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어미의 마음이 없어. 그래, 난 괴물이야.” 여자는 왜 스스로를 괴물이라고 칭했을까.
MBC 월화특별기획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극본 황진영 연출 김진만 진창규, 이하 ‘역적’)은 희대의 폭군, 연산(김지석 분)을 사로잡은 경국지색으로 고정됐던 장녹수(이하늬 분)에게 능상척결의 시대에 인간답게 살고 싶었던 기생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혔다.
공화의 어머니는 현감이 바뀔 때마다 새 현감을 남편 삼아 빨래도 해주고, 밥도 차려주고, 잠자리도 해주는 관아에 딸린 관기였다. 현감이 어머니를 마음에 들어 하면 살림도 폈고, 그렇지 않으면 쫄쫄 굶어야 했던 삶을 살던 어린 공화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예순도 넘은 새 현감을 모시러 가면서 어미에게 제 자식 손을 잡고 오라고 시키는 더러운 놈들에 대한 분노로 괴물이 되기로 했다.
“멍청하고 어리석은 것들, 이 세상천지에 늬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 데도 없다는 걸 왜 몰라”라고 외쳤던 절규는 “가족들에게 가고 싶다”며 눈물짓는 동기를 향한 것이었을까. 냉혈한인 척 하면서도 정붙일 곳을 찾는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까. 속에서 북받치는 울분을 어쩌지 못하고 남몰래 눈물을 토해내는 모습은 그가 관기의 딸로서 겪은 지옥 같은 세상과 그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얼마나 다그쳤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황진영 작가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길동을 향한 연정을 억누르고 연산과 연을 맺은 장녹수를 통해 우매한 지도자의 백성은 당연한 것을 위해 스스로를 어디까지 몰아쳐야 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에 기록된 장녹수의 흔적을 충실히 좇아가면서도 전혀 새로운 해석으로 쌓아 올린 장녹수는 전에 없었던 기구한 서사를 얻는다.
새로운 장녹수의 다층성을 살린 것은 단연 배우 이하늬. 서울대학교에서 국악을 전공한 특기를 한껏 살려 장녹수의 예인적 면모를 여타의 배우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표현함은 물론, 고통에 찬 비명을 숨긴 뒤틀린 미소로 공화가 걸어온 길의 거친 촉감을 표현해낸다. 날 서게 절규를 내지르는 순간은 물론, 수려하게 노래를 뽑아내는 순간까지 장녹수가 애잔해 보이는 이유다.
그런 가운데 21일 방송에서 공화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왕을 품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길동을 뒤로한 채 궁으로 들어가 왕이 되는 연산과 마주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