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이 만난 사람] 정길호 대표이사 “초짜 김세진 감독 선임 후일담? 1등 DNA는 달랐다”

입력 2016-09-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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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저축은행 정길호 대표이사가 배구팀의 우승기념 사진이 걸린 서울 남대문 의 회사 로비에서 배구공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아프로서비스 그룹의 브레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회사 이직 6년 만에 대표이사의 자리에 올랐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제2금융권은 요즘 업계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 중이다. 이런 가운데 ‘업계 빅3’가운데 하나인 OK저축은행이 최근 의미 있는 인사를 했다. 오너 최윤 아프로서비스그룹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정길호 신임 대표이사에게 바통을 넘겼다. (주)아프로서비스 그룹에서 가장 최윤 회장의 속내를 잘 이해하는 브레인으로 알려진 그가 전면으로 나섰다. 창단 3년 만에 2번의 우승을 한 OK저축은행 배구단의 단장도 겸임하는 정길호 대표이사와의 인터뷰는 저축은행 영업의 본질과 김세진 배구단 감독과의 인연, 프로야구 진출 등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승진을 축하드린다. 2010년 아프로서비스 그룹에 입사해 6년 만에 대표가 되셨다.

“얼떨떨하다. 조직에 오래 몸담으면 언젠가 계열사의 대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막연히 했지만 이렇게 빨리 될지 몰랐다. 갑자기 인사발령이 났다. 많이 이들이 주시하는 중요한 사업 분야에서 회사를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내가 준비가 돼 있는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


-아프로서비스 그룹의 컨설팅을 하다 최윤 회장과 인연을 맺어서 이직을 했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결심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컨설팅을 10년간 했던 사람으로서 논리적이어야 하는데 이직 결정은 그렇지 못했다. 인연이었다. 36세에 컨설팅에 뛰어들어 동기들과 회사를 만들어 10년을 해왔다. 그러던 차에 2008년 러시앤캐시의 컨설팅을 했고 그 인연으로 영입제의를 받았다. 2009년 12월이었는데 그 날이 컨설팅 한지 10년째로 파트너 누군가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나와야겠다는 생각에 사표를 쓰고 있던 차였다. 최윤 회장을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기업운영 철학과 꿈을 듣고 그날로 마음을 결정했다.”


-은행에서 시작해 컨설턴트를 거쳐 제2 금융권, 대부업체라는 주위의 시선을 받던 회사로 이직을 결정하신 이유는.

“처음 최 회장께서 ‘조직을 키우고 있는데 인사를 맡아달라. 마케팅과 영업은 자신이 있는데 조직관리를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그날 최 회장의 꿈을 들었다. ‘소비자금융이 재미있다. 앞으로 소비자 금융의 정점인 카드사를 인수하려고 한다’면서 비전을 보여주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필요하겠구나. 잘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사흘 뒤 전화를 했다. 이제 와서 얘기지만 회사를 옮기면서 연봉도 많이 깎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조건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


-대표 취임 이후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소 상공인을 찾아가는 영업으로 1등을 하겠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신다면.

“우리는 서비스 기업이다. 저축은행에는 은행이름이 붙지만 스스로 찾아오는 고객은 사실상 없다. 타깃은 비우량 고객인데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은행처럼 영업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자가 싼 것도 아니다. 말이 소비자금융이지만 소비자금융의 기반이 약하다. 그래서 고객을 찾아가야 한다. 발로 찾아가는 영업이 기본이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우리가 가진 서비스를 설명하고 영업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전문성과 효율성 수익성을 모두 갖춰야 하고 관계형 관리까지 해야 한다.”

정길호 대표이사.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굉장히 이상적인 얘기처럼 들리는데.

“저축은행 고객은 모두 리스크가 있다. 그렇지만 고객의 모든 것을 알면 리스크는 사라진다.

예를 들어서 공사현장에 대출을 해줬다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현장을 계속 찾아가 문제가 없는지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 고객이 되려고 하는 슈퍼마켓 주인의 집안사정이 어떻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일일이 알면 리스크는 사라진다. 우리는 심사 리스크보다 이런 사후관리가 더 중요하다. 최근 24개의 우리 지점을 5개 권역으로 나눴다. 각 권역별로 중심이 되는 허브영업점은 기업금융 전문가가 배치 돼 기업금융을 전담하고 나머지 권역 내의 소영업점은 발로 뛰는 영업을 한다. 그동안은 각 영업점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경쟁했지만 이제는 각 영업점마다 서로 다른 영업방식과 목표를 분리하는 것이 새 시스템의 목표다.”


-금융회사는 자산의 건전성과 규모라는 다른 길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정 대표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결국 금융의 바탕은 신뢰다.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서 재무컨설팅을 하고 금융비용을 줄이는 방법까지 알려줘야 신뢰가 쌓인다. 지난 2년간은 회사의 생존을 위해 규모를 키우는 노력을 했지만 3년째 접어드는 내년부터는 양과 질에서 최고의 고객서비스를 하는 회사가 목표다.”


-스포츠로 화제를 돌려보겠다. 예전 고려증권은 배구 잘하는 회사라는 광고를 할 정도로 회사 영업에 배구가 큰 역할을 했다. OK저축은행은 창단 2년 만에 우승하면서 화제가 됐는데 영업에는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솔직히 영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 고객의 특성상 스포츠 팀의 존재여부가 실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회사와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졌다. 사람들이 우리를 알아간다는 것, 우리를 이해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면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런 면에서 감사한다. 비용대비 효율성으로 보자면 스포츠단의 운영은 사회공헌에 가깝다. 하지만 내부직원들을 통합하고 구심점이 되는 역할로서는 성공적이다. 모든 직원이 OK저축은행 배구단을 중심으로 하나가 됐다. 그런 면에서는 성공적이다.”


