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포체티노 감독(왼쪽)과 아스널 웽거 감독(오른쪽)이 하프라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선수들의 플레이를 지켜보고 있다. 스포츠동아DB
100년 넘게 이어진 북런던 축구라이벌 두팀
뿌리 깊은 만큼 90분내내 그라운드의 혈투
우승 향한 길목에 서로 만족하지 못한 결과
토트넘-아스널의 ‘북런던 더비’ 치열했던 현장에서 본 2-2 무승부, 그리고…
축구팬이라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경기가 있다고 한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도르트문트의 ‘데어 클라시커’ 등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도 빼놓을 수 없는 라이벌전이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리버풀의 ‘레즈 더비’, 리버풀-에버턴의 ‘머지사이드 더비’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만한 상품이 있을까. 토트넘-아스널의 ‘북런던 더비’다. 같은 지역에 공존하며(실은 마지못해 함께 하며) 안 그래도 항상 특별했고, 대단한 이 경기가 2015∼2016시즌 의미가 한층 커졌다. 두 팀이 프리미어리그 우승 경쟁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100년 넘게 자웅을 겨뤄온 두 팀의 183번째 더비이자, 올 정규리그 29라운드 경기가 5일(한국시간) 토트넘의 홈구장인 런던 화이트하트레인에서 펼쳐졌다. 뿌리 깊은 라이벌 의식과 적대감으로 가득 찬 초록 그라운드와 장외에서 동시에 펼쳐진 90분 전쟁의 현장을 직접 찾았다.
● 양보 없는 전쟁, 끝은 없다!
항상 혈전을 벌여온 두 팀이지만 성과 면에선 아스널이 단연 앞선다. 아스널이 프리미어리그 출범(1992년) 이후 3차례 정상을 밟는 동안, 토트넘은 한번도 웃지 못했다. 유구한 전통과 역사를 지녔음에도 우승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토트넘의 정규리그 우승은 풋볼리그 챔피언십(프리미어리그 전신) 시절인 1950∼1951시즌과 1960∼1961시즌 등 2차례뿐이다. 2000년대 이후 전 대회를 통틀어 토트넘의 우승은 2007∼2008시즌 리그컵이 유일하다.
반면 아스널은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해 통산 13차례 1부리그에서 우승했고, FA컵도 12회나 평정했다. 특히 2003∼2004시즌 무패의 전적으로 정상에 오른 아스널이 우승을 확정한 장소마저 화이트하트레인이었으니, 토트넘의 상실감은 실로 대단했다.
12년만의 정상 탈환, 55년만의 우승 도전. 올 시즌 두 팀을 관통한 핵심 키워드다. 28라운드까지 토트넘이 2위(15승9무4패·승점 54), 아스널이 3위(15승6무7패·승점 51)에 랭크돼 1위 레스터시티를 추격하고 있었다. 1경기면 2∼3위는 물론 1위까지 뒤바뀔 수 있는 상황. 두 팀은 28라운드에서 나란히 패했다. 토트넘은 웨스트햄 원정에서, 아스널은 스완지에게 홈에서 무릎을 꿇었다. 다만 분위기는 달랐다. 토트넘은 6연승 행진이 종료됐을 뿐이지만, 아스널은 3연패였다.
아스널 아센 웽거 감독을 향한 비판도 대단했다. 추구하는 전략과 팀 컬러는 명확한데, 지나치게 이상적이기에 결정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평가였다. 잘 나가다가 2∼3월만 되면 무너지는 징크스가 또 반복되자, 현지 언론과 팬들이 폭발했다. ‘웽거 아웃’이란 플래카드를 든 아스널 팬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아스널은 체흐, 코시엘니 등 핵심 전력 2명을 부상으로 잃은 상태에서 토트넘 원정에 임했다.
● 누구도 웃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토트넘이 가장 바란, 아스널이 가장 우려한 순간이 닥쳤다. 아스널이 1-0으로 앞선 후반 10분 중앙 미드필더 코클랭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것. 기세가 오른 토트넘은 5분 뒤 알더베이럴트가 동점골을 뽑았고, 후반 17분 해리 케인이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후반 30분 아스널 산체스의 골로 2-2가 됐다. 경기 종료 10여분을 남기고 손흥민을 투입한 토트넘은 재역전을 꿈꿨으나 결국 실패했다.
토트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굉장히 실망스럽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고, 웽거 감독은 “우승경쟁을 포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말로 희망을 이어갔다. 믹스트존 풍경 역시 다르지 않았다. 죽다 살아난 아스널 멤버들은 인터뷰에 나름 적극적으로 임했지만, 손흥민을 비롯한 대부분의 토트넘 선수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직후 경기에서 레스터시티가 왓포드 원정을 2-1로 승리로 마무리하며 격차를 더 벌려놓았으니, 결과적으로 아스널과 토트넘 모두 웃지 못한 하루였다.
런던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