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의 법칙] F등급도 아까웠던 ‘프로듀스101’

입력 2016-01-3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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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로 출연자도 시청자도 모두 지치게 하는 프로그램이 또 있을까? 사진|방송 갈무리

우려했던 문제점이 다 터져 나왔다. 이제 단 2회가 방송된 ‘프로듀스101’이지만 지금까지의 모습은 ‘F클래스’도 아까운 수준이다.

29일 방송된 Mnet ‘프로듀스101’에서는 참가자들의 A~F 클래스를 나누는 레벨테스트 후반부와 미션곡 ‘Pick Me’의 퍼포먼스를 통한 레벨 재조정의 과정이 그려졌다.

제아, AG 성은, 치타, 가희, 배윤정, 장근석이 임의대로 클래스를 정하고 상위 클래스마다 메리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국민 프로듀서’라고 외쳐대는 프로그램의 기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한정된 시간을 생각해 이 정도까지는 눈감아줄 수 있다.

문제는 심사기준과 심사위원들의 태도다. 심사위원이 밝힌 평가 항목은 보컬과 랩, 댄스와 성장가능성의 4가지로, 누가 봐도 확실하게 A클래스나 F클래스로 구분 지을 정도의 실력의 참가자는 그나마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중간급인 B~D클래스에 평가는 전적으로 심사위원의 취향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정확한 기준을 알기 힘들었다. 특히 걸스힙합 콘셉트의 케이코닉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들에게 돌발적으로 소녀시대 안무를 요구하고 이를 소화하지 못하자 C, D등급을 부여한 건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었다.

콘셉트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심사 항목이 추가됐다. 사진|방송 갈무리


물론 돌발미션을 내린 이유는 있었다. 다른 콘셉트의 곡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곤 하지만, 연습생의 보컬과 댄스 등 기본 능력을 평가하는 무대에서 유독 이들에게만 이런 미션을 내린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똑같은 이유를 적용하면, 청순 콘셉트를 들고 나온 참가자들에게 힙합 콘셉트를 보여 달라고 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심사위원으로 나선 트레이너의 태도도 지적받을 만했다. 참가자의 평가에 고민을 하는 가희를 보고 “기억에 안 남으면 다 D, F다”라고 한 배윤정의 발언은 그야말로 연습생들의 실력을 평가하겠다는 게 아니라 개인 취향에 맞는 아이를 찾겠다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쯤되면 심사위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 의심된다. 사진|방송 갈무리


또 아이돌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호감과 매력을 주는 비주얼도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심사기준도 의문이다.

실제로 2주간 방송에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미모로 입소문을 탄 플레디스의 주걸경이 인기투표 3위, 4위에 오르고, 실력적으로는 아직 부족하지만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 레드라인의 김소혜가 24위, 18위에 오른 것을 보면 대중들이 걸그룹을 평가할 때 비주얼을 얼마나 중요시 하는 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주걸경이 4위, 김소혜가 18위, 아리요시 리사가 72위 이다. 사진|방송 갈무리


심지어 모든 참가자 중 가장 실력이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티핑의 아리요시 리사도 62위, 72위의 중하위권을 기록했다.

등급제 자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경쟁심과 의욕을 유발하겠다는 의도겠지만, 상위 클래스는 지켜야한다는 부담감에, 하위 클래스는 스스로에 대한 좌절감에 더 가까웠다.

등급제는 순효과 보다 역효과가 더 커보였다. 사진|방송 갈무리


그리고 이는 미션곡인 ‘Pick Me’의 연습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개개인의 성향이나 특성을 배제하고 절대기준인 ‘Pick Me’가 등장하자, 잘해야 한다는 긴장감에 초조해 하거나 부담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Pick Me’의 레슨 과정도 보기 불편한 장면은 이어졌다. 제아무리 자신만의 교육 스타일과 노하우가 있다고 하지만,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장본인인 배윤정이 “분위기라도 좋든가”라고 다그치는 모습은 실소조차 나오지 않게 했다.

사실 의욕과 분위기를 저하시킨 원인은 배윤정 본인이 제공했다. 사진|방송 갈무리


이밖에도 시작 전부터 많은 지적을 당했던 참가자별 분량의 차별이라든가, 감동을 강요하는 수준의 뻔하고 작의적인 장면들, 유치한 라이벌 설정 등 단 2회의 방송만으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끝이 없다.

순간순간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만큼 막장으로 진행 중인 ‘프로듀스101’에서 그나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심사위원들이 ‘낙제’를 선고한 ‘F클래스’ 참가자들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것인가 정도뿐이다.

2회 방송분은 그나마 F클래스가 살렸다. 사진|방송 갈무리


아닌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방송에서는 오히려 ‘F클래스’에 소녀들의 꿈과 노력, 우정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으며, 연습과 실전을 통해 밑바닥에서 정상을 향해가는 스토리까지 담겨있다.

만약 이것마저 제작진이 의도한 것이었다면 그 천재성과 치밀함에 칭찬을 보낼만하다. 다만 프로그램의 제목은 ‘프로듀스 F’정도로 바꿔야겠지만 말이다.

중소기획사에게 자사의 연습생들을 알릴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지금까지의 ‘프로듀스101’은 밤을 새워 흘린 참가자들의 땀과 노력만 아까운 상황이다.

이대로라면 F등급을 받아야 할 대상은 참가자가 아니라 프로그램 그 자체다.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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