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 Law Story] 공 건드리고 모르쇠, 스포츠정신에 위배

입력 2017-03-0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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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에서 비디오판독을 하고 있는 경기 감독관들. ‘진실을 알고 있는’ 해당 선수들은 비디오판독에 앞서 굳이 ‘고백’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기부죄금지(自己負罪禁止)의 특권에서 바라볼 때 이는 ‘위법행위’가 아니다. 스포츠동아DB

세트 스코어 2-2. 5세트 15-14로 원정팀이 이기고 있는 매치포인트 상황. 원정팀의 스파이크 서브가 홈팀 진영에 강하게 들어갔다. 가까스로 걷어 올린 리시브에 이은 오픈 강스파이크. 그러나 공은 엔드라인을 약간 벗어났다. 심판은 아웃을 선언했다. 이대로라면 원정팀의 승리로 경기가 끝난다. 하지만 홈팀 선수들은 펄쩍펄쩍 뛰었다. 공이 원정팀 블로커의 손에 스쳤으므로 터치아웃이라는 것. 홈팀 감독은 즉시 비디오판독을 신청했다. 슬로비디오로 재생된 중계화면에는 원정팀 블로커의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포착됐다. 그런데 판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블로커는 자신의 손에 맞았다고 전혀 시인하지 않았다.

배구 경기에서 흔한 장면이다. 예전에는 비디오판독이 없어서 심판의 선언이 거의 절대적이었다. 요즘은 거의 모든 종목에 비디오판독이 도입돼 결정적 순간의 오심을 바로잡을 기회가 생겼다. 이런 장면을 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어차피 탄로 날 텐데, 왜 스스로 시인하지 않지? 스스로 시인하지 않으면 나중에 징계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 선수들이 스스로 시인하지 않는 이유는?

먼저 선수 스스로도 잘 모를 수 있다. 네트터치나 어택라인 침범 같은 반칙은 순간적이어서 스스로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 모를 수도 있다. 즉, 경기에 집중하다 보면 선수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상황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수 스스로는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위의 사례처럼 터치아웃인지, 아닌지는 블로킹을 했던 선수가 제일 잘 알 것이다. 농구에서 투터치 여부가 문제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자기 손에 맞았다고 자백(?)하는 선수를 찾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자백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중에 따로 징계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뭘까?


● 헌법에도 있는 진술거부권

놀랍게도 우리 헌법에 이와 닮은 규정이 있다. 헌법 제12조 제2항에 ‘모든 국민은 ∼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진술거부권 또는 묵비권이라고 하는데, 미국 수정헌법 제5조 자기부죄금지(自己負罪禁止)의 특권(privilege against self-incrimination)에서 유래한다. 즉, 실체적 진실 발견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에서 유래하는 비인간적 자백 강요 금지를 우선시하는 것이 우리 헌법의 정신이다. 자기에게 불리한 사실을 인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고, 인간의 존엄성에도 벗어나는 것이라고 헌법이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는 묵비할 수 있는 권리에 제한된다. 진술의 거부나 묵비를 넘어 적극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권리까지 헌법이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 ‘신의 손’ 논란, 진정한 승자는?

자신의 터치아웃에 대해 자백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것이 스포츠정신에 부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는 2009년 11월 12일 열린 아일랜드와의 2010남아공월드컵 유럽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신의 손’ 논란을 일으켰다. 1-1 동점 상황에서 맞은 연장 후반 1분. 앙리는 윌리엄 갈라스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그런데 그 어시스트 직전 볼을 컨트롤하면서 왼손으로 공을 두 번 건드렸다. 앙리가 은퇴 후 해설가로 활동하면서 핸들링 논란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팬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 앙리가 과연 핸들링에 대해 이야기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승리를 얻었지만, 그것이 영원한 승리를 보장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정정당당’임이 분명해 보인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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