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정현욱, 꽃이 아니라 당신이 와서 봄입니다

입력 2016-04-2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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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을 이기고 돌아온 LG 정현욱은 요즘 마운드에서 하루하루 드라마를 써내려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한때 대식가였고 밥먹듯 던진 ‘국민노예’
팔꿈치·위암 수술 극복하고 ‘오뚝이처럼’


“곳간이 비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식비가 많이 드니 둘 중 하나는 트레이드해야겠습니다.”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구단 내부에서 이런 우스갯소리까지 돌았을까. 정현욱(38·LG). 1996년 삼성에 입단한 뒤 동기인 이계성(현 KBO 심판위원)과 함께 한때 ‘경산의 하이에나’로 불렸다. 2군 숙소인 경산볼파크 식당의 남은 음식까지 모두 해치우는 식성 때문에 붙은 별명이었다.

하루는 저녁식사를 끝내고 돌아서자마자 허기를 느꼈는지, 둘은 인근 식당가로 가 감자탕 대(大)자 냄비를 비웠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오는 이들의 손에는 사이좋게 큰 비닐봉지가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본 구단관계자는 나자빠졌다. 빵이 한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밤에 출출할 때 먹으려고요.”

그렇게 ‘밥심’으로 던지던 시절이 있었다. 거칠었지만 ‘불같은 강속구’가 매력적이었고, 투박했지만 호출하면 마운드에 오르는 스태미나가 장점이었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자리 잡은 ‘삼성의 마당쇠’.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국민노예’로 야구인생의 꽃을 피웠다.

2012년 말 FA(프리에이전트)로 LG와 4년간 28억원에 계약하면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몸소 실천했고, 2013년 줄기차게 마운드에 올랐다. 54경기에나 등판한 그의 헌신 속에 LG는 암흑기를 청산하고 11년 만에 가을잔치 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2014년 7월 8일 잠실 두산전을 마지막으로 1군 마운드를 떠나야만 했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했다. 그리고 더 큰 인생의 불청객과 마주서야했다. 위암선고였다.

“저는 애써 담담하려고 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더 충격을 받았나 봐요. 특히 무명시절 만나 6년 동안 제 곁을 지켜주면서 결혼까지 해준 아내가 많이 울었어요.”

다행스러운 건 암을 초기에 발견했다는 점. 그러나 불행스러운 건 고약하게도 암세포가 위의 상단에 붙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암세포 아래는 다 잘라내야 하는 위암수술의 특성상 ‘전(全) 절제’를 해야만 했다. 위를 모두 들어내고, 식도와 소장을 이어 붙였다.

“암 수술을 받고 나니 생과 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사는 건 뭔지, 죽는 건 뭔지…. 커 가는 애들 때문에 절망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이제 초등학교 4학년 딸과 2학년인 아들은 아직 아빠가 위암수술 받은 줄 모르고 있지만요.”

암투병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동 트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는 격언처럼 시련의 시기가 지나면 희망의 아침이 올 것이라 믿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겨냈다.

그리고는 3월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시범경기 두산전에 팬들 앞에 다시 섰다. 과거 시도 때도 없이 올랐던 마운드였지만, 가슴은 벅차올랐다. 그가 병마를 이기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팬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천에 내려가 다시 준비를 해오던 그는 15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1군에 호출됐다. 14-1로 크게 앞선 6회말 2사후 등판해 3.1이닝 3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같은 위암 수술을 받고 돌아온 한화 정현석과의 정면승부는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임무를 마치고 들어오는 그에게 후배 우규민이 허리 숙여 경의를 표했던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1043일(2013년 6월 7일 잠실 롯데전 이후)만에 기록된 세이브는 인생의 후반전을 출발하는 그에게 주는 축복의 선물이었다.

“한때는 대식가였는데, 이젠 소식가가 됐어요. 조금씩 자주 챙겨 먹어야 합니다. 제 가방 안에는 늘 바나나며, 사과며, 토마토가 들어있어요. 아내가 매일 챙겨주고 있거든요.”

웃는 얼굴이 많이 야위었다. 건장했던 체격과 탄탄했던 하체는 몸무게가 20kg이나 빠진 탓에 유니폼 바지가 펄렁거릴 정도로 말랐다. 불같은 강속구는 사라졌지만, 19일과 21일 잠실 NC전에서 녹슬지 않은 관록투로 무실점 역투를 펼쳤다.

주무기인 낙차 큰 커브처럼 ‘국민노예’의 인생도 굴곡졌다. 그러나 파도가 있어야 바다고, 굴곡이 있어야 인생이다. 차디찬 겨울을 견뎌낸 뒤 봄바람처럼 우리 곁에 온 정현욱은 ‘밥 먹듯’ 올랐던 그 ‘꿈의 언덕’ 마운드에 다시 서서 희망을 던지고 있다. 우리에겐, 꽃이 피어서가 아니라 당신이 와서 봄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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