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베이스볼] ‘소리없이 강한’ 롯데 레일리 “레형광? 큰 영광”

입력 2016-05-2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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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레일리. 스포츠동아DB

KBO리그 2년차에 정상급 투수 발돋움
“상대가 누구든 긴 이닝 소화에 온힘”
“가족 모두 부산 생활을 즐기고 있다”


‘조쉬 린드블럼(29)과 브룩스 레일리(28)는 롯데 선발 원투펀치다.’ 의심 없이 써왔던 문장의 순서를 잠시 바꿔도 될 것 같다. ‘레일리와 린드블럼은 롯데의 선발 원투펀치’라고. 린드블럼도 짧은 슬럼프를 딛고 특급투수의 위력을 찾아가고 있지만, 레일리의 성적이 워낙 발군이다. 23일까지 9경기에 등판해 58.1이닝(6위), 방어율 2.78(3위)이다. 퀄리티스타트는 7번(2위)에 달하고, 이닝당 출루허용(WHIP)은 1.29(9위)다.

레일리의 연봉은 63만 달러다. 지난해 45만 달러를 받았는데 179.1이닝을 던지며 11승(9패)을 거둔 뒤 롯데와 재계약했다. 연봉 200만 달러 외국인선수가 등장하는 시대에 아주 높은 금액이랄 수 없지만 비용 대비 효율성은 최상급이다. 어느덧 KBO리그 최강의 외국인 좌완투수로 떠오른 레일리를 21일 사직구장에서 만났다.


승리보다 소중한 투구이닝


-지금까지 올 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린드블럼(3승5패 방어율 5.27, 51탈삼진)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롯데 에이스라고 불러도 될 거 같은데?

“마운드에서 공을 잘 던지는 것이 나의 전부다. 에이스라는 호칭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직구구속이 올라갔고, 공끝이 더 살아 움직인다는 평가들이 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가?

“직구구속이 특별히 좋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올해도 지난해와 똑같이 하려고 한다. 투구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니까, 그러다보니 다 잘되고 있는 것 같다.”


-투구 내용에 비해 승운(4승4패)이 잘 따르지 않는다.


“투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선발투수로서 이닝을 길게 끌고 가서 팀이 승리할 확률을 높여주는 것이다. 오래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오래 버티면 승리는 따라온다. 그러니까 승운은 중요하지 않다.”


-1위 팀 두산에 특히 강한(통산 4전 4승, 방어율 0.31) 비결은?

“상대팀이 1위든 10위든 상관없다. 어디든 내가 상대해서 질 수도, 이길 수도 있다. 내 투구가 잘되어서 그런 것이지 특별한 비결은 없다.”


-이제 KBO리그 2년차인데 갈수록 위력을 더하고 있다.

“지난해 경험이 있어서 타자들의 습성을 더 많이 알게 됐다.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서 타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투수의 할일인데 그런 것이 올해 잘됐다. 볼넷이 최근 많아져서 불만족스럽지만 더블플레이(7개·전체 4위)를 많이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좋았다.”


-땅볼 아웃이 많다.

“원래부터 땅볼유도형 투수다. KBO리그에 와서 스트라이크존 등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삼진보다 땅볼(땅볼아웃 67개·전체 6위, 땅볼:뜬공 비율 1.40개·전체 9위)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을 더 가치 있게 느낀다.”


20대에 한국행을 선택한 덕분에 얻은 행복


-어떻게 야구를 시작하게 됐나?

“4∼5살 때 티볼을 시작하며 야구를 했다. 대학까지 투수를 하면서 1루수나 외야수를 병행했는데 프로 드래프트를 받고나서 투수에만 집중했다. 아버지가 마이너리그 선수였다. 형도 야구선수인 야구가족이다. 야수로 시작했지만 투수에 자질이 있어서 투수로 갔다.”


-20대 나이에 한국이라는 낯선 곳으로 왔다. 메이저리그에 계속 도전할 수 있었을 텐데?

“한국으로 오기 2년 전까지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왔다 갔다 하는 삶이었다. 고정적으로 던질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었다. 그럴 때 바다 건너 한국에서 야구할 기회가 생겼다. 한국에서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와보니까 한국 생활이 어떤가?

“야구장 바깥에서 지내는 시간이 참 좋다. 강아지도 최근 입양해서 키운다. 가족들도 부산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이 아직도 적응 안 되는 부분이 있나?

