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파격 그룹 ‘삐삐밴드’ 해체

입력 2015-07-29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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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7월 29일

그룹 삐삐밴드가 데뷔 20주년을 맞아 미니앨범 ‘pppb’를 내놓았다. 1995년 데뷔 당시 매니저이기도 했던 제작자 김진석 팝뮤직 대표가 “1996년 정규 2집 ‘불가능한 작전’이 불가능으로 끝났다”며 새로운 활동을 제안했고 멤버 달파란, 박현준, 이윤정은 이를 받아들였다.

새 앨범은 1996년 오늘, 팀의 해체를 선언한 지 19년 만이다. 삐삐밴드는 당시 “멤버들 사이에 음악적 견해의 차이가 있다”면서 “작가로서 의식과 가치관의 정립이 먼저 필요하다. 인기나 흥행만을 위한 활동은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삐삐밴드는 1995년 8월 데뷔 앨범 ‘문화혁명’을 내놓으며 세상에 나왔다. 록그룹 시나위와 H₂O 등에서 활동한 강기영(훗날 ‘달파란’이란 예명으로 바꿨다)과 박현준이 “압구정동에서 이름난” 이윤정과 함께 결성한 삐삐밴드는 데뷔작만큼 ‘혁명적인’ 음악으로 시선을 모았다.

펑크록을 기반으로 한 음악과 일상적 언어를 담은 노랫말은 물론 원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과 트레이닝 차림의 의상 등은 이들의 파격성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기성(세대)질서에 대한 야유와 조롱, 풍자의 표현이기도 했다. 아직 채 형성되지 못했던 펑크록의 흐름을 이끈 것도 바로 이들이었다. PC통신을 중심으로 한 젊은 대중은 자신들의 시선에 가득 신선함으로 다가온 이들을 환영했다.

언론은 이들의 파격적 면모를 과장하기도 했고, 애써 논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현란한 평론의 언어로 무장한 평자들은 과대한 해석으로 이들을 평가했다. 정작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런 모습조차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듬해 2집 ‘불가능한 작전’을 내놓은 직후 이들은 결국 해체했다. 그리고 1997년 1월 이윤정 대신 고구마(권병준)를 새로 참여시켜 ‘삐삐롱스타킹’(외화 ‘말괄량이 삐삐’의 주인공 이름)으로 새로운 활동에 나섰다. 2월 MBC ‘인기가요 베스트 50’에서 손가락 욕과 카메라를 향해 침을 뱉는 행위로 지상파 방송 1년간 출연 정지 등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당시 김진석씨는 “경솔하고 예의없는 행동인 건 사실이지만 금기와 우상 타파라는 일관된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1997년 2월22일자 한겨레)고 말했다.

삐삐롱스타킹 멤버들은 그해 여름 각자의 길을 가기 위해 팀을 해체했다. 이후 달파란은 테크노음악 DJ를 거쳐 영화음악가로, 박현준은 밴드 모노톤즈로 활동하고 있다. 이윤정은 밴드 EE의 멤버 겸 스타일리스트이기도 하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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