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국민감독님, 미안합니다…감사합니다

입력 2015-07-0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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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 스포츠동아DB

■ 다시 현장에 선 김인식 감독

2009년 제2회 WBC 감독으로 준우승 쾌거
그해 한화는 꼴찌…책임지고 그라운드 떠나
독이 든 성배 ‘프리미어12’ 사령탑으로 복귀
“나라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 지론 실천 감동

“남규야, 왜 이리 눈물이 나냐. 내가 두산에 더 오래 있었지만, 거기서 나올 때는 이렇게 울지 않았어.”

2009년 9월 26일. 한화 사령탑에서 잘린 김인식 감독은 짐을 챙겨 경기도 용인의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2004년 말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몸이 불편해진 그를 대신해 운전기사 노릇을 하던 김남규 전력분석요원(현 한화 1군 매니저)도 마지막 배웅에 코끝이 찡했다.

남자의 눈물이란…, 환갑을 넘긴 노장의 눈물이란, …. 김 감독은 차창 밖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코맹맹이 소리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한화에서 5년 동안 정이 많이 들었나봐. 왜 이리 눈물이 나냐. 가슴이 아프다.” 그는 불편한 오른손으로 주책없이 흘러내리는 눈물과 콧물을 훔쳤다.

강단 있는 장수, 냉철한 승부사. 그는 평소 모습과는 달리 이때만큼은 울보가 됐다. 남자라도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 전인 9월 2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삼성과의 시즌 최종전. 시즌을 꼴찌로 마감한 한화 선수들은 경기 후 그라운드에 일렬로 서서 팬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둥글게 모이더니 김 감독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예상 못한 광경. ‘울컥’했다. 인사를 받고 돌아선 ‘빨간 볼 감독님’의 볼은 더 붉어졌다. 당시 우리나이 예순세 살의 노장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는 제자들 앞에서 울기 싫어,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뜩이나 불편한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빠른 걸음으로 덕아웃 쪽으로 걸어갔다. 뒤돌아선 모습이 슬펐다. 흐느끼던 등은 더 슬펐다. 덕아웃 옆 감독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거기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세상 어떤 감독이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큰절을 받을 수 있을까. 선수들은 그에 대한 존경심으로 큰절을 올렸고, 그에 대한 미안함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를 아버지처럼 모시던 구단 직원들도 눈물을 훔쳤다.

한화 김태균은 지금도 가슴 찡했던 그날을 기억한다. “감독님께 고맙고 죄송해 형들이 큰절을 올리자고 해서 그렇게 했다.” 김 감독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선수들이 떠나는 감독한테 큰절을 올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잖아. 고맙고 미안해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어. 그때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그게 ‘감독 김인식’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는 그해 3월 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위대한 도전’을 했다. 모두가 꺼렸던 대표팀 감독 자리. 프로야구팀의 스프링캠프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인들 왜 모를까. 그러나 그는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온 ‘폭탄’을 피하지 않았다. “나라가 있어야 야구가 있다”며 기꺼이 ‘독이 든 성배’를 집어 들었다.

WBC 준우승으로 ‘위대한 도전’에 성공한 한국야구와는 달리, 소속팀 한화는 그해 ‘참혹한 실패’를 맛봤다. 그가 한화 사령탑에 오른 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번도 승률이 5할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었지만, 그해 승률 0.346(46승3무84패)로 추락하면서 그는 해고의 칼날을 맞았다.

혹자들은 그렇게 묻는다. “WBC 대표팀 감독을 맡느라 중요한 시기에 정작 한화를 돌보지 못해 꼴찌를 한 것 아니냐”고. “그래서 감독 자리에서도 잘려 억울하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는 변명하지 않는다. “김태균이 뇌진탕으로, 이범호가 햄스트링으로 시즌 때 한 달 이상 팀을 비우면서 운이 없었을 뿐이야. 그게 한화 구단의 운이고, 내 운이었던 거지. WBC 영향이 없진 않았겠지만, 그 때문에 팀 성적이 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곤경에 처할 때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아버지와 큰 형님을 찾아가는 것처럼, 한국야구는 이번에도 국가대표팀 사령탑 선임이 어려워지자 염치 불구하고 또 그를 찾아갔다. 올해 11월 열리는 ‘프리미어 12’. 시기적으로 현역 감독이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기에는 부담이 많은 대회인지라 한국야구는 또 다시 그의 등에 큰 짐을 지웠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역적이 되는 국가대표팀 사령탑. 그는 우리네 아버지와 큰 형님이 그런 것처럼,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을 찾아온 한국야구를 외면하지 못했다. WBC 때보다 선수구성도 쉽지 않아 보이지만, 남들이 꺼리는 ‘독이 든 성배’를 그는 집어 들었다. 2009년 9월 25일 한화 선수들의 큰절 속에 눈물을 흘리며 감독 자리를 떠났던 ‘국민감독’은 6년 만에 이렇게 우리 곁을 찾아왔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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