“야구단에서 회식을 하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생전 처음 본 메뉴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꼬리곰탕 같은 것.(웃음) 된장도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도저히 못 먹을 음식인 줄 알았는데 이제 적응이 되어서 찾아 먹는다.(웃음)”


-린드블럼, 짐 아두치와 2년째 같이 뛰고 있다.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 면이 적지 않을 듯싶다.

“아두치랑 미국에 있을 때, 같은 팀에서 뛴 적이 있다. 그래서 아두치가 어떻게 해야 야구를 잘할 수 있는지를 안다. 처음 롯데에 와서 셋이 만났을 때, 셋 다 잘해서 계속 같이 보자고 다짐했었다. 같은 공간에 있으니까 서로의 플레이를 봐주며 서로 조언을 해주고 있다.”


-린드블럼이 시즌 초반 잠깐 슬럼프였을 때 어떤 조언을 해줬나?

“내가 볼 때, 린드블럼의 직구와 변화구 구위는 전혀 이상이 없다. 너무 잘 던지려다 보니까 잠시 그렇게 된 거 같다. 내색 안하고 지켜봐주면 다시 올라올 줄 알았는데 역시 지금 잘하고 있다.”


● ‘레형광’ 애칭, 놀랍고 고마울 따름


-승부근성이 강한 것으로 아는데 마운드에서 마인드컨트롤이 잘되는 것 같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집중하려는 표정을 보여주려 하는데 속으론 즐기고 있다. 작년보다 올해 선발로 나가는 것이 더 즐겁다. 선발로서 많은 이닝을 던지지 못하고, 교체돼서 투수코치에게 공을 건네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많은 이닝 던지는 게 나의 거의 유일한 목표다.”


-야수의 실책이나 불펜투수의 실점이 나올 때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나?

“야수의 실책, 불펜투수의 실점으로 나의 승리가 날아가는 것도 야구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내 뒤에 있는 야수들, 내 앞에 있는 포수를 믿어야 한다. 우리 팀에서 가장 좋은 선수들이니까 거기 서 있는 것이다. 내가 1경기 5실점을 할 수도, 홈런을 맞을 수도 있다. 직전 등판(5월19일 SK전)에서 윤길현이 홈런을 맞았지만 다시 그 상황이 와도 나를 받쳐주길 바란다. 우리팀 선수들을 믿는다.”


-최근 ‘웰컴 투 사직’ 티셔츠 사진이 화제였다.

“지난 시즌이 끝나고, 사직구장 홈런을 기념해서 아두치가 만든 것이다. 티셔츠가 1장 남는 것이 있어서 내가 가졌다.(웃음)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투수인) 내가 (홈런을 상징하는) 로켓을 거기다 그려 넣을 리가 있겠나?(웃음)”


-롯데 팬들은 올 시즌 후 레일리가 미국이나 일본으로 갈까 걱정한다.

“지금은 그런 말하기 이른 시기다. 첫째 목표는 롯데의 가을야구다. 만약 일본리그나 메이저리그를 간다면 그쪽에서 굉장히 좋은 기회가 생겼을 때일 것이다. 지금은 올 시즌을 열심히 던지는 것이 큰 목표다.”


-이 페이스라면 굉장히 좋은 성적이 나올 것 같다.

“투수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은 목표로 만들지 않는다. 가령 퀄리티스타트나 승패 목표는 만들지 않는다. 과거보다 오늘, 더 좋은 투구내용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다.”


-롯데 팬들이 린드블럼은 린동원(린드블럼+최동원의 합성어). 레일리는 레형광(레일리+주형광)이라 부른다.

“팬들이 나를 그렇게 불러주는지 몰랐다. 주형광 투수코치는 정말 훌륭한 투수로 알고 있는데 나에게 이런 애칭을 지어준 것을 듣고 정말 놀랐고,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마운드에서 무슨 생각으로 몰입하나?

“투수가 공을 던져야 야구가 시작된다. 내가 던질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타자가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수인 내가 타자를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 롯데 브룩스 레일리는?

▲생년월일=
1988년 6월29일
▲신장·몸무게=
190cm·84kg
▲롯데 입단=
2015년 계약금 5만 달러·연봉 45만 달러
▲2016년 연봉=
63만 달러
▲2015년 성적=
31경기 179.1이닝 11승9패 방어율 3.91
▲2016년 성적=
9경기 58.1이닝 4승4패 방어율 2.78 (23일 현재)

사직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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