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모두투어 TRAVEL MAGAZINE GO ON
몰타섬의 처케와Cirkewwa항구에서 카페리를 타고 고조섬 임자르Mgarr항구로 이동하는 데에는 30분이라는 짤막한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눈앞에 펼쳐진 지중해 극장의 영화 ‘더 블루’를 감상하는데 모든 것을 집중시킨다. 드디어 진짜 바다로 나가 지중해를 만나는 파란 시간들.
고조는 몰타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개의 섬 중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며 몰타섬이 문화적, 상업적, 행정적인 중심의 역할을 하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전원적이며 소박한 풍경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본섬에 있는 부유한 말티즈들은 주말이면 어김없이 고조섬으로 향한다. 그래서 고조섬에는 고급스러운 주말 별장이 많다고 한다. 바다로 나간 페리에서는 몰타섬과 고조섬 중간에 있는 코미노Kemmuna 섬도 가까이 보인다.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산다는 이 작은 섬에는 의외로 호텔이 하나 있다. 극도로 한적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과 특색 있는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들은 이곳까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준비해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또 신혼의 첫날밤을 보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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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 Pinu, 소원을 들어주는 성당, 타피누
고조섬에 도착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타피누 성당이었다. 몰타를 여행하다 보면 많은 성당을 가게 되는 까닭에 조금 지루한 느낌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 성당들이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걸작들에 속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이 홀로 서있는 타피누 성당은 1883년에 세워졌다. 당시 밭을 갈던 한 여인이 성모 마리아의 ‘기도하라’는 음성을 들은 후 근처의 예배당으로 달려가 어머니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고 이후 실제로 어머니의 병이 완쾌되어 이 후 이 예배당 자리에 타피누 성당이 세워졌다.
소원을 들어주는 성당으로 유명해진 탓인지 아직도 소원을 빌러 전 세계에서 많은 신자들이 찾는 곳이 되었으며 최장기간 즉위한 교황으로 유명한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기도 했다. 성당 내부에 그동안 이곳에서 기도를 하고 소원을 성취한 이들이 보내온 편지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들었지만 마침 미사를 드리고 있는 신자들 사이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누가 되는 것 같아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소원을 비는 대신 지금 이곳 몰타에 와 있음을 감사 드렸다. 그것은 가장 솔직하고 현실적인 기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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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ure Window, 바다와 바람이 디자인하다, 아주르 윈도우
고조섬의 하이라이트이자 몰타를 대표하는 사진들 중 항상 앞 선에 등장하는 아주르 윈도우. 아주르 윈도우는 ‘푸른 창문’이라는 뜻이다. 몰타에서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발레타의 성 요한 성당을 가야하듯이, 고조에서도 같은 상황이라면 이곳은 성 요한 성당과 거의 동급이다. 아주르 윈도우는 고조섬 드웨라 베이Dwejra Bay지역에 있는 몰타 특유의 라임스톤 석회암과 지중해의 바람이 만들어 낸, 마치 두 개의 바위를 연결하듯이 이은 천연 바위로 향후 50년이 넘지 않는 머지않은 시기에 판이 떨어져 나간다고 하여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포인트로 알려진 곳이다. 바다 쪽으로 나있는 아주르 윈도우의 모습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마치 세상과 바다를 이어주는 마법의 입구처럼 거대한 홀은 압도적인 모습으로 하나의 신전처럼 서 있었다. 바람과 파도가 잔잔한 날이면 사람들은 이곳 주변에서 일광욕을 즐긴다거나 수영복을 입고 낮은 바다로 뛰어들곤 한다. 바람에 나부끼는 책장을 넘기며 책을 보는 사람, 하얀색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절벽 끝에서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 그리고 그저 나란히 바위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들. 모두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또 그런 시간들. 아주르 윈도우가 사라져도 이 바다는 이대로 남겠지만, 푸른 창문을 보기 위한 시간은 분명히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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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ypso & Sunset, 칼립소 동굴과 선셋
칼립소 동굴은 호머의 시에 나오는 요정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7년 동안이나 이곳에 가두었다는 전설이 스며있는 곳이다. 그러나 바다 쪽의 절벽에 있는 동굴은 현재 위험한 지형 때문에 폐쇄되어 있다. 동굴 앞으로 나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몰타의 바다는 얼핏, 쓸쓸하고 또 광활하다.
바다에 고요한 사막이 있다면 아니, 사막에 고요한 바다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지중해를 일컫는 것임을 이곳에서 확인한다.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마침 해가 지는 때였다. 길가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운 후 무작정 가장 높은 지대로 뛰어 올라갔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으나 지중해의 바람에는 분명히 따스한 온기가 섞여 있었다. 마침, 이곳은 고조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파라다이스 베이와 애플 베이가 나뉘는 지점. 아쉽게도 구름이 낮게 깔려 태양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곳 몰타의, 고조섬의 끝 절벽에 서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벅찬 시간이었다. 이제 지중해의 거대한 물은 이곳에 내린 빛을 모두 흡수한 후, 이 시간 이후에 검붉은 주단을 바다에 펼쳐 놓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다시 몰타의 물과 몰타의 빛 그리고 몰타의 푸른색은 다시 이곳에 똑같이 나타날 것이다. 마치,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정리=동아닷컴 고영준 기자 hotbas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취재협조·사진=모두투어 TRAVEL MAGAZINE GO 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