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 두 달 전 별세… 장녀 “극비리에 조용히 장례 치러”

입력 2015-10-22 11:59: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천경자 화백, 두 달 전 별세… 장녀 “극비리에 조용히 장례 치러”

천경자 화백의 사망 소식이 뒤늦게 전해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2일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70)씨가 몇 달 전 미술관에 유골함을 들고 수장고에 다녀갔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이씨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씨가 관련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아줄 것을 강력 요청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맏딸 이혜선 씨는 “지난 8월 6일 새벽 5시쯤 현저히 맥박이 떨어지더니 의사가 보는 가운데 잠자는 것처럼 어머니는 평안하게 돌아가셨다”며 “화장해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극비리에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용하게 장례를 치렀고 한국과 미국 양쪽에 사망 신고를 했다”고 전했다. 이혜선 씨는 천경자 화백의 유골이 안치된 장소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천경자 화백은 지난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1년 전부터 생사여부 논란이 있어왔다.

천경자 화백은 지난 1991년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을 선언하고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이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긴 뒤 미국으로 떠났다.

천경자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후 거동이 불편해져, 미국 뉴욕의 큰딸 집에서 머물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천 화백은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서 유학한 그는 1952년 피란지인 부산에서 연 개인전에 나온 우글우글한 뱀 그림 ‘생태(生態)’로 일약 화단의 스타작가로 뛰어올랐다.

국내 대표 여성작가로 승승장구하던 천경자 화백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인도 위작 사건’으로 절필선언에 이르렀다. 그는 '미인도' 위작 사건과 관련, “내가 낳은 자식을 내가 몰라보는 일은 절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미국으로 떠났으며, 1998년 11월 일시 귀국해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또 한번 화제를 모았다.

한편 천경자 화백의 별세가 알려지면서 미술시장도 술렁이고 있다. 유명화가가 사망하면 작품 값이 뛴다는 속설 때문.

하지만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천경자의 그림은 이미 호당 가격이 거의 1억원선이어서 더 이상의 상승세는 없을 것으로 봤다.

동아닷컴 박선민 인턴기자 star@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동아일보DB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