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좌절, 막 내린 국민감독의 16년

입력 2017-03-10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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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독’ 김인식의 위대한 도전이 막을 내렸다. 2002부산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17 WBC에 이르기까지 무려 16년간 한국야구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김 감독은 많은 선물을 남긴 채 이제 무거운 짐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게 됐다. 9일 고척돔에서 WBC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생각에 잠긴 김 감독. 고척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환희와 영광, 좌절로 점철된 지난 16년이었다. 한국야구의 르네상스를 열었던 김인식(70) 감독이 정든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지휘했던 김 감독은 8일 기자회견에서 “이번이 (국가대표로는) 마지막이지 않겠느냐”며 사령탑 은퇴의사를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나라가 부를 때마다 태극마크를 품고 앞장섰던 ‘국민감독’ 김인식. 그의 퇴장과 함께 한국야구의 희로애락과도 같았던 ‘위대한 도전’ 역시 막을 내리게 됐다.

2006 WBC 당시 김인식 감독.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너털웃음으로 이끈 한국야구 부흥기

김 감독의 첫 태극마크는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55세의 김 감독은 너털웃음으로 대표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함께 뚝심 깃든 믿음의 야구로 신망을 얻었다. 여기에 1995년 통합우승(OB)과 2001년 한국시리즈 우승(두산)을 차례로 거머쥐며 지도력까지 인정받았다. 당시 2002부산아시안게임 수장을 구하던 한국야구는 주저 없이 김 감독을 택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표팀 첫 해였음에도 6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러나 한국야구는 이후 위기를 맞았다. 2004아테네올림픽 예선전이었던 2003삿포로아시아선수권에서 대만과 일본에 잇따라 져 본선진출이 좌절된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야구를 다시 구한 이는 김인식이었다. 김 감독은 2006WBC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2004년 말 뇌경색을 겪은 터라 거동이 쉽지 않았지만, 국가의 부름에 망설이지 않았다. 김 감독은 박찬호와 이종범, 이승엽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한데 묶어 야구강국이라 자부하는 일본과 미국을 모두 적지에서 완파해 4강 신화를 이뤄냈다. ‘국민감독’이라는 애칭도 이때 붙었다.

3년 뒤 2회 WBC에서도 김 감독의 리더십은 빛났다. 대회를 앞두고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는 명언을 남긴 김 감독은 4강(베네수엘라전) 길목에서 “위대한 도전을 해보겠다”는 출사표로 국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결승에서 일본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가 내건 ‘위대한 도전’은 한국야구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됐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15년 처음 열린 프리미어12에서 김 감독은 노장의 투혼을 발휘해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과 대만, 다시 일본을 오가는 힘든 여정도 노(老) 감독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2015 프리미어 12에서 우승한 뒤 헹가레 받는 김인식 감독.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국민감독이 한국야구에 남긴 선물

국민감독의 최종 행선지는 올 WBC였다. 지난 대회 1라운드 탈락이라는 쓴맛을 경험한 한국은 명예회복이 절실했다. 결국 8년 만에 WBC 지휘봉을 김 감독에게 다시 맡겨 위대한 도전의 재현을 기대했다. 그러나 안방에서 열린 1라운드에서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비록 마지막 도전은 실패로 끝이 났지만 김 감독이 한국야구에 남긴 선물은 그 값어치를 쉽사리 매기기 어렵다. 그가 이끈 한국야구는 국제무대에서 우뚝 올라섰고, 어느덧 세계 여러 나라들이 주목하는 야구 중심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그간 길러낸 많은 선수들은 이제 야구본고장인 미국에 진출해 한국야구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후배들에게 짐을 물려주게 된 김 감독. 그의 위대했던 도전이 남긴 유산은 현재진행형이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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