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愛] 서울응급환자이송단 대표 “잠실구장 응급차 첫 출동 아직도 생생”

입력 2015-05-1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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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응급환자이송단 박영석 대표는 잠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현장에 출동한다. 2000년 고 임수혁의 사고 이후 응급구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박 대표는 2003년부터 잠실구장에서 응급수송 업무를 맡고 있다. 잠실|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서울응급환자이송단 박영석 대표

2009년 손시헌 부상때 그라운드 첫 출동
야구팬들이 구급차 향해 기립박수 보내
김태균 뇌진탕 실신 계기 구급차 2대 배치

“임수혁사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게 목표
일 없어져도 좋다…사고 안나는 게 최고”

서울응급환자이송단 박영석(48) 대표는 잠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일찌감치 구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관중이 입장하기 시작하는 오후 4시30분부터는 잠실구장 한편에 마련된 방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그라운드를 지켜본다. 혹시 선수들이 훈련 도중 다치지 않을까, 선수들의 훈련을 보기 위해 일찍 입장한 관중이 파울 타구에 맞지 않을까,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구조사와 함께 그라운드로, 관중석으로 뛰쳐나간다.

박 대표가 응급환자 이송업무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19년째. 2000년 고 임수혁(전 롯데)의 사고 이후 응급구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박 대표도 더욱 바빠졌다. 이제는 야구뿐 아니라 배구, 농구, 축구 등 프로스포츠 전반에 걸쳐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 임수혁 사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

박영석 대표는 늘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구장으로 출근한다. 임수혁의 불행한 사고는 결코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된다. 2000년 4월 18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LG전 도중 임수혁은 그라운드에서 쓰러졌다. 원인은 지병이었던 심장부정맥. 그러나 당시 경기장에는 제대로 된 응급 의료진이 없었다. 심폐소생술만 받았어도 그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임수혁의 사고 이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가 KBO에 적극적으로 요청해 2003년부터 각 구장에 응급구조대가 배치됐다. 박 대표는 2003년부터 두산, LG와 계약해 잠실구장 응급수송 업무를 맡게 됐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수 있기에 지체할 틈이 없다. 그러나 사실 보수는 많지 않다. 그래도 박 대표는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극한직업이지만 보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다시는 임수혁과 같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다.


● 잠실구장 그라운드에 구급차 들어오던 날

박영석 대표에게는 잊을 수 없는 2가지 사건이 있다. 2009년 4월 26일 잠실 한화-두산전이 첫 번째다. 한화 김태균이 1회초 홈으로 쇄도하다 LG 포수 최승환과 충돌한 뒤 머리를 땅에 부딪치며 실신했다. 당시만 해도 구급차가 1대였다. 김태균을 들것에 실어 이동했는데 파울 타구에 맞은 관중 때문에 이미 구급차가 없는 상황이었다. 박 대표는 “그때는 정말 아찔했다. 이후 구급차 1대로 시뮬레이션을 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만약 생사를 오가는 큰 부상이었다면 어쩔 뻔했나. 이후 선수용과 관중용으로 구급차 2대가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구급차가 처음으로 그라운드에 들어오던 날도 잊을 수 없다. 그 전까지는 구급차가 그라운드 잔디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부상을 당한 선수들을 들것으로 실어 구장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2009년 6월 2일 광주 KIA전에서 두산 이종욱이 타구를 잡으려다 김재호와 충돌해 턱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한 이후로 구단들은 구급차의 그라운드 진입을 허가했다. 박 대표는 “당시 이종욱 선수가 피를 흘리면서 들것에 실려 나가는 모습이 TV 화면을 통해 중계됐다”며 “만약 구급차가 그라운드에 들어갔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또 들것으로 이송하다가 부상이 악화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에서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말했다. 2009년 7월 7일 잠실 SK전에서 손시헌이 고효준의 투구에 뒷덜미를 맞으면서 실신했을 때 구급차가 처음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박 대표는 “당시 잠실구장에 팬들이 가득했는데 구급차를 향해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때의 환호를 잊지 못 한다”고 떠올렸다.


● 사고가 안 일어나는 것이 최고!

박영석 대표는 요즘 들어 일이 많아졌다. 선수들의 부상 때문만이 아니다. 여성 관중이 늘고 응원문화가 발달하면서 파울 타구에 맞아 다치는 팬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급차를 몰고 있다. 박 대표는 예방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파울 타구는 순식간에 날아온다. 언제 어디서든 공이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또 공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내 쪽으로 공이 날아오면 몸을 웅크려서 최대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선수들에게도 부상을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되면 할 일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문에 박 대표는 “내가 할 일이 없어져도 좋다. 사고 안 나는 게 최고다. 선수들이 다치면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고 치료 기간도 길어진다. 또 즐겁게 야구를 보러온 관중이 다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는 현답을 내놓았다.

잠실|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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