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명예의 전당①] 록키 같은 삶, 록키처럼 우뚝 선 ‘마블리’

입력 2017-10-20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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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마동석은 힘겨운 10대 시절을 보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배우가 된 뒤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뭐라도 하나 배웠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 낙천적인 마인드를 발판 삼아 지금의 대세 자리에 올랐다. 험상궂은 인상에도 남녀노소가 좋아하는 배우가 마동석이다. 사진제공 | 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가난했던 어린시절 ‘록키’ 보고 배우 꿈
미국 이주 후 웨이트 트레이너로 성공
긴 무명시절…한때 하반신 마비 위기도
“시련 닥칠 때마다 ‘록키’ 대사 떠올리죠”
‘세상은 한방 맞고도 다시 일어서는 거야’


소년은 경찰관을 꿈꾸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집에 강도가 들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입지 않았다. 소년은 강도를 잡고 싶었다. 그래서 경찰관이 되고자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안형편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가족은 미국으로 날아가야 했다. 미국에 살고 있던 친지의 도움이라도 받을 요량이었다. 낯선 미국의 삶. 미국인들의 덩치는 컸다. 게다가 동양인을 급 낮춰 보는 경향도 없지 않았다. 18살의 소년은 몸집을 키우기 시작했다. 배우 마동석(46)은 힘겨웠던 10대 시절을 담담하게, 때로는 농담을 섞어가며 되돌아봤다. 물론 20대라고 청춘의 발랄함보다는 살아내기 위해 일상을 견딘 시간이 더 많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야말로, “없이 살았던 긴 시간”이야말로 오늘의 그를 있게 한 또 다른 디딤돌이었을지 모른다. 한 해 몇 편의 영화를 선보이고, 오늘도 카메라 앞에 쉴 새 없이 나서는 동안 관객은 ‘마블리’라는 별칭으로 그를 ‘대세’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세상은 결코 따스한 햇살과 무지개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아. 강한 펀치를 맞고도 어떻게 일어나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야. 조금씩 나아가며 얻는 게 중요한 거야. …. 일어서지 않으면 무릎을 꿇고 살아야 해. ….”

마동석은 영화 ‘록키 발보어’가 남긴 명대사를 떠올렸다. ‘록키’ 실베스터 스탤론이 은퇴 뒤 다시 링에 돌아오면서 남긴 말이다. 마동석은 이를 마치 인생의 이정표처럼 여기고 있는 듯했다.

“한 작품이 잘 안 됐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는다. 에너지를 받아 뭐라도 하나 배웠다고 생각한다. 관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게 되고.”

이 같은 낙천성은 지난 시절의 힘겨움과 함께 그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바탕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UFC 초대 헤비급 챔피언인 마크 콜먼과 케빈 렌들맨 등을 전담하는 웨이트 트레이너로 ‘잘 나가던’ 그가 돌연 귀국해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도 그런 낙천성이 아니고서는 언감생심이었을 거다.

마동석은 어린 시절부터 영화와 배우를 꿈꿨다. 하지만 ‘록키’를 보고 그는 링에 올랐다. 중학생 시절이었다.

“(영화와 연기를 하려면)복싱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어이없지 않나? 하하!”

하지만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이마저도 포기했다. 다만 몸집을 키웠다. 갖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었던 그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했고 결국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그러던 시절 현지 경찰시험을 보려고 준비도 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영어 작문 실력이 좋아야 하는데 “정말 어려웠다”. 문득 어린 시절 교회에서 연극을 하던 때 기억이 떠올랐다. 영화의 꿈을 다시 키웠다.

이내 한국으로 돌아왔다. 미국에서 남은 일마저 후배에게 떠맡긴 채였다. 주변에선 그의 선택을 말렸다. 그의 꿈을 비웃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키 179cm에 120kg의 몸무게로 “배우를 할 수 없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20kg을 빼고 나서 나선 무대가 바로 첫 영화 ‘천군’이었다.

