가 없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휴식일도 준다. 이벤트도 많이 한다. 특정한 날에는 모든 선수들에게 초콜릿과 장미를 선물하면서 일일이 “사랑한다”고도 했다. 엄한 감독이지만,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서로의 신뢰가 쌓이지 않는다고 믿는다.

2012∼2013시즌 통합우승 때는 ‘얼음공주’ 알레시아의 마음을 열며 시즌 최우수선수(MVP)와 챔프전 MVP도 안겼다. 올 시즌에는 야생마 같은 데스티니와 끝없는 신경전을 벌이며 원하는 목표를 향해 전진했다. 칭찬보다는 호통에 익숙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진심과 승리를 향한 열정을 알기에 선수들도 잘 따랐다.

사실 지난 시즌이 아쉬웠다. 압도적 전력으로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GS칼텍스와 챔프전을 벌였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역전패했다. 그 패배의 교훈을 잊지 않았다. 정성과 철저한 준비의 중요성을 새삼 배웠다. 새 외국인선수가 리그 개막을 1개월도 남겨두지 않은 때 임신으로 돌아가는 황당한 사건을 겪었던 경험은 주전 세터 이효희의 FA 이적 때 발휘됐다. 해외리그에서 돌아와 갈 곳을 정하지 못하던 김사니와 연락해 즉시 IBK기업은행 유니폼을 입혔다.

정규리그 4라운드 때 데스티니가 부상으로 빠지자, 김희진과 박정아의 성장과 자각을 이끌어냈다. 그 어려웠던 고비가 IBK기업은행에는 시즌의 운명을 바꾼 계기였다. 포스트시즌 동안 붉은색 넥타이를 고집하고, 같은 속옷과 셔츠를 입은 것도 감독의 정성을 선수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화성|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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