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굿모닝 MLB] 57연속경기 안타 실패 뒤 27연속경기 안타…조 디마지오의 위대함

입력 2016-06-1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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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디마지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세미프로서 61연속경기안타 천재성
1941년, 56연속경기 안타 대기록
1943년 세계2차대전 참전 3년 공백
양키스 13시즌 동안 9번이나 챔피언


3년 만에 정상 등극을 노리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방망이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간판스타 데이비드 오티스가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마지막 시즌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무키 베츠∼잰더 보가츠∼잭키 브래들리 주니어로 이어지는 ‘킬러 B’의 활약을 앞세워 9일(한국시간) 현재 341득점을 올리고 있다. 2위인 세인트루이스를 16득점 차로 따돌리고 있는 레드삭스의 경기당 평균 득점은 무려 5.78점이나 된다. 이들 중 보가츠는 타율 0.346으로 아메리칸리그 타격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또한 29연속경기 안타 행진을 펼쳤던 브래들리 주니어도 타율 0.321로 8위에 올라 있다. 이 같은 브래들리 주니어와 보가츠의 활약 덕분에 역대 최다 연속 안타 기록 보유자인 조 디마지오가 얼마나 위대한 타자였는지 팬들의 재조명을 받고 있다.

# 세미프로 61연속경기 안타

디마지오의 위대함을 나타내는 또 다른 숫자는 ‘61’이다. 메이저리그에 입문하기 전 친형 빈스 디마지오가 뛰고 있던 퍼시픽코스트리그(PCL)에서 세미프로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디마지오는 1932년 10월 1일 데뷔전을 치렀다. 사실상 루키 시즌인 이듬 해 3월 27일부터 5월 27일까지 디마지오는 61연속경기 안타 기록을 세웠다. 비록 1919년 조 윌홀트가 수립한 마이너리그 연속 안타 기록(69경기)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의 천재성을 과시하기에 충분했다. 훗날 디마지오는 “당시에는 매일 경기에 출전해 안타를 치는 것이 먹고, 마시고, 자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호사다마일까. 1934년 무릎 인대가 끊어지는 큰 부상을 당해 실의에 빠졌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 팀 뉴욕 양키스에 입단하기로 합의를 했던 터라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러나 그의 입단을 주선했던 빌 에식 스카우트는 양키스 구단에 1년만 더 지켜보자는 설득을 했다. 부상을 털고 다시 일어선 디마지오는 1935년 타율 0.398, 34홈런, 154타점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리그 MVP로 선정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다이너스티 핵심 멤버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베이브 루스를 영입한 양키스는 1923년 창단 후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이후 1927년, 1928년, 1932년에도 정상에 오르며 메이저리그 최강팀의 입지를 굳히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루스가 1935년 팀을 떠난 후 루 게릭과 콤비를 이룰 스타플레이어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디마지오는 팀의 중흥을 이끌 최적임자였다.

양키스는 디마지오가 가세한 1936년부터 4년 연속 패권을 차지했다. 디마지오가 뛴 13시즌 동안 양키스는 무려 9차례나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에 참가를 이유로 디마지오는 1943년부터 3년 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야만 했다. 이 기간 동안 양키스는 1943년에만 우승을 차지했을 뿐 나머지 2년은 그의 공백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가 전쟁에서 복귀한 1947년 통산 15번째 우승을 차지한 양키스는 1949년부터 디마지오의 현역 생활 마지막 시즌인 1951년까지 3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 불멸의 스타

2차 대전 발발 직전인 1941년은 많은 올드 팬들에게 메이저리그의 황금기로 기억되고 있다. 라이벌 레드삭스는 테드 윌리엄스가 4할 타율에 도전하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9월 27일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전에서 4타수 1안타에 그쳐 타율이 0.399로 추락한 윌리엄스는 다음 날 열린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를 치며 0.406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에 앞서 디마지오는 상반기에 56연속경기 안타 행진을 이어가 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7월 1일 홈구장 양키스타디움에 모인 5만2832명의 관중은 디마지오가 1897년 위 윌리 킬러가 수립한 44연속경기 안타 기록과 타이를 이루는 모습을 목격했다. 바로 다음 날 레드삭스 전에서 디마지오는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터뜨려 43년 묵은 기록을 기어코 깨뜨렸다.

연일 팬들의 이목을 독차지하던 디마지오는 마침내 7월 17일 클리블랜드 스타디움에서 57연속경기 안타 기록 수립에 실패했다. 인디언스의 3루수 켄 키트너가 두 차례나 디마지오의 안타성 타구를 환상적인 수비로 막아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부터 디마지오는 27연속경기 안타 행진을 계속했다.

4할 타율과 56경기 연속 안타. 하필이면 두 개의 위대한 기록은 1941년에 함께 수립됐다.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실시된 기자들의 MVP 선택은 디마지오였다.

통산 1736경기에서 2214안타를 친 디마지오는 타율 0.325, 361홈런, 1537타점의 기록을 남기고 그라운드를 떠났다. 은퇴 후 4년 뒤인 1955년 88.84%의 득표를 한 그는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등번호 5번은 뉴욕 양키스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1999년 1월 19일 폐암으로 투병하던 디마지오는 “마침내 아내 마릴린 먼로를 만나러 가게 됐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뉴욕 타임지는 그의 56연속경기 안타 기록에 대해 “아마도 모든 스포츠 기록 중 가장 깨지기 힘든 위대한 기록을 남기고 디마지오가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MBC 스포츠플러스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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