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철감독이 흘린 ‘넘버원의 눈물’

입력 2016-02-2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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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기업은행이 27일 화성종합스포츠타운에서 열린 현대건설과의 홈경기에서 승리하며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통산 3번째 정규리그 우승, 4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 진출에 성공한 IBK기업은행 선수단이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제공|IBK기업은행 배구단

■ IBK기업은행, 창단 5시즌 만에 통산 3번째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

국대차출 후유증에 시즌 초 조직력 흔들
김희진·맥마혼 등 부상자 많아 마음고생
“요행은 없다. 모자라는 것은 훈련” 독려
현대건설전 선수들의 불꽃투혼에 눈물

IBK기업은행이 ‘NH농협 2015∼2016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7일 화성종합스포츠타운에서 벌어진 2위 현대건설과의 홈경기에서 2명의 주전선수 맥마혼과 김희진이 빠졌지만 풀세트 접전 끝에 3-2(25-18 14-25 18-25 25-13 15-10)로 이겨 19승9패, 승점 56으로 남은 인삼공사전, GS칼텍스전 결과에 관계없이 정규리그 1위를 확정했다. 창단 후 5년 사이에 통산 3번째 정규리그 우승이다.

IBK기업은행은 이로써 4시즌 연속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며 여자프로배구의 최강자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평소 칭찬에 인색하고 강인한 이미지인 이정철(사진) IBK기업은행 감독은 우승 확정 직후 눈물을 흘렸다. 이례적이었다. 그만큼 우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어느 때보다 힘들었다는 의미다.


● 시작은 미미했던 2015∼2016시즌의 IBK기업은행

개막을 앞둔 미디어데이에서 모든 감독은 IBK기업은행을 우승 후보로 지목했다. 트라이아웃으로 외국인선수를 선발한 첫 시즌. 승패의 중요한 변수였던 외국인선수의 비중이 줄어들어 국내선수들의 역량이 어느 시즌보다도 중요했다. 김희진-박정아 공격 듀오가 건재하고, 김사니-남지연의 중심축이 튼튼한 것이 반영된 예상이었다.

트라이아웃에서 구슬의 행운도 잡았다. 5순위에서 공격 파워를 갖춘 맥마혼을 뽑았다. 당초 이정철 감독은 김희진을 라이트로 돌리고 레프트 또는 센터에서 필요한 선수를 찾았지만, 맥마혼이 남아있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 스포츠동아DB


이 감독과 많은 선수들이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된 후유증 탓인지 시즌 초반에는 흔들렸다. 첫 홈경기에서 GS칼텍스에 0-3으로 완패했다. 맥마혼은 부담감에 얼굴이 하얗게 떠있었다. 그동안 팀의 강점이던 탄탄한 리시브와 수비에서 공백이 눈에 띄었다. 4시즌째 최소범실을 자랑하던 조직력도 흔들렸다.

대표선수들이 실전 경험은 있지만 시즌을 위한 기초공사를 하지 못한 것이 경기에 드러났다. 1라운드 내내 부진했다. 2승3패로 주저앉았다. 이 감독은 박정아와 김희진이 기대에 못 미치자 포지션 전환을 통한 해법을 찾았다. 2라운드 3승2패로 간신히 5할 승률을 채웠지만, 여전히 갈 길은 험난했다. 현대건설은 멀찌감치 달아났다.


김사니·남지연 ‘베테랑 투혼’


● 서로에게 관대하지 않은 팀 문화가 땀의 가치를 극대화하다!

IBK기업은행은 여자구단 가운데 가장 훈련이 많은 팀이다. “세상에 요행은 없다. 모자라는 것은 훈련을 통해 조금씩 채우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는 이정철 감독은 새 훈련장에서 더 많은 땀을 흘렸다. 새 숙소로 이사한 날에도 훈련시간을 빼먹지 않았다. 선수들은 따랐다.

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팀을 이끄는 정신과 문화다. 창단 감독이 다져놓은 팀 분위기가 위기에서 긍정적 방향으로 나왔다. 김사니, 남지연 등 베테랑이 중심을 잡았다. 선수들은 훈련 때 서로를 격려했지만 관대하지 않았다. 각자가 반드시 이뤄야 하는 목표를 위해 서로를 채찍질했다.

이 감독은 “오늘 경기에서 지고, 다음에 잘하자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지금 당장 힘들어도 이 훈련을 해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며 선수들을 채근했다. 무릎에 물이 차시즌 초반 힘들어했던 김사니가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다. 높이와 파워 외에는 장점이 두드러지지 않던 맥마혼을 팀에 맞는 선수로 특화시켰다. 남지연은 빼어난 예측 센스로 공을 걷어 올렸다. 3라운드 4승1패로 반전에 성공했다. 4라운드부터 12연승을 달리며 마침내 1위까지 치고 나갔다.


● 김희진-맥마혼의 부상, 들판에서 소나기가 오면 맞아야 한다!

이정철 감독은 올 시즌 유난히 선수들의 부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5라운드 도중김희진이 부상을 당했다. 결단을 내렸다. 정규리그 1위를 포기하더라도 치료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김희진의 공백은 컸지만 모든 선수들이 헌신하며 간신히 메워나갔다. 악전고투 속에서 맞이한 6라운드. 중요한 고비에서 맥마혼마저 부상을 당했다. 이감독은 “들판에서 소나기가 오면 맞을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IBK기업은행은 누가 없다고 해서, 누가 있다고 해서 지고 이기는 팀이 아니었다. 27일 현대건설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의지는 빛났다. 김사니는 ‘오늘 이 경기를 반드시 이긴다’는 투지를 세트로 보여줬다. 왜 많은 배구인들이 “역시 김사니”라고 하는지를 입증했다. 남지연은 몸을 날려가며 실점을 막고 후배들을 독려했다. 두 베테랑의 의지와 선수들의 열의를 본 이 감독의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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