-네이밍스폰서로 출발해 배구단을 창단했다. 스포츠 M&A 역사상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인데 혹시 기회가 되면 프로야구로 밟을 넓힐 의사도 있는지.

“몇 년 전 기회가 있었지만 주위의 충고를 받고 포기했다. 국민스포츠인 프로야구 인수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과연 우리가 가능할까’하는 생각부터 해봐야 한다. 가정이지만 야구단을 운영하기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도전해볼 생각은 있다. 과연 그것이 옳으냐 하는 부분에서 신중한 판단은 해야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포기하지는 않겠다.”


-시즌을 앞두고 김세진 창단감독과 4년의 장기 재계약을 맺었다.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싶었다. 2차례 우승도 했지만 3년간 우리 팀을 이끌고 우리만의 배구문화를 보여준 것이 더 고맙다. 실수가 많은 것 같지만 기본기가 탄탄하고 빠르고 재미있고 예측불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더 끈기를 발휘하는 우리의 배구를 보여준 것이 만족한다. 김세진 감독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 배구를 바꿀 큰 인물이 될 때까지 우리는 디딤돌 역할을 하겠다. 나와 함께 한 3년간 김세진 감독은 칭찬해주고 싶다. 자제력 등 여러 면에서 리더의 모습을 보여줬다.”

정길호 대표이사.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코치 한 번 안 해본 초보감독을 선임한 후일담이 궁금하다.

“사실 김 감독은 창단 감독 후보군에 없었다. 몇몇 대학 감독이 후보 물망에 올랐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주위에서 ‘그렇다면 김세진은?’이라고 해서 시작된 것이다. 그 전에 방송사 해설위원시절의 김 감독과 한 번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다.

“어쩐지 나중에 우리 같이 일할 것 같다”고 했는데 말처럼 됐다. 김 감독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최윤 회장은 김세진 감독을 전혀 몰랐다. 추천하면서 ‘1등을 해본 사람이다. 1등의 DNA는 다르다’고 했는데 감독 결정 다음에 놀란 것이 코치선임이었다. 전권을 줬더니 삼성화재에서 선수로 뛰던 석진욱을 데려오겠다고 했다. 믿기 어려웠는데 말대로 했다. 신진식 당시 대학 감독도 데려오겠다고 했다. 그래서 만났지만 본인이 고사했다. 미래의 경쟁자이기도 한 사람들을 자기와 함께 하려고 하는 그 생각과 그릇의 크기를 보면서 기대가 확신으로 변했다. 그 뒤 1년간 열심히 김 감독의 스폰서로서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그 마지막은 시몬의 영입이었다.”


-결국 시몬이 2차례 우승을 안겼지만 떠났다. 팀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선수가 가고 올해는 새 외국인선수 선발 문제로 애를 태웠는데.

“시몬은 정말 떠나보내기 아쉬운 선수였다. 이태원에서 마지막 회식을 하는데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외국인선수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었다. 2년 계약기간 동안 꼭 우승을 시키겠다는 의지가 대단했다. 그렇게 만든 것은 역시 김세진 감독의 능력이다. 시몬의 공백이 크고 아쉽지만 반대로 우리의 젊은 선수들이 진정으로 대한민국 배구를 이끌어갈 타이밍이 온 것이다. 우리 팀의 주전 3총사가 대한민국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해줘야 대한민국 남자배구에 희망이 있다. 기대가 크다. 선수단 운영에 관한 것은 모두 김세진 감독에게 맡겼다. 우리는 감독을 믿고 지원할 뿐이다.”


-OK저축은행은 배구단뿐만 아니라 여자 골프대회를 유치하고 농아야구단 하키와 럭비 대표팀 등 많은 스포츠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최윤 회장으로부터 일본에서 재일동포들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재일동포가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것은 장사와 연예인 스포츠선수 아니면 주먹뿐이라고 했다. 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더 제한적이고 그런 상황에서 재일동포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스포츠라고 했다. 일본에서 활약하는 우리의 골프, 프로야구 선수들의 활약에 기뻐했고 기꺼이 후원자가 됐다. 주위에서 골프대회 유치에 반대했지만 최 회장은 ‘내가 일본에서 위안받은 것은 골프였다’면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고우순 박세리 선동열 이상훈 이종범 구대성 등과 친해졌다. 지금도 선동열 감독은 절친으로 지낸다. 여자골프대회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OK저축은행 박세리 INVITATIONAL이 28일부터 솔모로CC에서 개최된다. 2010년부터 매 년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성공적인 대회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이번 대회에도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 최 회장은 특히 남들이 지원하지 않고 외면하는 비인기 종목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청각장애인 야구단과 하키 국가대표팀 지원도 그런 이유였다. 럭비는 최 회장이 선수로 활동했던 인연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선택했다. 현재 협회 부회장으로 실무도 도맡아 한다. 뉴질랜드 코치를 데려와 선수들의 기량을 올리려고 노력한다. 최 회장은 2020도쿄올림픽 때 대한민국 대표팀이 출전해서 일본을 이기고 태극기를 도쿄에 휘날리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재일동포 3세로서 최 회장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는 한(恨)을 풀어주고 싶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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