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내 친구] 직장인 모험가 김경수 “젊은이들이여, 신념만 있으면 사막도 건넌다”

입력 2017-06-29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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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오지 레이서 김경수씨가 사막의 거대한 모래언덕을 넘고 있다. 사진제공|김경수

■ ‘직장인 모험가’ 사막·오지 레이서 김 경 수

2001년 우연히 본 사막 다큐가 결정적 계기
1년 반 넘도록 준비한 끝에 사하라사막 첫발
2005년엔 시각장애인과 고비사막 레이스도
업무 피해 주지 않아…평소 집안일도 열심히
가치 있는 삶·좋아하는 일에 지금 도전하라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과 활기찬 저녁을 시작하려는 학생들이 뒤섞인 오후 6시30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대학로에서 사막·오지 레이서 김경수(54)씨를 만났다. 서울 강북구청 주택과 팀장으로 근무하는 그는 이른 퇴근도 할 줄 모르는 성실한 공무원이었고, 푸른 셔츠와 등산 바지 차림에 선한 미소를 짓는 보통의 중년 남성이었다. 일주일 만에 오지를 횡단할 법한 건장한 체격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여느 아저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배가 나오지 않았다는 정도였다. 평범한 첫 인상 때문인지 ‘직장인 모험가’라는 다소 상반된 수식어를 지닌 그가 들려줄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졌다.


● 사막에 인생이 있더라

김경수씨가 오지 레이스를 알게 된 것은 2001년이었다. TV 속 짧은 다큐멘터리가 그의 마음을 훔쳤다. 그러나 불혹을 눈앞에 둔 그에게 사막은 아득한 존재였다. 당장 아내의 반대를 넘어서야했고, 운동법과 장비 등 대회 참가에 필요한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스스로도 사막에 가야만하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시간을 쪼개 운동을 했고, 최대한의 정보를 끌어 모았다. 그는 “시간만 나면 북한산, 중랑천으로 나가 뜀박질을 했다. 그렇게 1년 반이 넘도록 준비한 끝에 거짓말처럼 사하라 사막에 첫 발을 내딛었다”고 떠올렸다. 아내도 그의 진심어린 열정에 결국 손을 들어줬다.

그는 생애 첫 대회인 2003사하라사막마라톤대회에서 5박7일간 243km의 여정을 완주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대회로 꼽히는 사하라에서 수십 개의 모래언덕을 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얼떨떨했다. 그는 “이게 도대체 내 인생에서 뭘까 싶었다. 그런데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뇌리를 떠나지 않더라”고 했다. 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고비, 아타카마, 나미브, 그랜드캐니언 등 수많은 대자연을 경험한 뒤에야 그는 말할 수 있게 됐다. 사막엔 우리네 인생이 담겨있었다.

“내가 수많은 레이스를 통해 엄청나게 큰 목표를 이룰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을 때는 이 대회를 완주하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막상 대회가 시작되면 오늘 하루 탈락하지 않고, 부상 없이 저녁 캠프에 돌아오는 게 목표가 된다. 또 레이스 중엔 얼마나 힘든가. 다음 체크포인트까지만이라도 제한 시간 내에 안전하게 들어가면 성공한거다 싶은 거지. 그렇게 레이스를 완주하는 거다. 결국 내 눈 앞의 작은 목표를 넘어야 원대한 목표도 이뤄진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것이 어쩌면 대자연에서 얻은 큰 삶의 지혜인 것 같다.”

김경수씨가 레이스 도중 대자연을 배경으로 태극기를 펼쳐들고 포즈를 취했다.(위 사진)-김경수씨(오른쪽)가 시각장애인 이용술씨와 손을 잡고 레이스를 이어가고 있다(아래 사진). 사진제공 ㅣ 김경수



● 도전,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그것

사막과 오지에서 헤쳐 온 수많은 위기는 평범한 김경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까닭에 낯선 이에게 말조차 쉽게 걸지 못하던 그는 사막에만 가면 대범해지곤 했다. 2005년 시각장애인 이용술씨와 동행한 고비사막 레이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천길 낭떠러지를 등 뒤에 둔 난코스. 열댓 명의 정상인 참가자들도 포기한 구간이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김경수씨는 “형이 좋아하는 김치찌개에 소주 마시러 가야지. 50m만 더 가면돼. 천천히, 천천히 움직여”라고 이용술씨를 독려하며 그 구간을 통과했다. 파트너의 완주를 돕기 위해 본인의 두려움은 꽁꽁 숨겼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는 그의 일상에도 변화를 줬다. 사막과 오지를 달릴수록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고, 덕분에 강한 정신력이 생겼다. 업무를 처리하는 시야도 넓어졌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을 손쉽게 설정할 수 있게 됐다. 그는 “과연 누가 사막과 오지에 벌렁 누워서 잠을 잘 수 있겠는가.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면 ‘나는 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나는 훌륭한 사람이야. 일상에서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평소 기록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레이스 중의 사건들을 손수 기록한 뒤 책으로 엮어 사람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최근에도 ‘내 인생의 사막을 달리다(자유문고)’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 나와 같은 보통의 사람들에게

사실 김경수씨에게 사막·오지 레이스는 삶의 일부일 뿐이다. 한 가족의 가장, 아들, 또 직장인으로서의 역할이 우선이다. 올해만 해도 가족을 돌보기 위해, 또 직장에서의 업무를 위해 두 차례나 대회 참가를 신청했다가 취소했다. 설령 대회에 참가하더라도 휴가 기간을 최소화해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쓴다. 그는 “대회에 일주일씩 가려면 평소에 집안일을 열심히 해둬야 한다”며 멋쩍게 웃어 보이기도 한다.

그는 자신을 닮은 평범한 이들의 도전을 응원한다. “젊은이든 중년이든 각자의 인생을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기 위해선 좋아하는 일에 망설이지 말고 곧바로 도전하라”고 조언하는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돈과 체력, 시간이 필요하지만, 분명한 신념만 있다면 3가지 요건 중 하나만 충족되더라도 남은 2가지는 따라온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그 스스로도 사하라사막마라톤을 준비하던 16년 전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한다. “지금껏 레이스를 하면서 힘들었지만, 완주를 못한 적은 없다. 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아직 꺼지지 않았던 열정, 그 마음이 얼마나 풋풋한가. 그 생각 하나만을 가지고 어느 대회를 가든 초심을 잃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지만, 아직 건강하다. 또 멋지게 완주를 해서 젊은이에게든 중년에게든 무언가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고 싶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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