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러브 스테이지] 하얗게 타오른 ‘아름다운 김준수’

입력 2016-09-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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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안 그레이로 분한 김준수(가운데)가 앙상블 배우들과 함께 1막 마지막 장면에서 ‘어게인스트 네이처’를 부르고 있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명장면 중 하나다. 사진제공|씨제스컬쳐

■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자기만의 해석으로 캐릭터 ‘김준수화’
고도의 절제된 연기…영화같은 150분
마지막 핏물 조차 향기로웠다

아름다웠다. 김준수는 이 ‘아름다움’을 땔감으로 삼아 자신을 하얗게 불태웠다. 커튼콜의 격렬한 박수 위로 김준수는 다 타버린 재가 되어 날아다녔다. 아름다웠다. 수 십 폭의 수채화를 이어붙인 150분짜리 영화를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에서 김준수는 완벽한 미와 부를 지닌 청년 도리안 그레이를 연기했다. 1884년 영국 런던의 사교계에 별이 되어 떨어진 도리안. 화가 배질(최재웅 분)은 아름답고 순수한 도리안을 보는 순간 강렬한 영감에 사로잡히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는 데에 모든 예술혼을 쏟아 붓는다.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드는 또 한 명의 남자는 헨리(박은태 분). 사교계의 중심인물인 헨리는 ‘완벽한 인간’을 연구하겠다는 명목으로 도리안에게 접근한다.

완성된 자신의 초상화를 본 도리안은 좌절한다. 언젠가 늙고 추해질 미래가 두려워진 도리안은 절규하며 영원한 젊음을 간직한 초상화와 자신의 영혼을 맞바꿔 버린다. 이때 부르는 넘버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가 절창이다. 원래의 아이디어는 좀 더 잔잔한 곡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준수가 부르니 대단히 드라마틱한 곡으로 변모했다.

김준수는 음색만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재능을 가진 배우다.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는 고도의 훈련과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다. 김준수는 노련했다. 무대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보면 정반대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코너에 몰려 맹타를 당하는 듯 보여도 두 팔의 가드 사이로는 언제나 야수의 눈을 빛내고 있다.


● 김준수 존재감을 확대시킨 ‘어게인스트 네이처’

1막의 엔딩신은 그야말로 김준수를 위한 장면이다. 김준수가 앙상블 배우들과 부르는 ‘어게인스트 네이처(against nature)’에서는 도리안과 JYJ의 경계라는 칼날 위에 맨발로 선 김준수를 만날 수 있다. 통상 이런 식의 삽입은 억지스러워 뮤지컬 마니아들의 질타를 받기 일쑤지만 이 장면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1막의 엔딩과 2막의 첫 장면에서 도리안이 가진 흰빛(신성)이 붉게(마성) 물들어가는 과정을 강렬하게 이어붙인 효과를 냈다. 이런 극적인 효과는 김준수와 앙상블의 실제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칼 군무의 눈부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준수가 지닌 독보적인 색깔은 세상에서 하나 뿐인 도리안을 완성시켰다. 많은 배우들이 캐릭터 안으로 한 발이라도 더 들어가려고 하지만, 김준수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보여준다. 캐릭터를 철저히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점은 다른 배우들과 같지만 결과물은 확연히 다르다. 자신을 감추고 인형 탈을 뒤집어쓰는 대신 캐릭터가 자신 안으로 스르륵 들어오도록 만들어버린다. 이른바 캐릭터의 ‘김준수화’라는 화학작용이 일어난다. 지금까지 맡았던 모차르트(모차르트!), 엘(데스노트), 드라큘라(드라큘라), 죽음(엘리자벳)이 모두 그랬다.

‘은헨리(박은태 헨리를 부르는 팬들의 애칭)’와 ‘웅배질(최재웅)’도 ‘샤리안(김준수)’이 훨훨 날아오를 수 있도록 양 날개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

김준수가 도리안이 된 것이 아니라, 도리안이 김준수로 살았던 2시간 30분. 도리안이 흘린 마지막 핏물조차 향기로웠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김준수는 타당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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