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 리포트] 존경 받아야 할 독일무대 코리안들

입력 2017-01-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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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축구와 한국선수의 인연은 상당히 깊다. 2017피파20세월드컵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차붐’ 차범근을 필두로 그동안 26명의 한국선수들이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를 누볐다. 이들의 성공과 좌절이 교차한 분데스리가는 여전히 유럽 최고의 리그로 손꼽히고 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차범근 308경기 98골 분데스리가 레전드
김주성·황선홍·차두리 등 독일축구 경험
구자철·지동원·박주호·김진수 활약중


유럽축구연맹(UEFA) 소속 리그 순위 2위, 평균 관중수 1위(4만2421명·2016년 기준)에서도 확인되듯 독일인들의 축구사랑은 유별나다. 지극정성이다 못해 미쳐있는 나라가 독일이다. 분데스리가는 수십 년간 유럽 최고의 리그 중 하나로서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서고 싶은 무대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선수들도 오래전부터 그 문을 두드렸고, 지금도 여러 명이 활약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6명(은퇴 및 현역 포함)의 한국선수들이 분데스리가 그라운드를 밟았다. 유럽무대를 경험한 최초의 한국인이자, 분데스리가 최초의 한국선수는 ‘차붐’, 바로 차범근(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1978년 SV다름슈타트 유니폼을 입고 분데스리가에 등장해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1979∼1983년), 바이엘 레버쿠젠(1983∼1989년)을 거치며 총 11시즌 동안 308경기에서 98골을 기록했다. 군복무를 비롯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기량을 펼친 까닭에 독일에서도 여전히 또렷하게 한국을 알린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차범근의 활약은 독일에서 아시아선수들에 대한 편견을 깨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차범근에 이어 김진국(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1979년 다름슈타트에 입단해 1981년까지 머물렀다. 1980년에는 박종원이 카우저슬라우테른(1980∼1982년), 1981년에는 김민혜가 헤르타 베를린(1981∼1982년)과 계약하는 등 활발한 독일 진출이 이뤄졌다. 그러나 차범근을 제외하고는 모두 3시즌을 넘기지 못하고 독일을 떠나야 했다.

1990년대에도 분데스리가 입성이 이어졌다. 김주성(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실장)이 VfL보훔(1992∼1994)에서 뛰었고, 1993년에는 황선홍(FC서울 감독)이 부퍼탈SC에 입단해 초반 3골을 몰아치며 주목받았으나, 악령과도 같았던 부상 때문에 아쉽게 꿈을 접었다.

프라이부르크 시절 차두리.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2000년대 들어서는 비로소 분데스리가에서 오래도록 활약하는 한국선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차두리(국가대표팀 전력분석관)는 2002년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레버쿠젠에서 임대)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마인츠05, 코블렌츠, SC프라이부르크, 포투나 뒤셀도르프 등 여러 팀에서 2013년까지 공격수 및 수비수로 전성기를 보냈다. 그 뒤를 안정환(뒤스부르크·2006년), 이영표(도르트문트·2008∼2009년)가 이었고, 손흥민(토트넘)은 함부르크(2011∼2013년)와 레버쿠젠(2013∼2015년)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현재도 구자철, 지동원(이상 아우크스부르크), 박주호(도르트문트), 김진수(호펜하임) 등 4명의 선수가 1부리그를 누비고 있다.

도르트문트 시절 이영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길건 짧건 해외에서 자신의 꿈을 펼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낯선 이국에서 지금껏 축구로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는 그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쾰른(독일) | 윤영신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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