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 사행산업’ 과한 규제가 불법도박 판 키웠다

입력 2015-06-1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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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로스포츠 경기장에서 브로커로 추정되는 사람이 불법 도박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다. 불법 사설경마부터 온라인 도박까지 우리나라 불법도박 시장은 한해 최대 16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 온라인 불법도박, 이젠 OFF!

● (상) 불법도박 100조원 시대의 그늘

우리나라 불법도박 시장은 지난해 101조∼160조원에 달한다. 카지노 경마 경륜 경정 복권 등 합법적인 사행사업의 지난해 매출이 20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최대 8배나 더 크다. 최근엔 모바일 PC 등 불법 온라인도박 시장이 급신장하고 있다. 불법도박에 빠지면 개인과 가족의 모은 것을 앗아가는 것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조세누수 등 피해가 크다. 개인과 국가를 멍들게 하는 ‘온라인 불법도박’의 현실과 해법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스마트폰 발달로 온라인 불법도박 확산
불법도박시장 규모 최대 160조원 추산

매출총량 규제에 경마·경륜 등 직격탄
사설업체는 베팅 제한 없애 검은 유혹
형정연 “합법 사행사업에 힘 실어줘야”


사례1.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지난 5월25일 미국·캐나다인 등의 해외 신용카드 정보로 국내 인터넷 쇼핑몰에서 홍삼·금붙이 등을 구매한 뒤 싼 값에 되팔아 16억원을 챙긴 혐의로 정모 씨 등 18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이렇게 번 돈으로 2012년 10월부터 10개월간 인터넷 불법사설 경마 도박사이트를 운영해 83억6000만원의 부당이익을 챙겼다. 이들은 해커들에게 의뢰해 과천·부산·일본의 경마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빼돌려 중계하는 식으로 도박장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례2. 충북 충주경찰서는 지난 5월18일 무허가 불법사설 경마장을 운영한 12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지난해 2월경부터 무허가로 사무실과 컨테이너 등에 한국마사회가 시행하는 경주를 이용해 인터넷 불법사설 경마사이트를 개설한 후 온라인 또는 직접 방문하는 마권 구매자들에게 계좌이체로 돈을 받아 배팅을 해주고 배당금을 지급해 주는 방법으로 불법사설 경마장을 운영했다. 이들은 배팅 금액의 20%를 서비스머니로 받는 등 부당 이득을 챙겼는데 배팅 총금액은 연간 30억원에 달했다. 단속에 나선 경찰 및 마사회 관계자는 “사설 경마가 중소형 도시로 확산하는 추세로 PC 1대만 있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든 불법 사설 경마를 할 수 있어 단속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불법도박이 확산과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엔 고스톱이나 포커, 카지노 같은 기구를 이용한 도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바다이야기’ ‘황금성’ ‘스크린경마’ 등 사행성 게임으로 진화했다. 이는 정부가 ‘도서산업과 영화산업의 장려’라는 명분 하에 도입한 상품권의 경품제공 합법화에 힘입은 바 크다. 이후 온라인을 활용한 불법게임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불법 경마, 토토, 경정, 경륜을 물론 투견, 카지노까지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게릴라성 게임’으로 확산됐다. 불법도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불법 모바일도박시장이 불법도박을 주도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 불법도박시장은 조사 대상과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눈덩이처럼 커져가는 것은 분명하다. 2006년 28조8000억원(한국레저산업연구소 추산)였던 불법도박 시장은 2008년 88조원(국가정보원 추산)을 거쳐 2014년엔 101조∼160조원(한국형사정책연구원 추산)으로 커졌다. 지난해 불법도박시장규모를 추정치의 평균인 130조원만 잡아도 올 한해 복지예산 115조7000억원을 뛰어넘는 엄청난 수치다.

이처럼 불법도박시장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합법 사행산업의 규제에만 몰두한 정부의 정책오판’을 꼽는다. 이른바 합법 사행산업 매출총량 규제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은 경마와 경륜이다. 경마와 경륜은 경주 당 최대 베팅 금액을 10만원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미 마권구매상한액 제한, 낮은 환급율로 저변을 확보했던 불법 사설경마는 경마총량제와 온라인 베팅금지와 같은 규제정책으로 수요자들이 온라인으로 빠져나갔다. 불법 사설경마의 경우 컴퓨터만 있으면 장소의 제약이 없고 경마장보다 25% 정도 싸게 마권을 구입할 수 있다. 또 베팅금액에 제한이 없어 합법 경마, 경륜산업은 속수무책으로 고객을 내줘야만 했다. 스포츠가 아닌 도박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불법도박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1차적으로 개인이나 합법시장이지만 이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국가 곳간에도 고스란히 손해를 끼친다. 불법도박업자들의 조세포탈 총액은 연간 5조∼8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인천광역시 1년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온라인 불법도박의 경우 단속을 피하기 위해 외국에 서버를 두는 등 시장 자체가 첨단화 다국적화 되고 있다. 외국계 대형 도박업체가 국내에 진입하는가 하면 우리나라의 불법도박 수익이 고스란히 국외 유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강석구 연구위원은 “이제 불법도박시장은 연간 100조원대를 상회하는 규모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 베팅시장을 해외시장과 불법시장에 통째로 내줄 것인지, 아니면 불법도박에 맞설 힘을 합법 사행산업에 실어줘 잃어버린 시장을 되찾을 것인지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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