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김민우-정우영(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 한 판에 모든 걸 걸었고, 모든 힘을 쏟아냈기에 안타까움은 대단했습니다. 종료휘슬이 울리자 대부분이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앉거나 누워버렸습니다. 한참 일어서지 못하다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걸어 나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떠들썩한 활기로 가득한 스웨덴 선수들과 취재진을 뒤로한 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빠져 나가는 몇몇 선수들의 눈가는 촉촉했습니다. 질문을 받고 어렵게 입을 떼면서도 누구 하나 제대로 말을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충격과 상처는 컸습니다.
혹시 이들이 기댈 곳은 있을까. 따스하게 품어주는 이들은 없을까. 하지만 ‘혹시나’하는 바람이 ‘역시나’로 바뀌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습니다. 익명을 기반으로 한 각종 국내 축구게시판에서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마녀사냥’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온갖 저주의 화살은 주로 중앙수비수 장현수(27·FC도쿄)와 신태용(48) 감독을 향하고 있습니다.
사실 마음 아픈 건 선수 뿐만이 아닙니다. 이곳 취재진의 상당수가 지난달 21일 국내 소집 이후 대표팀과 줄곧 함께 하고 있기에 화도 많이 났고 가슴도 터질 듯 아려왔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러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씁쓸히 경기장 구석에서 담배 한 대로 시름을 달래려던 대표팀 스태프의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이제 세 경기 중 한 경기를 치렀을 뿐인데…. 더욱이 16강 진출이 완전히 좌절된 것도 아닌데….
자신의 실수로 PK를 내준 뒤 고개를 떨군 김민우(28·상주 상무)의 어깨를 ‘캡틴’ 기성용(29·스완지시티)이 감싸며 위로하고, 4년 전 브라질에서 주먹으로 땅을 치며 눈물을 쏟은 ‘울보’ 손흥민(26·토트넘)이 이번에는 김민우(28·상주)를 향해 고개를 들라는 모션을 취할 때 작은 희망을 봤습니다.
물론 비판도 필요합니다. 따끔한 질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베이스캠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반전을 모색하고 있는 태극전사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어깨 펴고, 가슴 열고 당당히 남은 여정에 임하자고. 그대들은 아직 젊고, 틀림없이 일어설 수 있다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 ‘도브로에 우뜨라’는 러시아의 아침 인사말입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