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배틀로얄’ 포스터
그런데 소설이나 만화, 영화에서나 등장할법했던 ‘배틀로얄’이 조만간 한국에서 벌어지고, 심지어 TV로도 방송될 전망이다.
Mnet이 2016년 1월 방송을 목표로 ‘프로듀스101’에 대한 이야기로, 실제로 죽고 죽이지만 않을 뿐이지, 그 내용은 사실상 ‘배틀로얄’의 그리 다를 바가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프로듀스101’의 포맷은 이렇다.
국내 다수의 연예기획사 여자 연습생들 101명을 한곳에 모아놓고 트레이닝과 오디션을 진행해 최종적으로 10명의 프로젝트 걸그룹 멤버를 선발하는 것을 기본으로, 연습생들은 데뷔 멤버로 발탁될 때까지 외부와 단절된 채 숙소 생활을 하게 된다. 또 연습생이란 걸 감안할 때 연령대는 10대 중후반이 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42명의 남녀중학생이 101명의 여자연습생으로 바뀌었을 뿐, 고립된 지역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친구들을 제거해 나간다는 설정은 제목을 ‘배틀로얄101’로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그대로 빼다 박았다.
물론 서바이벌 오디션을 통해 가능성 있는 인재를 발굴해 스타를 만들어내겠다는 취지는 좋다.
또 중소기획사 연습생신분으로 데뷔까지의 이르기도 어려울뿐더러, 데뷔이후 대중들의 관심을 받기는 더 극악한 확률인 현실을 고려할 때 이들이 선뜻 잔혹한 배틀로얄의 현장에 발을 들인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됐다. 대부분이 미성년자인 여자아이들 101명을 한 곳에 가둬놓고 데뷔라는 당근을 미끼로, 서로간의 경쟁을 유도한다는 발상은 이미 ‘악마의 편집’으로 악명 높은 Mnet의 기분 나쁜 사디즘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정말로 Mnet이 중소기획사의 연습생들의 데뷔와 홍보를 도울 생각이었다면, 각 기획사를 직접 찾아가 오디션과 캐스팅을 진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종멤버를 선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문제는 또 있다. 과연 이 치열한 ‘배틀로얄’을 거친 멤버들이 기대한 만큼의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Mnet을 대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만 보더라도 방송당시에는 당장이라도 슈퍼스타가 될 것처럼 주목을 받았던 참가자가 방송이 끝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져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꾸준히 목격해왔다.
‘프로듀스101’ 역시 방송 당시에는 한 순간 주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최종멤버에 선발되지 못하고 소속사에 돌아갔을 때도 이런 관심이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단지 실시간 검색어에 이름을 한 번 올리는 것이 최종목표가 아니라면, ‘프로듀스101’에 출연을 결정한 기획사들과 연습생들 스스로도 득과 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프로듀스101’이 미성년자 여자아이들을 대상으로 아무리 사디즘에 가까운 포맷과 설정을 보여준다고 해도, 비난의 대상은 될지언정 법적인 제재의 대상은 되기 힘들다는 것이다.
법률전문가 황교영 변호사는 “현행법상으로는 미성년자 연예인의 노동력 착취 등과 관련한 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 등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를 포함한 계약서가 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데, 계약서 자체에 과도한 조항이 있지 않는 이상 문제를 제기하기 힘들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방송출연으로 인한 활동비 등을 임금으로 보고 근로자기준법 적용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임금으로는 보기 힘들다는 판결이 나왔다. 현행법상으로도, 판례상으로도 현재는 법적인 제재를 가할만한 근거가 없다”며 “다만 몇 년 전부터 미성년자 연예인에 대한 법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새로운 관련 법안을 입법하려는 움직임은 있어왔다”라고 덧붙였다.
혹자는 경쟁에서의 승리가 스타가 되기 위해 거쳐야할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과하면 독이 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연습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한 게 불과 8개월 전이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고, 탈락했을 경우 곧 돌아서버리는 풍토가 이런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 한 원인이 됐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지금 Mnet과 ‘프로듀스 101’이 하려는 것은 스타발굴이라는 명목 하에 어린 아이들을 구덩이에 집어넣고 이를 기어 올라오는 모습을 낄낄대며 지켜보겠다는 시청률과 돈의 논리에 가깝다.
아무리 법적인 문제가 없고, 설령 프로그램이 대히트를 한다고 하더라도 유쾌함보다 불쾌함이 앞설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