영화 ‘천군’에서 마동석(오른쪽). 사진제공|쇼박스


물론 그 역시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도 없지 않았다. 이런 과정을 경북 안동의 한 종가의 자손으로 고택에 숨겨진 유물을 찾아 나서며 벌이는 형제의 해프닝을 그려 11월2일 개봉하는 주연작 ‘부라더’ 속 캐릭터에 빗대 “뜬구름을 잡는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무모하다는 주변의 만류를 딛고 데뷔 이후 한동안 단역을 연기하면서 ‘이걸 못하면 갈 데도 없는데’ 생각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이후 관객은 그의 선택을 이제 반기고 있다. 그 큰 몸집과는 다른 코믹하면서도 친근하고 정의롭게 보이기까지 하는 스크린 속 이미지 덕분이다. 제작자들은 현장에서 그가 “상당히 세밀하게 연기한다”는 찬사를 내놓기도 한다. 나아가 ‘마동석장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이런 찬사와 관객의 사랑은 그가 펼치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노력은 단순한 연기를 “열심히 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팀 고릴라’라는 작가그룹을 이끌며 직접 영화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시나리오는 작가나 감독이 쓰지만 그는 여기에 “포스트잇이나 휴대폰 메모장에 그때그때 생각나는대로 메모해 놓을 것”을 아이디어로 내놓는다.

“아직은 팀 고릴라 이름으로 수입이 없어 내 돈을 쓰기도 하지만, 또 투자를 해주겠다는 제안도 없지 않았지만, 여전히 작업은 재미있다. 그래서 자유롭게 하고 싶다.”

그러는 사이 위기도 없지 않았다. 2009년 SBS ‘태양을 삼켜라’의 아프리카 로케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세트가 무너졌다. 마동석은 한쪽 팔과 가슴뼈, 척추 일부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병원에선 “어쩌면 하반신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까지 했다. 몇 번의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일어섰다. 운동으로 다진 몸이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영화 ‘범죄도시’에서 마동석. 사진제공|홍필름


그래도 그는 여전히 액션연기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는다. 현재 100kg 정도를 유지하는 몸무게를 줄이고 과도한 액션연기를 펼치면 몸이 좀 편치 않지만, 흥행작 ‘범죄도시’에서처럼 실제 강력반형사인 듯 사실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능히 견뎌내고 있다.

드라마 ‘나쁜 녀석들’과 영화 ‘이웃사람’ ‘범죄도시’ 등을 통해 현재 위상을 갖게 된 그는 이제 “깊이 내보일 연기와 날 담아낼 수 있는 연기”에 대한 지향점을 버리지 않는다. “내 영화를 모든 관객이 보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모든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은 당연한 욕심일 터이다. 대신 자신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즐거움은 선한 것이어서 그를 바라보며 관객이 자연스레 떠올리는 정의로운 이미지와도 상통한다.

“사람을 해하는 악당을 잡으며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영화를 선호하는 면도 있다. 아무리 영화라도 힘이 있다고 남을 때리는 모습이 결코 멋지게 보이면 안 되지 않을까.”

역시 ‘마블리’다운 면모를 드러내는 그는 앞으로도 “일을 오래 해야 하는데 상식 밖의 언행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궁극적으로 영화는 아이들과도 함께 즐기며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아름다운 배우다.


● 마동석

▲1971년 3월1일생
▲고교 3학년 때인 1989년 가족과 함께 미국 이주
▲콜롬버스주립대 체육학 전공
▲1990년대 중반∼ 웨이트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명성
▲2002년 귀국. 첫 영화 ‘천군’ 촬영(2005년 개봉)
▲2007년 MBC ‘히트’와 2008년 영화 ‘비스트 보이즈’ 이후 본격 연기
▲‘부당거래’(2010년), ‘퍼펙트게임’·‘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통증’(2011년), ‘이웃사람’(2012·청룡영화상 등 남우조연상), ‘더 파이브’(2013년), ‘부산행’(2016년·올해의 영화상 및 청룡영화상 등 남우조연상), ‘범죄도시’ ‘부라더’(2017년) 등 영화
▲‘나쁜 녀석들’(2015년), ‘38사기동대’(2016년) 등 드라마

윤여수 전문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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