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시민구단 CEO의 모범 답안 써가는 조광래 사장

입력 2018-02-2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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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래 대구FC 대표이사는 선수와 지도자로서 한국 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2014년 대구FC 대표이사로 선임된 그는 행정가로서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동아일보DB

선수시절 조광래(64· 대구FC 대표이사)는 영리한 플레이로 유명했다. 체육 특기생이 아닌 입학시험으로 진학한 진주고등학교에서 뒤늦게 선수생활을 했지만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두각을 보이며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10년간 A매치(대표팀 간 경기) 99경기· 15골을 기록했다. 32년 만에 본선에 오른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선 붙박이 주전으로 뛰었다. 폭넓은 시야와 정확한 패스, 창의적인 플레이가 돋보여 ‘컴퓨터 링커’로 불렸다.

화려한 선수 시절만큼이나 지도자로서도 남부럽지 않았다. 부산 감독과 수원 수석코치를 거쳐 안양(현 FC서울)에서 K리그 정상에 오르며 꽃을 피웠다. 경남 감독시절엔 가능성 있는 선수들을 대거 발굴해내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신조어도 만들어냈다. 2010년에는 국가대표팀 감독에도 선임됐다.

여기까지만 해도 선수와 지도자로서 한국 축구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성과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가보지 않은 길을 택했다. 2014년 가을, 대구FC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올해로 4년째다. 말이 사장이지 맨땅에 헤딩해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불평보다는 희망을 먼저 얘기했다. 지역민들을 부지런히 만나며 구단을 홍보했다. 특유의 뚝심으로 밀고나간 덕분에 구단은 성공적으로 변신 중이다.

사진제공 | 한국프로축구연맹


우선 기반 시설을 갖추면서 위상을 높였다. 올 연말이면 축구전용구장이 완공된다. 월드컵경기장이 있는데도 전용구장이 생긴다는 건 대구시의 지원과 기대가 얼마나 큰 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숙원이던 클럽하우스도 함께 마련된다. 미래의 자산인 유소년축구도 센터를 만들고 구장을 확보하는 등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선수출신이 구단 행정을 책임지는 게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선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면서 “우리 구단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건 모든 행정의 중심에 축구를 놓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 J리그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1993년 출범한 J리그는 초창기 각 분야 전문가들로 스태프를 구성했는데, 처음에는 잘 나가는 듯 했지만 이내 주춤했다. 이를 분석한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J리그 관계자들은 직원들이 본질인 축구보다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몰두하다가 뻗어나가지 못했다고 하더라. 축구를 중심에 두지 않은 탓이 컸다. 이후 구단들은 직원을 영입할 때 은퇴선수를 고려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고, 이를 통해 지역 팬들에게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다.”

조 대표는 축구를 중심에 둔 자신의 철학을 처음부터 강조했고, 직원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따르면서 결실을 보고 있다.

구단의 최대 관심은 아무래도 성적이다.

대구의 성적은 일취월장했다. 2016년 K리그2(챌린지) 2위를 차지하며 강등 3년 만에 K리그1(클래식)에 복귀했다. 1부 잔류를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17시즌 12개 팀 중 8위를 했다. 목표 달성이다. 세징야, 주니오, 에반드로 등 브라질 트리오의 공이 컸다. 골키퍼 조현우도 국가대표에 뽑힐 정도로 성장했다.

대구 조광래 대표.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이제 2018시즌이 시작된다. 목표는 6강이다. 이는 상위 스플릿을 의미한다. 상위권 안착을 통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진출도 꿈꾼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중요한 해다. 올해 기틀을 잡는다면 구단의 앞날은 밝을 것이다. 그는 “올해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면서도 “고비를 넘기면 다음 목표까지 순조롭게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그가 말한 고비는 외국인선수다. 3명 중 2명이 바뀌었다. 문제는 시간이다. 그는 “지난해 외국인선수들은 경험이 많았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다. 그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뚜벅뚜벅 가겠다”고 덧붙였다.

조 대표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시민구단으로 첫 리그 우승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만 착실한 준비가 우선이다. “준비 안하고 우승을 바라면 그건 도둑놈 심보다. 목표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겠다.”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은 선수 출신 CEO의 각오에 절절함이 느껴졌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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