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설행’ 김태훈, 실수마저도 연기가 되는 천생 배우

입력 2016-03-03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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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새로운 작품에서 완전히 다른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우리는 ‘연기변신’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하지만 여기 ‘연기변신’이 지겨운(?) 연기자가 있다. 배우 김태훈이다.

김태훈은 탄탄한 연기 내공으로 극의 이끌어가는 대표적 신스틸러 배우다. ‘나쁜 녀석들’과 ‘앵그리 맘’에서는 소름끼치는 악역을, ‘신분을 숨겨라’에서는 선한 역할을, 그리고 ‘일말의 순정’에서는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철없는 선생님 캐릭터를 연기했다. ‘배우’라는 타이틀이 이렇게 잘 어울릴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던 그가 영화 ‘설행_눈길을 걷다’에서는 알코올중독자 정우를 연기한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설행’은 특히 애정이 가는 작품이에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예술영화지만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영화이길 바라고 또 충분히 그럴 만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설행’ 촬영은 한 달여 동안 전남 나주에서 진행됐다. 김태훈은 TV도 없는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방에 머물며 자신만의 외로움을 쌓아갔다. 촬영이 없는 날에는 혼자 숙소에 머물며 우울한 감정들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온전히 정우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손만 떨면서 알코올중독 흉내만 내고 이런 건 재미없어요. 그 인물이 갖고 있는 외로움과 고통을 영화 끝까지 전달하고 싶었죠. 그런 감정들이 제 안에 쌓이면서 외적인 표현으로 살짝 묻어 나오길 바랐어요.”

김태훈은 이번 영화에서 ‘충무로 샛별’ 박소담, ‘응답하라 1988’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최무성과 호흡을 맞췄다. 그는 먼저 박소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담이는 굉장히 깡이 있고 똑똑하고 매력적인 친구예요. ‘검은 사제들’ 전에 함께 ‘설행’을 찍으면서 그런 느낌을 충분히 받았죠. 이미 본인이 갖고 있는 것들이 충분히 좋았던 배우였어요. 영화 촬영 중에 ‘검은 사제들’ 이야기를 했었는데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죠. 영화 보고 난 뒤 소담이에게 ‘고생했겠다 캐릭터 만들어 내는 데 많이 힘들었겠다’라고 문자 남겼어요. 연기는 뭐,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죠.”

이어 최무성에 대해 “따뜻하고 좋은 형”이라고 표현한 김태훈은 자연스레 ‘응팔’ 촬영 당시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응팔’은 아시다시피 대본도 오픈 되지 않고 저도 제 분량만 받아서 가서 촬영했어요. 전 사실 악역도 많이 하고 해서 신나게 까부는 역할을 생각하고 갔죠. 예전에 찍었던 시트콤 ‘일말의 순정’을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대본을 받았는데 너무나 진지한 드라마에 처음에는 악역처럼 나오기도 해서 당황했어요”라며 “병원 신 촬영을 마치고 (최)무성 형과 만났는데 ‘어… 여기 웬일이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저 의사역할 하게 됐어요’ 했더니 ‘어 그렇구나… 어어’하시는데 감히 제 느낌을 말하자면 굉장히 반가워하신다는 느낌이었어요. 좋은 선배님이자 형이고 말이 많이 필요 없을 정도의 사이에요”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김태훈은 ‘설행’ 촬영 당시 에피소드를 먼저 털어놓기도 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역시 그는 천생 배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연기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는 평범한 아이었고 수능 추가모집으로 얼결에 연영과를 붙어 입학하게 된 아이. 어린 마음에 연영과 다니면 폼 좀 날 것 같았고 술 사주는 선배들이 쫓아다녀서 연기를 시작했다는 김태훈은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진짜 배우’가 되어있었다.

“촬영 첫날에 외투 안에 단추 세 개가 달린 티셔츠를 입었어요. 촬영 끝나고 모니터하는데 마지막 단추를 안 잠궜다는 것을 발견했죠. 다시 찍을 순 없고 스태프들이랑 고민을 했어요. 완전히 실수였고 분명 다음날 다시 단추를 채웠을 수도 있었죠. 근데 저는 그게 정우만의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알코올중독자고 옷도 안 갈아입는 인물이니 마지막 단추를 안 채운 게 왠지 정우답다는 느낌? 그래서 촬영 끝날 때까지 일부러 안 채웠어요. 일년 전 기억인데도 새록새록하네요.”


하지만 베테랑 배우 김태훈에게도 연기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고민도, 배우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도 평생 그가 안고가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작년에 악역을 많이 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굳혀질까 우려가 있었어요. 좋은 작품을 하는 것은 좋지만 다작을 하는 것에 대한 우려는 항상 있죠. 아직도 어떤 식으로 나아가고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제가 믿고 이야기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작품 속 인물이 되려고만 노력했다면 이제는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래서 ‘설행’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어요. 대단한 욕심을 부리는 것은 아니지만 진심을 다한 작품이 관객들과 소통된다면 제가 더 힘이 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냐’는 질문에 김태훈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렇게 답했다. 참으로 소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답이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공감해주시는 영화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싶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 혼란스럽지만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오래오래 연기를 하고 싶어요.”

동아닷컴 김미혜 기자 roseli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주)인디플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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